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원 Jan 05. 2022

그럼에도 읽고 쓰는 하루.

나를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


첫째의 유치원 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둘째는 콧물감기에 걸려 어린이집 등원을 중단했다. 덩달아 4개월  막내도 누나에게 코감기를 얻어와 콧물이 삐죽 흘렀다. 덕분에 세명의 아이들과 내가 온종일 붙어있는 , 엄마들은   있는 고단하고도 행복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식구들  제일 먼저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 가장 티가 나지 않는 일들을 한다. 부지런히 집을 돌아다니면서 쓸고 닦으며 아이들이 늦게까지 신나게 놀다 잠든 지난밤의 흔적들을 주워 담아  아침을 연다.

 

아이들 식사를 챙기고 나면 막내의 수유시간이 돌아오고, 수유를 마치고 나면 얼마  트러블이 생긴 막내의 뽀송한 엉덩이를 위해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해준다. 중간중간 첫째의 끝나지 않는 놀이에 대답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직 기저귀를 떼지 않은 둘째와 막내의 기저귀를 번갈아가며 갈아주고, 틈나는 대로 빨래를 하고 자잘한 설거지를 하고 돌돌이를 밀고 다닌다.

막내가 백일이 되자마자 귀신같이 알고 찾아온 산후탈모로 쥐도 새도 모르게  머리카락은 어쩜 이리도 숭덩숭덩 잘만 빠지는지. 방금 닦은 바닥인데 뒤돌자마자 어디서 이렇게 자잘한 먼지들이 생겨나 바닥을 굴러다니는지. 해도 해도 끝이 없다며 중얼중얼 혼잣말을 내뱉으며 말이다.

 

아이들은 감기에 걸렸지만 다행히도 에너지가 넘치는 통에 산책도  나가게 추운 겨울 날씨가 얄밉기만 하다. 날씨 탓만 하며 가라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이왕 보내는 시간, 재밌게 보내보자 마음을 다잡고 

아이들과 함께 물감과 도화지, 붓을 꺼내어놓고 그림도 그려본다.

서로 자기가    보라며 깔깔깔 웃다가 물감이 잔뜩 묻은 손으로 새하얀 커튼을 움켜잡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잠시  홀로 말을 잃는다. 그러다 가끔 셋이서 돌아가며 잉잉 울어대면 잠시 영혼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분명 북적북적 아이들이랑 부대끼고 있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귀하고 행복한 시간,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 언저리가 묵직한 돌이 들어앉은 것처럼 무겁다. 무한히 반복되는 요즘의 일상이다.



느린 듯 숨 가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럼에도 놓고 싶지 않은 일을 간신히 붙들고 있다.

아이들이  노는 시간에는 식탁 한편에 책을 펼치고 앉아  공간을 만든다. 아이들은 엄마가  속으로 빠지기라도 할세라, 책에 빠져들려는 엄마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듯 끊임없이 말을 건다.


아이들한테 집중한 뒤에 내 시간을 가질 요량으로 아이들과 실컷 놀고 난 후에 이렇게 말해봤다.

‘이제부터는 잠시 각자의 시간이야. 각자의 놀이를 하는 거야. 엄마는 잠시 부르지 않기. 알겠지?’

‘응 엄마.’

‘엄마, 그런데 하츄핑은 누가 할래? 엄마가 해.’ (우리 딸이 제일 좋아하는 만화 속 캐릭터다.)

‘엄마, 요구르트 먹고 싶어요’

‘엄마, 요구르트 껍질 까주데요’


각자의 시간을 갖자는 말에 바로 알겠다고 수긍해주는 아이들에게 고마워 마음이 벅차오르려는 순간,

아이들은 잠시 각자의 시간을 갖자는 나의 외침이 민망할 만큼 아무렇지 않게 다시 엄마를 연거푸 부르는 것이었다. 그냥 - 웃음이 나왔다. 그럼 그렇지.  꼬마 아가씨들에게 엄마가 무리한 부탁을 했구나.


‘안녕하세요. 선생님? 여기가 유치원인가요?’

‘네, 잘 찾아오셨네요? 어서 오세요~ ’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치원 놀이가 시작되고, 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레학원 놀이가 시작되어있다.

열심히 대답해주며 책을 읽고, 생각나는 글감이 있을 때마다 혹시 잊어버릴까 싶어 얼른 메모해놓는다.

그림으로 그려놓을 거를 대비해 시간이 허락하면 스케치도 후다닥 그려놓는다. 설거지를 하거나 막내 수유하는 시간에는 글쓰기,  쓰기에 대한 영상을 틀어놓고 들으면서 육아 외의 것들을  머릿속에서 놓지 않는다.


도저히 틈이 안나는 날에는 사실 ‘에이, 내가 애보느라 바쁜데 뭘 해보겠다고..’ 싶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나는 왜 이렇게도 책을 읽고 싶고, 글을 쓰고 싶을까.

온전히   뉘어  시간도 없으면서  이토록 안달이 나있을까. 생각해보니 이것은 나를 달래는 방법이었으며,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눈에 보이게 나를 남기는 방법이었다.


정신없는 틈에  번씩 책을 펼쳐 읽는  줄의 문장은 나를 다독이는 위로였고, 잘하고 있으니  힘내라는 응원이었다. 잠시 지쳤다고  자리에 머무르면  된다고 일어나서 뭐라도 하라고 나를 자극하고 일으키는 달콤한 채찍이었다.


육아를 하다 무기력이 찾아오면  마음을 어찌할  몰라 바닥까지 내려가 버둥거리던 내가 글쓰기를 만난 이후로 조금은  마음을 들여다보고 정리할  알게   같다. 틈날 때마다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내려가는 시간만큼은 온통 하루가 아이들로 가득  나의 시간 속에서 오로지 나의 마음과 생각에만 집중할  있었다.


얽히고설킨 내 마음속의 실타래를 찬찬히 풀어내어 잘 어루만져 단정히 감아놓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엉킨 마음을  정돈해서 감아놓으면 아이들에게 훌훌 풀어서 누어 주고도, 내가  만큼의 여유분이 생기는  같아서였다.


매일 집안 곳곳을 반짝이게 닦아내고,  아이들을 살뜰히 살피며 하루를 바삐 보내는데 지나 보면  속에 나는 없는  같고, 이대로 내가 사라질  같아서 불안하여 길을 잃으려는 마음을 이렇게나마 붙잡아둔다.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오늘은 켜켜이 쌓여가고 있음을 남기고 싶어 글을 쓴다.


아이들과 보내는 정신없고도 행복한 하루 속에서 그럼에도 읽고 쓴다. 재잘재잘 아이들 말소리가 따라오는  시간 틈틈이. 그리고 식구들이 모두 잠든 칠흑 같은 밤과 새벽에.


켜켜이 쌓아 올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