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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잎 Jun 10. 2019

[영화] '하나레이 베이'를 바라보는 일렁이는 시선

파도소리에 쓸려내려 가는 과거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 받아들이는 것

영화 '하나레이 베이' 포스터


- 이 영화는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한 시사회로 관람을 하였습니다.


- 영화 '하나레이 베이'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으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1. 하늘을 반쯤 삼킨 파도를 베어버리는 서퍼들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서퍼들이 즐비한 해변에 앉아서 집채만 한 파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파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베어버리는 서퍼들을 바라보며 맥주를 들이켜고 싶다.


  파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연현상이다. 파도가 활처럼 휘어지고 거품을 일으키며 다가올 때의 소리, 방파제에 부딪혀 하얀 물보라로 사그러지며 퍼지는 소리까지, 파도는 움직임뿐만 아니라 소리까지 역동적인 자연현상다.

영화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영화 '하나레이 베이'는 실제로 하와이에 존재하는 지역인 '하나레이 해변'이 배경이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도쿄 기담집>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인 '하나레이 베이'가 원작이다. 그래서인지 40페이지 분량에 담긴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감성과 섬세한 묘사를 어떻게 풀어나갈지가 궁금한 영화였다. 또한 아직 나에게 꿈의 지역인 하와이를 간접 체험한다는 느낌으로 영화를 감상하였다.



2.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슬픔: 가장 처절한 슬픔


  영화는 예상치 못한 묵직함을 선사하며 시작한다. 주인공인 '사치’가 하와이 하나레이 해변에서 서핑을 하던 중 목숨을 잃은 아들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이 된다. 평온하게 감은 아들의 두 눈은 상어에게 무참히 공격당해 잃어버린 오른쪽 다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마치 자연의 무자비함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듯이 잘린 다리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하소연조차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냉혹했다.


영화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사치'는 담담했다. 아들의 얼굴을 봐도, 상어에게 물려 잘린 다리를 봐도, 그녀는 멍하니 공상에 빠진 듯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더욱 처절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치'는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것이다. 눈물이 나오는 순간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끝을 모를 푸르른 바다 속과 같은 과거에 쓸려내려 가게 놔두었다. 영원히 과거에 머물도록 말이다. 그녀는 아들의 유류품을 확인할 가져가지 않았다. 아들의 손도장조차 원하지 않았다. 귀국 아들의 방을 파도가 휩쓸 듯이 재빠르게 상자들을 꺼내 묻어버렸다.



3. 10년이 흘렀지만 변한 것은 없다, 파도조차


  10년 동안 '사치'는 하나레이 해변을 방문했다. 아들을 떠나보냈던 시기에  해변의 같은 장소에서 책을 읽었다. 이런 '사치'의 연례행사에 일본인 소년 둘이 나타나면서 변화의 파도가 그녀의 일상을 출렁이게 다.


  자신의 아들뻘과 같은 일본인 소년 둘이 일렁이게 한 '사치'의 마음은 곧 자신의 아들에 대한 기억을 바닷속에서 끄집어내게 만든다. '아들을 싫어했지만 사랑했다' 그녀의 대사가 꾹꾹 눌러 담았던 아픔이 크기와 처절함을 가늠하게 만들었다.


영화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사치'라는 파도가 하나레이 해변을 휩쓸었다. 일본인 소년 둘에게 들은 외발이 서퍼를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떠돌던 '사치'는 갑자기 나무들을 밀기 시작한다. 아마 자연을 이겨보려고 한 것 같다.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앗아간 자연을 무너뜨리고 싶은 것이다. 누구 하나 원망할 수도, 사과를 요구할 수도, 그저 불의의 사고로 자연으로 돌아갔다는 잔인한 합리화로 버티던 '사치'의 억울함이 폭발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무를 넘어뜨리지 못했고 외발이 서퍼조차 찾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보지 못했던 아들의 행복했던 사진, 한동안 잊어버렸던 아들에 대한 기억을 찾게 된다.



4. 슬픔에게 언어를 주오. 말하지 않는 큰 슬픔은 무거운 가슴에게 무너지라고 속삭인다오. - 셰익스피어, 멕베스 4막 3장


  '사치'에게는 자신의 슬픔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애초 슬픔을 말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오래전에 떠났고 아들은 어느 날 자연이 데려가버렸기 때문이다. 홀로 남은 '사치'에게 슬픔을 말하거나 위로를 받는 것은 사치였다.


영화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영화의 후반부에서 '사치'는 슬픔을 표출한다. 아무도 듣지 않지만 그녀는 있는 힘껏 자신의 슬픔을 외친다. 아들의 시신을 봤을 때조차 담담했고 항상 쿨하고 고고해 보이던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순간 '사치'는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였고 삶의 중심을 다시 잡았다.


  모두에게는 각자 말할 수 없는 슬픔이 존재한다.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결국 그 슬픔은 곪아 터져 자기 자신을 무너지게 만든다. 담담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사치'의 두 눈에 담긴 파도가 각자의 가슴에 서서히 차오를 때, 마음속에 담겨있던 응어리를 끄집어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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