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클래식에 대한 찬사
클래식은 나한테는 진입장벽이 높은 음악이다. 매우 다양한 악기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전체적인 연주의 아름다움은 쉽게 받아들여지지만 각각의 악기들의 연주가 얼마나 뛰어나고 감명 깊은지에 대해서는 표현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한계에 답답했다. 누구는 그냥 전체적으로 좋게 들리면 좋지 않냐라고 하지만 어떠한 음악을 들었을 때 최대한 자세하게 표현하고 싶기 때문에 각각의 악기들에 대해서도 느끼고 싶은 작은 강박증이 있다.
클래식 음악은 종종 고급 예술로 간주되어 일반인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주변만 봐도 다양한 음악 장르의 콘서트는 가지만 예술의 전당으로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오케스트라는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급 예술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다.
진입장벽이 높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클래식을 감상할 때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요한다는 점이다. 클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 이론, 형식, 조화 등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제대로 향유’ 할 수 있다는 편견이 있었다. 평소에도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을 들을 때는 집착할 정도로 형식을 따지고 곡을 해부하려고 한다. 하지만 클래식은 일반적인 음악 장르보다 문화적, 역사적 배경부터 구조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내가 듣는 음악 장르들처럼 깊게 분석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저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듣기 너무 좋다!"였다. 그래서인지 클래식을 특히 다가가기 어려운 장르로 받아들여 경계했던 것이었다.
예술의 전당에서 관람한 ‘한수진과 브리티시 오리지널’는 클래식에 가지고 있던 편견과 진입장벽을 어느 정도 깨부수는데 도움을 주었다. 더 이상 해석을 위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 그저 직관적으로 클래식을 즐기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모든 연주가 명료하게 들렸고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부분들은 바로 타악기였다. 탬버린, 트라이앵글, 심벌즈 등의 타악기들이 돋보였다.
특히 해당 공연이 특별했던 이유는 주한 영국 대사의 멘트 덕분이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주한 영국 대사가 직접 나와 유창한 한국어로 “제가 자란 영국의 클래식 음악을 함께 나누게 되어 기쁘다”라는 말과 함께 “기억에 남는 저녁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멘트를 통해 그날의 공연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직접 언급해 많은 기대를 가지고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공연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영국 클래식으로만 구성된 공연이었다. 영국 클래식 음악만을 다루게 된 이유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배경과 연관되어 있다. 한수진은 소위 말해 ‘영국파’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영국에서 음악을 시작하며 영국을 배경으로 무한한 음악적 재능을 펼쳤다. 영국은 그녀에게 있어서 제2의 고국이자 음악적 고국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정서와 음악적 특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녀였기에 영국 클래식에 대한 존경을 담은 공연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클래식에는 문외한이었기에 ‘한수진과 브리티시 오리지널’ 프로그램 구성을 보고 영국 클래식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몰랐다. 프로그램에 실려있는 곡들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알고 있던 부분은 비발디의 사계를 리마스터링 한 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사계를 리마스터링 한 연주이었다. 모든 연주가 황홀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들어온 사계를 리마스터링 한 곡을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통해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보다 사계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면 차이점을 들으면 감상할 수 있었지만 이와 별개로 사계를 들을 수 있었다는 점만 해도 영광이었다.
한수진의 연주가 압도적이었지만 아드리엘 김의 지휘 또한 예술적이었다. 지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아드리엘 김이 지휘가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지휘를 하는 몸짓 자체가 하나의 예술과 같았다. 곡이 절정으로 향해가면서 곡의 마지막 부분에 끝을 알리는 듯이 두 손을 치켜드는 제스처까지, 한 편의 음악 영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공연이 끝나고 여운은 오래갔다. 앞으로 자주 예술의 전당에서 클래식 공연을 감상해야겠다는 소소한 다짐을 하게 되었다. 문화의 등급을 나누는 것은 의미 없지만 확실히 고급문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내가 좀 더 클래식에 관심을 가지고 들었었다면 보다 깊게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클래식은 앞으로도 영원할 테니 지금부터라도 찬찬히 공부해 먼 미래 자녀들과 같이 클래식 공연을 관람을 하면서 얼마나 이 공연이 아름다운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아빠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값진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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