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돌아본 하이퍼클라우드 7년 사
"하버드에서 창업 서적이 많이 나오잖아요. 옛날에는 ‘왜 저렇게 많지?’ 의문스러웠는데, 이제는 그 책이 왜 중요한지 알겠어요. 풀고자 하는 문제를 한 줄로 정의하는 게 이 정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문제를 풀면서 돈까지 벌어야 하는 게 창업인 거죠.”
하이퍼클라우드 창업가이자 CEO인 랄프는 7년 차 창업 히스토리를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과정으로 요약했다.
메타버스 AR 콘텐츠 솔루션 스타트업 하이퍼클라우드로 [메타] 출근을 시작한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난 에디터는 궁금했다. 지금이야 단독 사무실을 통으로 쓰고, 유능한 직원이 가득하다지만 회사가 늘 이렇게 잘 나가지는 않았을 터. 초기에는 분명 힘든 시기도 있었을 거다. 사람의 참모습은 잘 나갈 때가 아니라 고난을 겪을 때 나온다고들 하잖나. 하이퍼클라우드는 어떻게 고난을 극복하게 지금처럼 메타버스 행 궤도에 올랐는지 궁금했다.
하이퍼클라우드 홈페이지에서 히스토리를 살펴봤다. 수상 혹은 사업 선정 소식이 가득하다. 당연히도 마일스톤 사이에 고민과 고생은 잘 갈무리한 채 외부에 공개할 수 있는 실적과 사실만 건조하게 나열돼 있다.
행간이 더 궁금해졌다. 회사 약력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쌓아간 멤버를 수소문했다. 내 담당 셰르파인 유진 왈. “그건 랄프한테 바로 듣는 게 빠르겠는데요?” 그러고는 바로 랄프를 섭외해 왔다. 얼떨결에 [메타] 취업 일주일 차인 에디터가 하이퍼클라우드 창업자이자 대표(CEO)인 랄프(Ralph)에게 직접 물을 기회를 얻었다.
(첫판부터 끝판왕을 만난 것 같지만 기분 탓이다)
기왕 얻은 기회니, 하이퍼클라우드의 7년 역사를 마음껏 뜯어(?) 보리라.
하이퍼클라우드(HyperCloud)는 XR 기반 메타버스 콘텐츠를 클라우드 방식으로 구현해 기존 방식보다 시간과 비용을 1/3로 절감하도록 돕는 메타버스 XR 콘텐츠 솔루션 스타트업이다.
에디터 = 반갑습니다. 하이퍼클라우드를 [메타] 출근하는 에디터 안데르센입니다.
랄프 = 반갑습니다. 하이퍼클라우드 CEO를 맡은 랄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홈페이지 보니까 수상이나 사업 선정 실적이 화려합니다. 원래 발표를 잘하시나요?
랄프 = 잘하기보다는 많이 시도했습니다. 발표를 진짜 많이 했어요.
사실 꽤 긴장하는 편이라 발표 무대에 올라갈 때 센 척하면서 올라갑니다. 긴장감을 풀려고요. 무대 위에서 순간의 긴장감에 압도돼 준비한 걸 얘기 못 하면 저도 후회되고, 같이 준비한 팀원한테도 미안하잖아요. 그러니까 “까짓 거 즐기다 오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발표합니다.
Q. 마일스톤이 적지 않은데, 하이퍼클라우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벤트는 무엇일까요?
랄프 = 창업하고 5년 동안은 이렇다 할 매출을 만들지 못했어요. 정부 지원사업이나 사업화 지원금으로 버티면서 사용자한테 완결된 경험을 주는 방향으로 사업을 풀어나가려고 애썼죠. 그런데 그 고객이 처음 생각했던 쪽이 아니라는 걸 5년 만에 깨달았어요.
2021년 6월 수원 스마트관광도시 사업에 참여하면서 10억 원 매출을 내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갈 방향성을 확인했어요. 그동안은 B2C로 일반 사용자에게 집중했다면, 관광도시 사업에서 B2G 혹은 B2B로 솔루션을 제공하는데 사업 기회가 있다는 걸 봤죠. 2027년까지 50개 관광도시가 선정될 텐데, 여기에 플랫폼이나 네트워크, 하드웨어를 제공하는 걸출한 기업은 많지만, 콘텐츠 쪽 시장은 아직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더라고요. 이런 B2B, B2G 시장에서 검증받아야 회사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회사 이름까지 지금의 ‘하이퍼클라우드’로 바꿨죠. AR・VR은 기능이라고 생각해서 이름에 넣지 않았어요. 그게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핵심 기술도 아니고요. 그보다는 위치 기반 콘텐츠 노출할 때 초정밀 초정확을 뜻하는 ‘하이퍼’와 다른 서비스에 플러그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클라우드 기반으로 개발해 제공하겠다고 해서 ‘클라우드’를 합해 이름을 지었어요.
