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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Dec 19. 2021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야

20년 지기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신촌에서 10년이 넘게 살고 있는 친구는 의외로 유행에 둔감한 듯하면서도 모르는 것이 없다. 살고 있는 곳에서 연희동까지 차를 끌고 갔다. 평일 오전이라서 크게 막히는 것도 없었고 모처럼 서울로 올라가는 터라 멀리 떠나는 기분이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문득 '맛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연희동 아래 연남동. 지난 2010년 후반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 맛집의 최전선인 곳이다. 나랑 친구는 대학 입학 이후 줄곧 술을 마신 동네라서 연남동이 '인싸화'되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다. 늘 가던 동네가 사람들로 북적이고 괜찮았던 가게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소위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본 동네다. 하물며 그곳에서 줄곧 살고 있던 친구는 오죽했을까. 아무튼 대화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에 대한 것이었다. 이 가게가 오픈런을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곳인데 이게 알고 보니 연희동에 있더라.라는 이야기.


- 뭐 파는데?

-... 디저트? 같은 거던데? 몰라. 줄이 길다고만 알고 있다.

- (검색 후) 그러네. 여기 유명한 곳이네.

- 안 그래도 집 앞에도 얼마 전에 빵집이 하나 생겼는데, 생기자마자 사람들이 줄을 서더라.

- 생기자마자? 뭐 다른데 있던 거 가게 낸 거가?

- 몰라.

- 왜? 뭐지?

요즘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 많아.


 짧지만 요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한 멋진 말이었다.

 이야기에 나온 빵집을 인터넷에 찾아봤다. 이미 타 지역에선 유명하단다. 맛있나 보다. 한 번도 먹어보진 않았지만 괜스레 가서 하나쯤 사봐야 할 것 같다. 요즘은 맛있다는 빵집이 많아서 사실 뭐... SNS나 네이버 블로그 글(광고)을 보고 찾아가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줄을 서고 호들갑을 떨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드는 집도 많다.

 쉽게 미슐랭 가이드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별 한 개 '요리가 훌륭한 식당' 정도면 다행이다. 하지만 SNS는 다들 '별 세 개!! 이것을 맛보기 위해 떠나야 할 정도야!'라고 이야기하는 곳이 많다. 내 기준 이하의 식당이나 가게도 즐비했다. 돈을 받고 하는 광고도 많은 만큼 적당한 포장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일부 사람들은 음식을 혀로 먹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먹는 것에 있다. 정보에 대한 접근이 더 쉬워지고 많아지면서, SNS가 활성화되고 누구나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한다. '세 사람이면 호랑이도 만든다'라는 옛말처럼 주변 사람이 다들 맛있다고 하면 맛없는 것도 맛있어지는 세상이다.


 한 때 상권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직장에서 일하면서 '익선동'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좁고 불편한 골목길의 동네에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생겨나더니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찬 골목이 되어버렸다. SNS에 익선동 태그를 검색하니 백만 개 이상의 게시글이 뜬다.


 SNS를 통한 홍보, 이슈 메이킹은 분명 실력 있는 많은 가게와 맛집들이 빛을 발하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흔히들 요즘 말하는 '무지성'의 팔로워들을 겨냥한 많은 마케터들의 훌륭한 도구이기도 하다.

수많은 자기 PR, 홍보의 세상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는 것이야말로 능력이 될 수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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