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해를 갓 넘기자마자 나는 또래 친구들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누가 나를 그 길로 잡아끌지도 않았고, 등 떠밀려간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의 선택. 나의 의지만으로 그렇게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이루고, 스물두 살에 예쁜 아기의 엄마가 되었다.
아기는 뭐든 다 해주고 싶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을 만큼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였지만 꿈 많고 하고 싶은 것 많던 나이에 때때로 어린 아기가 있고, 내가 엄마라는 것은.. 내가 세상으로 나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하지 못할 그럴싸한 핑계가 되어버렸다.
훨훨 날아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저들처럼 날아다닐 처지가 되지 못한다고 매번 핑계 뒤로 숨어버렸다.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셋째를 낳기 얼마 전까지도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랬다.
“아이가 아직 너무 어려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아이가 셋이라 도저히 시간도 여유도 없어서..”
육아와 살림의 영역이 아닌 것으로 인정도 받으며 일하고 싶고, 무언가 내가 흥미 있어하는 일을 배워보고도 싶고,‘엄마가 아닌 나’라는 사람의 모습으로도 살고 싶다고 외치면서 항상 새로운 도전의 문턱 앞에서 괜히 아이들 탓을 하며 문을 열어보지도 않고 되돌아오던 나였다.
내가 나로 살겠다고 엄마의 역할을 내팽개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를 키워야하니까. 당시에는 그게 정말 내가 무언가를 해볼 수 없는 마땅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조금만 더 크면..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면..” 하고 아이가 자라 시간의 여유가 많을 미래를 기약하며 끝내 시작도 하지 않기 일쑤였다.
그런 날들이 쌓이고 쌓일수록 마음의 한구석이 불편했고, 아이들이 전보다 조금 더 자랐다고 해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완벽한 환경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의지였다.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 그리고 자꾸만 작아지는 나를 위해서, 눈을 딱 감고 진정 내가 원하는 모습을 향해 나아가 보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다.
야금야금 아주 느리고 작은 발걸음일지라도 일단 앞으로 내디뎌보기로.
아이를 키우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지난 날이지만, 엄마가 되었기에 아이를 키워내는 동안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더 고민할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는 책을 내기 위한 원고를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야금야금 써 모으는 과정에 있다.
완벽한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살았지만, 완벽하게 준비된 때는 대부분 없었다. 하나씩 해나가며 시행착오와 수정,보완을 통해 나만의 땅을 단단히 다지는 것.
상황을 탓하며 멈추어있기보다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더 나은 곳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고,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의 배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여정의 끝에서 ‘나는 세 아이의 엄마라서 그 무엇도 하지 못했다.’가 아니라 ‘세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