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의 모의고사 날, 오랜만에 성당을 갔다.
"오소서 주 예수여, 내 마음에 오소서..."
영성체시간을 시작하는 성가와 함께 무덤덤하던 마음이 왈칵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영성체를 하러 신부님에게로 걸어가는 줄에서 왈칵하던 명치께가 출렁거렸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하는 영성체라 틀리지 않으려고 앞 옆 사람이 왼손을 위에 놓고 오른손으로 성체를 집어 드는 걸 확인한 다음에 신부님이 손바닥에 놓아주시는 영성체를 입 안에 살포시 모셨다. 그리고 내 자리로 걸어와 앉은 후에 출렁거리던 명치가 넘쳐 눈물로 고였다. 하지만 울지 않으려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살짝 젖힌 다음 이를 꽉 물었다. 뭐가 울 일이 있다고.
그렇지. 나는 울 일이 없다. 이런저런 일이 있어도 잘 먹고 잘 산다. 고2인 큰 아이가 공부를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학교를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고 이만하면 충분할 만큼 잘 크고 있다. 치열해진 인서울 경쟁에 승리자가 되는 것이 앞으로의 인생에서 승리일지는 모르는 일. 그리고 도대체 승리란 뭔가. 초6인 작은 아이는 무난하게 잘 크고 있다. 요즘 6학년 치고는 공부를 안 하지만 요즘 6학년 치고는 운동을 다양하게 많이 하고 있고 집에서는 막내지만 밖에서는 사회적 12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니 됐다. 그런데 왜 눈물이 날까? 성령이 정말로 내 마음에 오셨나?
오늘 아침 성당에 간 이유는 지킴이 어머니 중 한 분이 사정이 생겨 내가 대타로 나갔기 때문이다. 큰 아이의 모의고사 날이라 평소보다 일찍 깨워 밥을 먹여 학교를 보냈고 작은 아이는 원래 일찍 학교에 가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같이 집을 나섰다. 8시부터 지킴이 대타를 서는 장소가 성당 앞인 데다가 마치고 나면 9시이고 미사는 10시이므로 성당 옆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미사를 가면 딱 맞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가 부지런하게 시작되는 김에 커피도 마시고 미사도 보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어릴 때부터 성당을 다녔지만 결혼하고는 무교인 남편과 사느라 성당을 거의 가지 않았다. 기도할 거리가 많았던 20대 때는 성체조배실에서 묵상도 할만큼 성당을 간절하게 다니던 때도 있었는데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키울 때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기도였던 것 같다. 하느님을 찾진 않았지만, 아니 하느님을 무수히 찾았지만 성당에 가서 찾지는 않았다고 할까.
그런데 내 인생에 기도가 필요한 순간이 다시 돌아왔다. 안 늙은 마음을 가지고 늙은 몸을 느끼며 사는 확실한 중년이 되었고, 아이들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며 설사 내 마음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인생이 될 것이기 때문에 나와 큰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조금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성당에 가고 싶어졌다. 젊은이들에게는 특별한 고통이 있지 않은 이상 대체적으로 마음대로 사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데다가 살기가 어려우면 마음을 바꾸기도 쉽다. 하지만 늙어서는 몸도 마음도 바꾸는 게 다 쉽지 않으니 무기력해지는 자신을 무언가에게 의탁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종교에 대한 회의적인 마음이 많은 요즘이지만 그래도 어린시절의 한 부분으로서 종교생활은 이렇게 습관처럼 떠오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무덤덤한 마음으로 성당 의자에 앉아 등이 아프구나 내 등이 좀 굽어서 뼈가 튀어나왔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난 것이다. 그래서 갱년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