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니셰린의 밴시>
말 실수 한 거 없어 .
잘못한 것도 없고.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은 인생은 사색하고 작곡하며 살 생각이야.
쓰잘데기 없이 자네 한심한 얘기나 듣고 있긴 싫어.
미안하게 생각해. 진심이야.
혹시 죽어요?
아니 안 죽어.
그럼 시간 많잖아요.
수다 떨 시간?
네.
무의미한 수다? 무의미한 수다가 아니라 즐겁고 평범한 수다죠.
무의미한 수다로 시간을 낭비하면 12년 후 죽을 때쯤 뭐가 남겠나?
모자란 친구랑 수다 떤 것 말고.
무의미한 수다가 아니라 즐겁고 평범한 수다라니까요.
요전엔 날 붙들고 두 시간이나 당나귀 똥 속에서 뭐가 나왔다 떠들었어. 두 시간이나! 내가 시간도 쟀어.
당나귀 똥 얘기가 아니었어요. 조랑말 똥이었지. 듣지도 않으셨네.
도움이 안 되긴 매한가지야.
None of it helps me.
갑자기 절교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럼 왜 안돼?
왜 안되냐고요? 못된 짓이니까요.
오빠가 취해서 말실수했어요?
아니 취하면 낫지. 멀쩡할 때보다 그때가 나아.
그럼 뭐가 불만이에요?
사람이 지루해.
뭐라고요?
지루해.
원래 지루했잖아요. 뭐가 변했는데요?
내가 변했어. 이제 인생에 지루함을 둘 자리가 없어.
아일랜드 외딴섬에서 뭘 바라는데요?
한 줌의 평온.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이해해 줄 수 있지?
그렇지?
콜름, 당신 예전엔 어땠는지 알아요?
아니, 내가 어쨌는데?
다정했어요. 전엔 다정했어요.
지금은 어떤지 알아요? 다정하질 않아요.
다정함이 영원히 남진 않지?
뭐가 영원히 남는지 말해줄까?
뭔데요? 음악 같은 소리 말아요.
음악이 남아.
그림이 남고 시가 남지.
다정함도 그래요.
다정했던 17세기 사람이라면 누가 떠오르는지 알아?
누구요?
한 명도 안 떠올라. 하지만 그 시절 음악은 모두가 기억하지.
모차르트의 이름은 모두가 알아.
난 모르니까 틀린 얘기네요. 그리고 다정함을 얘기하는 거잖아요.
우리 엄마는 다정했어요. 난 엄마를 기억해요.
아빠도 다정했고 아직 기억해요.
내 동생도 다정해요. 내가 영원히 기억할 거예요.
또 누가?
또 누가 뭐요?
누가 자네의 다정함과 시오반을 기억하냐고.
아무도 못해.
50년 후면 우린 모두 잊혀져.
허나 2세기 전에 살았던 자의 음악은...
난 모차르트고 뭐고 관심 없어요.
이름 골 때리는 인간들 관심 없다구요.
난 파우릭 설리반이에요.
그리고 난 다정해요.
집을 태운 걸로 이제 끝나는 건가.
집 안에 있었어야 끝이죠. 근데 안 그랬잖아요.
당나귀 일은 미안해. 진심이야.
그러든 말든.
본토에서 총성 안 들린 지 이틀 됐군. 끝나가는 모양이야.
분명 조만간 또 시작할걸요.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일들도 있는 거니까. 그게 좋은 것 같아요.
파우릭, 내 개 돌봐줘서 고마워.
Any time.
인생에 지루함을 둘 자리가 없어진 콜름은 사색하고 작곡할 그의 시간을 빼앗는 무의미한 수다 친구 파우릭과의 절교선언을 통해 그의 남은 시간을 처절하게 지키고 싶어한다. 그러나 절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파우릭은 콜름에게 자꾸만 말을 걸고 콜름은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파우릭에게 내던짐으로써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상기시킨다. 콜름에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다정함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콜름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사라져 가는 시간이다. 하지만 파우릭은 다정했던 콜름의 변화가 이해가 안 된다. 여전히 다정한 파우릭에게 왜 콜름은 더 이상 다정하지 않은가.
시간이 제일 아깝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라 콜름의 말에 공감이 됐다. 집안의 물건을 줄인 것도 그 물건들에 신경 쓸 시간을 줄여 내 인생에 좀 더 할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굴에 지워야 할 무엇을 안 바르고 싶은 것도 그것을 지운다고 세수하는 시간조차 아끼고 싶기 때문이고. 그런데 다정함이라... 영원히 남는 음악과 사라져 버리는 다정함 중에 무엇이 더 지금 이 순간에 콜름과 파우릭에게 필요할까. 동생 시오반도 떠나고 유일하게 다정했던 당나귀 제니가 콜름의 손가락을 먹다가 질식사하자 파우릭은 이제 더 이상 콜름의 존재가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콜름은 어떤가. 자신의 음악을 영원히 남기고자 하였지만 그 마음을 증명하려고 자른 왼손 다섯 손가락 때문에 더 이상 바이올린 연주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영화 내내 파우릭의 사랑을 느꼈다. 콜름의 지루함은 파우릭의 다정함 덕분일 것이다. 콜름은 이 다정함이 변치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자신의 시간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가능했을 거다. 맨 정신의 파우릭은 지루하고, 그 지루함이 자신의 변화와 상관없이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것을 알기에 남은 인생을 파우릭에게 쓰고 싶지 않다는 사랑의 강자가 될 수 있었다. 손가락이 잘리고 집이 불태워지는 것쯤이야 개의치 않는 콜름이지만 그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더 이상 파우릭과 함께 보낼 수 없다는 굳은 마음. 그것을 안 파우릭은 어땠을까. 하지만 그러든 말든, 끝까지 파우릭은 콜름을 사랑한다. 불타는 집 안에 있어서 콜름이 죽었더라면 이 사랑이 끝났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살았고 그렇다면 콜름의 존재가 파우릭에겐 그냥 넘기지 못하는 일이니까. Any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