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샌드위치

by 효원

51.

분홍색 사인펜으로 달력에 날짜를 썼다.

무려 51일만의 생리.

6학년 졸업식 즈음 초경을 한 이후로 임신 출산 기간을 제외하고 평상시에 한 생리 중에 가장 긴 주기다.

지난 2년 정도는 14일만에 생리를 또 하는등 정신없이 짧은 주기였는데 올해 들어서는 한 달씩 건너 뛰는 것같이 긴 주기의 생리가 나온다. 난자가 늙었나보다. 산부인과 선생님은 여성호르몬이 아직 정상이라고 했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폐경이 다가오고 있다. 빨랐다 느렸다 평생을 체크했던 생리주기는 제멋대로 변하고 있구나. 7월 중순, 더워지기 시작하기 전에 생리하고 더위를 오롯이 피한 다음, 9월 초, 이불을 끌어당기며 자게되는 선선해진 날씨에 생리를 한다. 더위를 피해줘서 고마운 마음이 드네. 늙는 게 좋은 것도 있구나. 건너뛰고 빼먹고 까먹어서 편한 것도 있네.


오늘 아침엔 포카치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토마토 포카치아는 그 자체로 토마토의 풍미가 진하다. 하지만 작은 아이 친구네한테 받은 가지가 많아 가지 포카치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로 한다. 빵을 먼저 굽고 그 팬에 베이컨을 구워 기름을 내고 거기에 소금에 절여둔 가지와 느타리 버섯을 함께 볶는다. 타임과 파슬리를 뿌려 향을 내고 불을 끈 다음 후추와 발사믹 식초를 뿌려 섞는다. 갈라진 빵 한쪽 면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나머지 한쪽 면에는 머스타드와 스리라차소스를 바른다. 그리고 볶아놓은 가지버섯베이컨을 조심조심 얹고 루꼴라와 청상추를 얹은 다음 뚜껑을 덮는다. 무척 맛있을 것 같지만 그냥 샌드위치 맛이다. 샌드위치엔 단맛이 좀 들어가야 맛이 끌어올려지는 것 같아 블루베리 잼을 조금 넣었더니 역시 더 맛있다. 하지만 너무 소스들을 이것저것 넣었나. 치즈만 바르고 겨자랑 스리라차는 넣지 말걸. 반만 먹고 반은 랩을 싸서 냉장고로. 숙성되고 먹으면 또 다른 맛. 배를 꽉 채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요즘이기도 하고.


나만을 위한 샌드위치는 에너지 충전이다. 식사준비이지만 식사준비가 아니다. 수고스럽게 해야 에너지 충전이 된다. 예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이라는 책에서 부자들이 온갖 유흥과 여행과 쇼핑을 다 경험하고 나면 어떤 것에도 감흥을 얻을 수 없게 되고 마지막에 찾는 것이 '힘든 일'이라고 했다. 마치 집도 절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처럼 허름한 옷을 입고 하루종일 농사를 짓는다거나 굳이 힘들게 몸을 움직이고 오감을 이용해 수고스럽게 무엇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무언가를 소비하는 주체가 되는 일이 주는 만족감은 한계가 있고 간접적이라 오래 지속하기 힘들고 무언가를 생산할 때-그것도 몸이 수고스럽고 힘들게 생산할 때 체화되는 기쁨이라는 것이 본질적이고 지속가능한 동력이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굳이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고 난 다음에 나만을 위한 커피와 식사를 만드는 일이 주는 기쁨을 가지는 것.


결과물의 완성도가 더 높았으면 만족감이 더 커지고 자존감이 더 높아졌을텐데 디테일을 챙기는 일에서 세심함을 발휘하지 못하는 근성부족과 저질체력이 결과물의 완성도를 보장해내진 못했다. 그것이 나의 한계이고 현실이고 능력이다. 그래서 싫은 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