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진짜. 대단하다, 인간아 ㅋㅋ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입니다.
비행기는 저녁 비행기라 오전에 여유롭게 체크아웃을 한 후에 루브르 박물관을 찍고, 공항으로 가면 됩니다. 오늘의 유일한 일정은 '루브르 박물관'인 셈이죠.
조식을 먹는 식당의 통창 안으로 파리의 따스한 햇빛이 쏟아지듯 들어옵니다. 이쁜 만큼 맛있던 치즈도, 빵도, 디저트도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하니 아쉽기 그저 없네요.
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으로 아빠와 함께 가는 가족들을 보니, 집에서 혼자 출퇴근하고 있을 남편 생각이 (거의 처음으로?) 납니다.
"얘들아, 아빠랑 같이 왔으면 좋았겠지? 여행하는 동안 아빠 없어서 아쉬운 적 없었어?"
라고 묻자, 아들이 대답합니다.
"응. 지금이야. 지금 아빠 있었으면 좋겠어."
아들도 저와 같은 감정을 느꼈나, 싶어 1초 뭉클했다가 이유를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이 정말 뭉클합니다.
"내가 계란 오믈렛을 지금 2번 받아왔거든. 이거 한 번 더 가고 싶은데 내가 또 가면 너무 돼지 같잖아. 지금 아빠가 있었으면 아빠를 보내면 될 텐데. 아쉽네. 쩝."
그러니 딸도
"오? 천잰데?"
하며 동조합니다.
이럴 때 아빠가 필요하군요.. ㅎㅎㅎ
계란 오믈렛 덕분에, 몰랐던 아빠의 용도를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여행 중 어느 날 보다도 가장 천천히,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짐을 정리하고, 호텔에 짐을 맡겼습니다. 루브르 박물관까지는 호텔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저의 계획은
1. 루브르 박물관까지 파리의 낭만을 즐기며 걸어간다.
2. 루브르는 1시간 만에 최단 경로로 시그니처 작품만 찍먹하고 나온다.
3. 루브르 주변에 기념품 가게에서 쇼핑을 하면서 호텔로 온다.
4. 공항으로 출발한다.
였습니다.
1번 계획을 실행합니다. 눈부신 햇살과 진짜 하늘색인 하늘, 드레스 업! 한 다양한 나라의 언니들이 활기차게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며 걸어가는 동안의 낭만을 충전합니다. 그런데 백화점이 즐비한 거리에 교차로마다 노숙자 선생님께서 아주 편하게 누워계신 풍경이 적잖게 발견되었습니다.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워낙 큰 거리에 관광객들이 많아서 특별히 걱정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멀찍이 떨어져서 있었는데, 딸이 귀에다 대고 조심스레 속삭입니다.
"엄마, 같은 노숙을 해도 파리에서 하는 게 더 좋은 거 같아. 런던에 있던 노숙자들은 날씨가 춥고, 비도 계속 오고 해서 불쌍해 보였는데, 여기는 날씨도 따뜻하고... 저 사람들도 뭔가 불쌍해 보이지는 않는데?"
이렇게 홈리스의 삶에서 온대 해양성 기후와 서안 해양성 기후를 비교해 보는 지리 탐구 시간을 가져봅니다.
"그래, 우리도 나중에 노숙할 거면 최대한 따뜻하고 비 안 오는 남쪽에서 하는 걸로 하자. ㅋㅋ"
혹시 모를 미래에 대해서 사이좋게 약속을 한 후,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들을 요리조리 지나, 이건가 저건가 하는 사이 어떤 문을 쏙 지나서 나오니, 넓은 광장이 펼쳐지고, 루브르의 상징인 유리피라미드가 딱! 등장합니다. 한류는 한류인지, 런던 내셔널 갤러리 앞에서 K-POP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던 소녀들과 비슷하게 여기도 한쪽 구석에서 익숙한 K-POP과 함께 대열을 맞춰가며 열심히 춤을 추고 있습니다. 살짝 으쓱! 하는 기분은 뒤로 하고, 피라미드 꼭대기를 손으로 살짝 집고 있는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어봅니다.
