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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Dec 28. 2021

세상을 저버린 친구와 남은 사람들

정말 힘들면 힘들다는 말조차 못 해요. 나 힘들다고.

 지난해 겨울. 그러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 해의 마지막. 12월 31일 새벽에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왜 하필 그때 잠을 자고 있지 않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깊은 잠에 든 시간 새벽 세 시쯤이었으니까요. 안타깝게도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멍하니 문자를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 다른 친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지금 문자 온 거 뭐냐고. 그런데 말입니다. 그 친구에게도 답변이 바로 옵니다. 자기도 방금 연락을 받아서 당황했는데, 이따 오전에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답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저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지금까지 줄곧 서울, 그리고 이제는 경기도에 살고 있습니다. 연락이 온 친구는 그러니까 제 몇 안 되는 고향 부산의 친구이자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입니다. 물론 고향을 떠난 지 10년이 넘고 명절에나 가끔 내려갔기 때문에 사이는 사실 소원했습니다. 이제는 관심사도 하는 일도 너무나도 달라진 친구들이라 가끔 안부나 물으면 다행인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다른 친구의 적극성 때문에 간간히 '생존신고'는 서로 하고 있었는데 생존 신고가 아닌 다른 신고를 받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아침, 부고장을 보낸 사람은 친구의 아버지도 아니고 다름 아닌 매형입니다. 사망의 원인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것으로 보아 썩 좋은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죽음에 호상(好喪)이 어디 있겠냐만은 아마도 친구들끼리 미루어 짐작컨데,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월 1일.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와 함께 먼 동네까지 찾아왔습니다. 죽은 친구가 일하며 지내던 곳은 '대전'.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 석사까지 부산에서 마쳤던 친구가 어째서 직장을 대전에서 잡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째 저째 살다가 흘러오다 보니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미 발인은 끝나고 안장까지 한 상태여서 친구가 자고 있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대전보다 한참 먼 '계룡'이었습니다. 군 생활을 계룡에서 했던 지라 들어가면 갈수록 익숙한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 한겨울이라서 그런지 눈이 펑펑 내렸던 기억만 있네요. 진짜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온통 새하얀 곳이었습니다. 

 인적 없는 작은 공간에 친구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매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그 부분의 흙만 잡초 하나 없이 붉게 있습니다. 다들 말이 없었습니다. 갑작스럽기도 했고 이제는 떠나가버린 친구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몇 안 되는 친구의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된 답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연락을 간간히 하던 다른 친구로부터 대략적인 원인만 추측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사도 그렇고 집안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사는 것 자체가 순탄치 않았나 봅니다. 그렇게 타지의 작은 방에서 홀로 떠난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조심히 입을 떼었습니다. 


"그렇게 힘들면 조금이라도 말 하지...."


 만약에 그랬으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 힘들었으면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잠시 쉬면서 친구랑 다른 일을 찾아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여차하면 사업을 영위하고 있던 친구네에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전 주말까지 같이 온라인 게임을 했다는 친구에게 뭐가 두려워서 힘들다고 말을 못 했을까요? 사실 저도 그랬어요. 정말 힘들면 말을 못 해요. 너무 힘들어서 말할 힘도 없어요. 당장에 닥친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고 지나고 나서 조금 나아지면 '나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가끔 말하긴 합니다. 좋은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닥쳐보면 그렇더라고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로 인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는 생각이 가장 큽니다. 그래도 정말 믿는 사람에게는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언제 어디서 어떠한 계기로 당신의 고민을 정말 가볍게 넘겨줄지 누가 알아요. 아니면 그냥 들어만 달라고 해요. 공감이고 해결방안이고 다 필요 없어요. 그냥 속에 있던 말을 뱉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삶의 무게'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나는 1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친구에게는 100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 반대일 수도 있고요. 우리는 모두 다른 경험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을 잘 아는, 그리고 당신이 믿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보세요. 물론 너무 어려운 건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야 나아지더라고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생각보다 당신이 말을 꺼낸 상대는 고마워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해 줬다는 것이. 그만큼 믿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다시 친구의 기일이 찾아오고 만나자는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하는 김에 기억을 꺼내보았습니다. 오늘처럼 그때도 무척이나 흐린 날이었습니다. 일 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그때보다 조금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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