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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입냥이 Feb 09. 2024

버터치킨카레로 임신을 맞이하는 자세

이토록 버거운 임신

“아이가 보이질 않네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어요.”


작년 이맘때, 그러니까 임신 7주 차에 접어들던 때였다. 초음파를 보니 빈집만 덩그러니 있고 아이의 흔적은 보이지 않아 의사는 내게 조심스레 말했다.


2주간의 미국여행을 마치고 온 뒤 밤낮이 미처 돌아오기도 전에 병원으로 한 달음에 갔다. 그러나 그 소식, 내내 있지도 않은 아이를 품고 다니며 설레기도, 노심초사하며 보냈다는 사실은 아직 시차적응조차 못한 내게 꽤나 잔혹한 선고였다.


특히 입덧이 심했었다. 나는 고기 한 점 못 먹는, 향신료 냄새는커녕 버터 냄새마저 역겨워 빵 한쪽 못 먹어가며 겪었던 그 수모들이 떠올라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그 뒤로 한동안 내게 임신은 설렘과 기다림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하늘도 이런 내 속내를 아는지 그렇게 꼬박 1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갖은 노력을 해보기로 한다. 그런데 이런, 시작부터 버겁다. 고작 처방받은 약 한 알에 입덧의 악몽이 재현된다.


음식이 당겨 먹으면 체하기 일쑤며 24시간 내내 마시지도 않은 술로 숙취에 시달리는 느낌에 변비와 무기력함은 덤이다. 임신도 아닌 임신’준비‘일 뿐인데 이토록 힘겹다. 남들은 잘 생기고, 무탈히 잘 낳는 것 같은데. 왜 나는 이렇게 임신이 힘든지 원망스러웠다. 잘못한 사람이 없어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몰라 더 서러웠다.


사람들은 고난이 닥치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와 같은 식의 사고를 종종 하곤 한다. 나 역시도 그렇다. 마치 내겐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난 듯한 자기 연민이 샘솟고 며칠을 물먹은 솜 마냥 가라앉는다.

그리고 그 물이 조금씩 말라갈 때쯤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래, 그러지 말란 법도 없지…‘


무엇보다도 내게 필요한 건 힘듦을 수긍하는 거였다. 얄팍하게 주위의 사람들을 살펴보며 처지를 비관하기보다, 어떻게 조금 편히 넘어가 볼 수 없을까를 궁리하기보다 그냥 각오를 다지는 것이 나은 계산이었다.


그리하여 차린 메뉴는 버터 치킨 커리. 임신을 할 미래의 나라면 아마 못 먹을 코코넛 밀크와 치킨을 듬뿍 넣어 만들 테다.


먼저 잘 달궈진 팬에 올리브오일과 버터로 채 썬 양파를 듬뿍 볶는다. 적당히 양파가 숨이 죽으면 덜어내고 밑간 한 닭다리살을 노릇하게 굽는다. 껍질과 반대면이 골든브라운의 먹음직스러운 색이 나오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준다.

밀가루로 가볍게 밑간한 닭은 눌어붙지 않는다. 아삭한 식감의 양파가 좋아 지나치게 카라멜화 하지 않았다.

다시 양파를 넣은 뒤 육수 두 컵을 넣고 커리페이스트와 생크림, 코코넛 밀크를 각 100ml씩 넣어준다. 태국식 커리의 맛이 익숙지 않다면 코코넛 밀크는 전량 생크림으로 대체해도 좋다.

페이스트는 키친오브 인디아.

커리가 뭉근해지면 그릇에 덜어 취향에 따라 요거트와 고수를 곁들여 먹는다.

홀몸일 때의 나는 외국음식의 본래의 맛을 즐기는 편이다. 향신료와 재료를 되도록이면 생략하지 않고 그 나라의 맛을 있는 그대로 즐긴다. 아이와 한 몸이 될 동안은 잠시 미뤄두어야 할 기쁨. 그러나 이건 네가 태어나 함께 맛보며 조잘거릴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오겠지.


힘들게 만나 우리의 만남이 더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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