그런데, 딸이 사진 찍기가 싫답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아서 그래라~하고 냅두고 아들과 열심히 사진을 찍고, 사진을 부탁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 사진도 찍어주고 하면서 한참을 놀고 있었습니다. '이만하면 됐다' 싶을 정도로 사진을 찍고, 루브르 계단 난간에 앉아 멋지게 휴대폰을 주구장창 하고 있는 딸에게로 갑니다.
"OO아! 이제 가자!"
"싫어."
"읭? 왜?"
"안 가. 내가 박물관 안 간다고 했지. 나는 안.가."
"아니? 진짜 안 간다고?"
"어."
"모나리자 안 본다고?"
"어."
"여기까지 와서?"
"어."
와.
'여기까지 와서.'
저 말은 여행 중에 안 내뱉으려고 했던 몇 가지 말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내뱉고야 말았습니다.
그래도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해봤다", "가봤다"... "봤다"인데
루브르 피라미드 앞까지 와서, 게다가 미성년자라 표도 무료인데!
나중에 어른되어서 오면 돈도 내고 들어가야 하는데! 루브르 비싼데!!
순간 험한 잔소리들이 머릿속을 다다다다 뚫고 지나갔지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애써 단도리합니다.
참아.. 참자..
나는 배운 사람이다..
나는 지능이 있다..
나는 학습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런던에서 오지게 당했잖아...
지금 여기서 얘를 끌고 갈 수 있느냐? 놉!!!
절대로, 그 어떤 방법을 써도 루브르 안으로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차가운 머리로 제대로 판단한 후에, 뜨겁다 못해 열이 뻗쳐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다정한 척, 괜찮은 척 억지웃음을 지어봅니다.
"아.. 그래...! 그럼, 어.. 엄마랑 OO이랑 둘이만 다녀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빨리 갔다 올게!"
저는 이 여행을 통해서 사춘기와의 동행에 있어서는 제갈공명 뺨 후려갈기는 훌륭한 전략가로 거듭났으므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조금 전 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서 혹시나 불똥이 본인에게 튈까 눈치만 보던 아들에게 명랑한 척, 힘차게 지시를 내립니다.
"OO아! 오늘의 우리 컨셉은 <루브르 찍먹>이야. 톡파원 찍는다고 생각하고 1시간 안에 딱! 세 개만 파파팍 보고 오자! 밀로의 비너스-니케-모나리자 이거 딱! 세 개만 보고 온다! 오케이??"
"응! 재미있겠다! 빨리 가자!"
아.. 왜 한 배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걸까요..?
(이 여행 이후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유럽 여행은 사춘기가 오기 전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늘 추천하고 다닙니다. '안 가 & 안 해 & 내가 왜' 병(病)이 들고 난 이후의 유럽 여행은 정말 가성비 포기 여행입니다.)
한바탕 실랑이를 하느라 입장 예약 시간이 30분은 지나버렸습니다. 입장시간 늦었다고 쫓아내지는 않겠지- 하며 줄이 긴 피라미드 입구로 가서 줄을 서 있었는데, 직원이 표를 보더니 이 표는 늦었으니 이 입구 말고 다른 입구로 가야 된다면서 저 구석 어디로 가라고 안내합니다. 안 그래도 뛰어다녀야 되는데 입장부터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직원이 안내해 준 입구는 리슐리외관의 입구였는데, 도착해 보니 원래 서 있던 줄보다 줄이 훨씬 짧고 사람이 적어서 쾌속 입장이 되었습니다. 입장 후 피라미드의 유리창으로 빛이 쏟아지는 메인 로비로 도착했습니다.
"자! 이제 시작이야. 뛰어."
루브르 동선을 알려주는 유튜브 화면을 재생시켜 놓고, 비너스상을 찾아 달려갑니다.
헥헥. 비너스는 쉽군요.
"자! 앞에 서! 사진 찍자. 됐어. 가자."
런닝맨인지 뭔지 모를 달리기 후에 정말로 한국식 관람(이라기 보다는 목적성이 분명한 사진 촬영)을 하고 다음 목표로 달려갑니다.
"엄마 저 비너스 팔이 왜 잘린 건지 내가 말해주ㄲ....."
"응. 몰라. 나중에 이야기해."