B2B 솔루션은 백오피스(back office)도 중요한 사업 영역이에요. 각종 AR 이벤트 캠페인을 계속 생성하고, 콘텐츠 고르고, 쿠폰 세팅하면 알아서 배포돼야 고객사가 계속 그 솔루션을 사용하죠. 저희 투자사인 섹타나인(Secta9ine)을 통해 국내 대형 프랜차이즈 1,800개 매장에 동시에 배포되는 서비스를 곧 출시할 계획입니다.
수원 스마트관광도시 사업은 저희 팀이 처음으로 의미 있는 매출을 만들고, 사업 방향성을 확인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변곡점이 됐어요. 도시 단위로 AR・VR 서비스를 구축해 운영해 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 도시 단위 대형 플랫폼을 론칭했다는 점이 주효했죠. 프론트 앱과 AR・VR앱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1개 앱으로 통합해 출시한 것도 최초였는데, 역시나 맞는 방향인 걸로 확인했고요. 실적도 작지 않습니다. 15만 명 이상 다운로드하고, 그 안에 저희가 구축한 스마트오더 기능으로 지난 8월 매출이 1억 원 이상 났어요. 수원시를 대표하는 앱으로 자리 잡았죠. 개발-콘텐츠 구현-최적화를 아울러 큰 플랫폼을 출시해 한 사이클을 돌려볼 수 있어 배움이 큰 작업이었습니다.
섹타나인 투자도 수원 스마트관광도시 이후 3년 만에 투자 물꼬를 다시 터줬다는 면에서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섹타나인이 투자해 주니 B2B 레퍼런스도 생기면서 사업계획서에 근거가 탄탄해졌습니다.
Q. 승승장구하신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오랜 기간 견디셨는데, 어떻게 버티셨어요?
랄프 = 사업 초기 발표가 잘 풀려 1억 원을 투자받았는데 그 돈이 ‘양날의 검’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정말 소중한 자금이었지만, 사업 전체를 돌이켜 보면 그 돈을 안 받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업을 추진하다가 접을 때 접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때문에 더 오랜 시간과 자원을 소모했거든요.
개인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겠지만 팀 차원으로는 큰돈이 아닐 수 있잖아요. 사업의 방향성과 자금 용처라는 퍼즐을 잘 꿰맞추려고 계속 고민했습니다. 지금은 전략적 파트너사, 투자사를 만들려고 액셀러레이팅이나 창업 지원사업에 지원합니다.
수원시 스마트관광사업에 참여하면서 솔루션 공급자로서 하이퍼클라우드가 시장에서 가능성을 증명하려면 투자도 재무적이 아니라 전략적(SI)으로 받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5G 망을 잘 아는 파트너사가 필요하니 SK트루이노베이션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3수 끝에 들어갔습니다. 담당 매니저가 나중에는 저를 기억하고 “발표가 많이 늘었다”라며 응원해 주시더라고요. 플랫폼 쪽으로도 구글 기술 지원해 준다길래 신한 스퀘어브릿지에 들어갔고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협업도 많이 했지만, 기술 이전 2건 받고 이걸 바탕으로 TIPS 받아서 연구개발(R&D) 로드맵을 앞당길 수 있었어요.
아직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AR 스마트 글라스 제조업체와 협업이 예정돼 있어요. 궁극적으로는 저희가 만드는 모든 콘텐츠를 AR 글라스로 옮길 계획입니다. 여기와 협업하게 되면서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디바이스(C-P-N-D) 축을 완성하게 됐어요. 이제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 싶었습니다.
참, 스마트관광도시 사업도 수월하지는 않았어요. 재수 끝에 들어갔거든요. 여기 들어가려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광벤처기업 인증받아야 하는데 그 발표가 참 어려웠어요. 관광벤처기업 인증도 2년 시도 끝에 받았고요. 인증으로 가점을 받아 결국 수원 스마트관광도시 사업에 참여한 겁니다.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 꾸준히 정진하다 보니 길이 조금씩 열린 것 같네요.
Q. 6년간 고생하며 배운 노하우를 저같이 막 스타트업 바닥에 뛰어든 후배한테 알려주신다면, 어떤 말씀을 해 주시고 싶은가요?
랄프 = 기본적인 문제를 정의하는 게 진짜 중요해요. 그런데 창업 팀이 생각하는 문제는 자기끼리만 공감하는 문제일 가능성이 커요. 현장에서 온도는 다를 수 있거든요.
저희가 처음 B2C AR 앱을 만들고, 성공할 만한 장소를 선점하려고 했지만 결국 트래픽이 안 나왔어요. 그런데 문제를 가진 고객을 일반 사용자가 아니라 기관이나 기업으로 보니 말이 되는 거예요. 결국 시장의 문제를 한 줄로 요약하는 건 데스크 리서치가 아니라 밀도 있게 쌓은 현장 경험에서 나오는 거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