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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달 Dec 12. 2021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기분이 그래

갑작스러움에 대처하는 자세

 한 달 전부터 잡아놓은 약속이 바로 전날인 오늘, 파투가 났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구체화하는 도중 상대의 회사 직원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내일 오전에 검사를 받으면 다음 날이나 그날 늦은 시간에야 나온다. 애매하게 결과를 기다리느니 그냥 만나는 것을 미루기로 했다. 잔뜩 기대로 부풀어 올랐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새어버린다.


 나도 코로나 확진자였기 때문에 어떠한 마음인지 짐작은 간다. 당장에 내가 아픈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로 인해 발생하는 주변의 문제가 더 무서웠다. 올해 여름, 회사에 확진자가 발생하고 동선이 겹쳤던 나는 검사 후 확진 판정을 받았다. 생활치료센터에 격리 후, 코로나에 걸렸다는 것보다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겪는 불편함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접촉한 사람들 중에서는 확진자가 없었다.

용인 생활치료센터. 퇴소하면서 찍었다~



이성의 영역

 어쩔 수 없는 건 안다. 본인이 어디 가서 코로나를 걸려온 것도 아니고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이름 모를 누군가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서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하여 검사를 받는 것이다. 과정에서 나의 약속 상대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슈가 발생하자마자 알려주고 다른 날짜로 변경하자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파투에 미안함 또한 전한다. 반대의 상황에서도 나는 지금의 대처 이상으로 잘할 자신이 없다. 흔히들 정석(定石)이라고 부르는 그것...

 게다가 살면서 이런 일이 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회사를 다닐 때, 얼마나 많은 고객사며 협력업체며 많은 약속을 잡고 깨고 깨져봤는가. 이유야 만들면 되었고 비일비재했다. 너무 크게 마음 두지 말자.

감정의 영역

 기대가 사라졌다. 그냥 속상하다. 이해는 하는데 기분이 좀 그렇다. 다음으로 미루자고 하지만 언제가 될 줄 알고... 약속에 맞게 바이오리듬도 맞춰보고자 하는 사람이다. 게다가 이제는 회사를 그만두고 약속을 잡는 게 힘들다. 강아지 약 주는 시간과 함께 집사람의 한 달치 근무 스케줄의 교집합을 확인해야 한다. 애초에 약속도 많이 없는 사람이라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허무하다. 일정이 틀어지면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해도 왠지 '대체재'인 것 같아 미안하다. 당장에 '내일 뭐 하지?', '집사람과는 또 어떻게 다시 일정을 잡아야 하지?'와 같은 생각만 든다.


 쓰고 보니 전자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이고 후자는 내 입장이다. 지금 내 심정을 솔직하게 말하자면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기분이 좀 그래'

 지금 이래도 막상 다시 만나면 눈 녹듯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속상한 건 속상한 것이지만 경험치는 쌓여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다음번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늘 그랬듯이 오늘 하루만 조금 멜랑꼴리. 이미 벌어진 일, 어쩔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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