영국박물관에서 봤던 아들의 가이드를 들으면서 여유롭게 작품을 관람하는 가족들이 참 부러웠는데, 지금이 그 기회인데! 들을 새가 없습니다. 이미 입장부터 비너스까지 30분이나 걸렸거든요. 야. 그거 나중에 말해. ㅋ
멈춰놓았던 유튜브 화면을 다시 재생합니다. 니케로 가는 길을 알려줘. 롸져 댓.
니케로 가는 길을 스캔하고, 딱 봐도 엄청난 유물들이지만 너무 많아서 복도 장식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각종 작품들을 스치듯 지나갑니다. 다들 여유롭게 쉬엄쉬엄 걸어가지만 우리만 지하철 도착 방송에 맞춰서 비어있는 에스컬레이터 왼쪽 라인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는 바쁜 현대인처럼 인파를 제치고 니케를 향해 뛰어갑니다.
"엄마! 니케다! 보인다, 날개!"
높고 웅장한 천장 아래, 누가 오든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계단 끝에, 누가 봐도 주인공인 니케가 뱃머리 위에 서 있습니다. '자태'라는 단어를 여기에다 쓰는 거구나, '아름답다, 우아하다'라는 단어도 이런 곳에 갖다 붙여야 하는구나 하는 압도적인 예술작품.
곳곳에 스케치를 따고 있는 미술인들과 여러 국적의 가이드와 관람객들이 니케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물고 뜯고 맛보고 있는 사이, 밖에 사나운 누나가 기다리고 있는 코리안 엄마와 아들은 감상 따위 즐길 틈이 없습니다.
"오! 옷 표현 봐봐! 어떻게 저렇게 했지? 쩐다!"
"야, 서. 사진 찍자. (찰칵) 됐다. 가자!"
니케도 봤고, 사진도 찍었고. 이제 마지막 미션입니다.
모나리자.
루브르의 주인, 모나리자를 만나러 갑니다.
모나리자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유튜브를 다시 재생시키고, 길을 따라갑니다. 사실 곳곳에 모나리자와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우리만 찍먹하나요?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른 나라 사람들도 루브르 찍먹 엄청 많을걸요?
자. 모나리자를 향해 갑니다. 그런데 안내판을 따라서 가도, 루브르는 어찌나 넓디넓은지, 한 번에 나오지 않고 여긴가 저긴가를 한참을 왔다 갔다 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댕깁니다. 이게 정말 찍먹도 힘든 게,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막 모여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럼 또 나도 모르게 "유명한 건가.." 하며 한번 슥 갔다가 그림 제목이랑 작가도 한 번 보고, 아는 작품이면 "음.."하고 지나가고 이러다 보니 모나리자로 직행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천장은 또 얼마나 화려한지. 고개를 도마뱀처럼 돌리면서 바쁘게 지나다녀도 마음은 급하고, 발에 채이는 작품들을 마구 스쳐 지나가면서 속으로는 '그래. 시간 없어서 다행이다. 이거 다 여유 있게 보다가는 하루가 다 날아가겠어.' 하며 억지 긍정을 해보기도 합니다. 시간은 벌써 한 시간이 지났고 모나리자는 아직 못 만났고요.
그러다가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웅성웅성하는 비밀의 방 같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여기네. 찾았다!"
하고 바로 진입하자 인파에 둘러싸인 모나리자가 저 멀리 떡하니 전시되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몇 번의 사건사고와 유명세 덕분인지 모나리자는 유리창과 난간과 울타리에 여러 겹 둘러싸여 국빈 대접을 받으며 벽에 걸려있었습니다. 모나리자도 신기했지만 그 앞에 바글바글 모여있는 사람들이 더 신기했습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모나리자>야.'
라고 말하는 사람을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모나리자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요?
저희 동네에 오픈런은 기본이고 그냥 가면 2시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하는 생선구이집이 있거든요. 동네 사람들은 '줄 서기 싫어서 귀찮아서 안 간다', '뭐.. 그렇게까지..' 하는 식당이 있는데.. 뭔가 고등어구이 같은 색감의 모나리자와 그 앞에 몰려있는 인파를 보면서 그 생선구이집이 떠올랐다가 사라집니다. 모나리자에 대한 모독인가요? ㅎㅎ
여튼! 그래도 멀리서만 보기는 아까우니 순서를 따라 모나리자를 영접하러 갑니다. 혼자서만 조용히 본 것 같은 뒷통수샷을 찍고 돌아섭니다.
"야. 모나리자 별거 없지? ㅋㅋ 나중에 유튜브로 더 자세히 봐."
"어! 모나리자도 봤으니까 됐고, 이제 세 개 다 봤지? 가자, 이제!"
초고속으로 본다고 봤지만 시간은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났습니다. 딸아이의 인내력이 바닥날 때가 되긴 했는데요, 아직 연락이 없는 걸 보니 조금의 인내력은 남아있는 걸로. 일단 딸이 더 빡치기 전에 출구를 찾아 광장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이제 나가자. 뛰어!"
유튜브는 유명 작품으로 가는 길만 인도했지, 루브르에서 나가는 길을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 갔던 그 피라미드 밑 로비로 갔는데, 아무리 봐도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어서 거기서 뱅글뱅글 돌다가 시간을 또 잡아먹었습니다. 이때, 전화벨 소리가 울립니다.
"여보세요?"
"안 와?!!!"
와 앙칼져... ㅠㅠ
"어.. 지금 다 보고 나가려고 하는데 못 나가고 있어."
"못 나온다는 게 무슨 소리야? 그게 말이 돼?"
"어. 말이 안 되지..? 근데 진짜 못 찾고 있어. 빨리 나갈게!"
루브르 광장에서 휴대폰 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나 봅니다. 일단 어디 잡혀가지는 앉고 무사히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긴 한데, 빨리 가서 만나야 할 텐데요. 아무리 찾아도 입구는 없습니다. 그러다가 출구라고 적혀있는 곳을 발견하고 냅다 달려갑니다. 그런데.. 달려갔는데.. 출구는 안 나오고 무슨 백화점 같은 곳이 나옵니다. 어.. 왜 갑자기 백화점이지... 그럼 백화점에는 출구가 있을 거 아닙니까? 그래 오히려 잘됐다. 일단 지상으로 올라가자, 하고서는 1층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올라갔는데 여기도 출구가 오리무중입니다?
다시 전화가 옵니다. 재촉전화...
"아니!!!! 어디냐고!! 안! 오! 냐! 고!!!!"
나도 나가고 싶다고..
몇 번의 재촉전화와 몇 번의 에스컬레이터의 오르락 내리락과 땀범벅을 통해서 어쨌든, 드디어, 루브르를 탈출했습니다. 짜랸~! 이제 밖이다!!!
헉. 근데 이게 뭐야.
계단을 딱 올라와서 보니 무슨 광장이 펼쳐져 있고, 루브르 박물관은 저 멀리 있었습니다. 아마 지하로 연결된 쇼핑몰을 헤매다가 길까지 건너온 모양입니다. 아.. 또 이러면 딸한테 혼구녕이 나는데요. 이미 땀에 절었지만 식은땀이 한 방울 더 납니다.
다시 울리는 전화벨.
"어.. OO아. 지금 나왔는데.. 엄청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왔어.."
"아!!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자꾸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해! 들어간 데로 나오면 되잖아!!"
그래 말이야.. 나도 그러고 싶었지... 허허
루브르 입장부터 뛰어다녔는데, 또 뜁니다.
오늘 집에 가니까 뭐.. 비행기에서 자면 되니까요. 하하.
횡단보도를 뛰어서 건너고, 또 광장을 넘어서 피라미드를 또 지나고 ...
뛰고 또 뛰어서 딸이 있는 곳으로 도착합니다.
"아,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그래 그럼 니도 같이 갔으면 됐잖아..)
"어. 그래도 최대한 빨리 온 거야.. 너도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 몰라. 유튜브로 보면 되지. 다 봤어. 모나리자 많이 봤어. 뭔지 알아."
하긴. 모나리자 안 본 사람 있습니까? ㅎㅎ
다 알죠. 그거나 그거나.
여기에 앉아있던 너나, 뛰어다니며 루브르 찍먹하고 1시간 만에 나온 우리나 본 건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사실 뭐.. VR로 봤으면 더 오래, 잘 봤을지도 모르죠.
딸아이가 루브르 피라미드 광장 난간에서 신나게 유튜브를 봤던 6학년 겨울방학의, 파리에서의 공기와 햇살이 모나리자보다 더 깊이 기억되길 바라면서... 호텔로 짐을 찾으러 가자고 하며 루브르를 떠납니다. 신혼여행 때 첫 번째 루브르, 지금 두 번째 루브르인데 두 번 다 큰 감흥이 없었으니 이 정도면, 파리 오셔도 루브르 박물관 꼭 안 가셔도 될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이 순간은 아이의 고집에 화를 내지 않은 나 자신에게 엄청난 리스펙을 보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와. 어떻게 참았죠?
그 비법은 바로 런던에서 부모의 인내심의 부족이 어떠한 아사리판을 창조해내는가를 몸소 경험하고 얻은 여행의 기술에 있었다고나 할까요...ㅎㅎ
다시 길은 되돌아 호텔로 갑니다. 호텔에서 짐을 찾고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낑낑대며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갑니다. 파리에서 첫날 택시에 오지게 당하고 나니, 택시도 나름 무서워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습니다. 나름 대낮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이것은 또 오판이었습니다. 평일 대낮에 무슨 지하철에 사람이 그리도 많은지. 소매치기가 내 눈앞에서 가방을 털어가도 끽 소리 한번 못 낼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가는 날에 털릴 수는 없으니 조선시대 시골에서 처음 상경한 사람처럼 가방을 앞으로 둘러 안고 철창 수비를 하며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숨 막히는 인구밀도를 뚫어내고 지하철은 외곽 어디론가에 도착했고, 어찌저찌 공항 가는 철도로 바꿔 타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하. 이제 진짜 집에 간다. ♡
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하고, 마지막 남은 유로화를 탈탈 털어 편의점에서 바게트를 하나 샀습니다. 파리에서 제대로 된 빵 한번 못 먹어본 거 실화냐.. 하며 바게트를 베어 물었는데.
아. 존나 맛있었습니다. ㅜㅜ
진작 사 먹을걸..
루브르 가지 말고 빵이나 사 먹을걸.
저희는 바보 같은 여행을 했었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빵을 싫어해서 빵을 굳이 사 먹지 않았는데 내가 빵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빵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나는 맛없는 빵만을 먹어서였던 것입니다!!!
파리의 마지막 날이 남긴 것은
루브르도, 모나리자도, 파리의 눈부신 햇살도 아니었습니다.
빵이었습니다. 바게트.
파리 바게트가 파리 바게트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트에서 그냥 산 바게트도 이렇게나 맛있다니.
"파리에서는 닥치고 빵을 사 먹자"
이거 하나 강렬하게 남았습니다.ㅋㅋ
저희 아이들도 바게트를 먹더니
눈이 휘둥그레.
"이거 진짜 맛없게 생겼는데 왜 맛있어?"
그러게나 말이야..ㅎㅎ
담에는 파리에 빵 사 먹으러 오자.
엄마도 커피 한 번 여유롭게 마셔보자.
끝내주는 카페에서. 이쁘게 앉아서...
이렇게 길고도 짧았던 여행이 끝이 납니다.
파리 공항은 면세점도 너무 아름답고, 파리 디올 매장에 BTS 지민이 떡하니 메인 모델로 사진이 붙어 있는 걸 보니 국뽕도 차오르고 끝까지 너무 좋지만.
돈도 없고. 피곤합니다.
하. 드디어 끝났다.
이제 소매치기당할까 봐 긴장 안 해도 되고,
끼니마다 식당 안 찾아도 되고,
딸 눈치도 안 봐도 됩니다!!
이제 이게 싸가지 부릴 때마다 참교육 들어가도 됩니다. 안 참아도 된다 이 말입니다!
ㅋㅋㅋㅋ
아쉽지만 다시 오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는 상태로 비행기에 탑승합니다.
셋 다, 사지 온전한 상태로
여권, 지갑 잃어버린 것 없이
무사히 여행 끝~~~~~~~~!!!!!!!!!
* 죽은 줄 아셨죠? 잘 살아 있습니다. ㅎㅎ 너무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잘들 계셨죠?
* 다음 편, 에필로그에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