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리감은 곧 자아를 찾아가는 원동력
하나의 주제로 관통하는 앨범은 듣기에 편하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발매되는 앨범들은 공통된 주제보다는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을 자극적인 트랙들로 채워 차트에 진입하기위해 노력한다. 만연한 음원시장의 문제점을 파고드는 DPR LIVE의 신보이자 첫 정규앨범인 <IS ANYBODY OUT THERE>은 '원 히트 원더'에 목을 매는 음악시장이란 호수에 묵직한 바위를 던졌다.
1번 트랙 'Here goes nothing'으로 시작하는 앨범은 시작부터 무너진 자존감을 느낄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자신을 떠나지 말고 지켜달라는 집착이 느껴지는 트랙이다.
어떻게 보면 자아를 찾는 첫번째 단계는 끊임없는 자신을 향한 의심이다. 하지만 빠져나올 수 없는 의심은 자존감의 결여로 이어지고 이내 geronimo를 반복적으로 외치며 추락을 한다.
코드쿤스트와 도끼, 혁오가 함께 참여한 Parachute의 가사가 생각이 났다. 제일 좋아하는 가사가 있는 트랙으로 추락을 실패가 아닌 또 다른 가능성으로 바라본 가사이다.
아니. 첨엔 참 어려웠어.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
그래서 난 낙하산을 찾아 떨어질 땅을 기대하려 해
Code Kunst - Parachute (feat. 오혁, Dok2)
'그래서 난 낙하산을 찾아 떨어질 땅을 기대하려 해.' 이 부분과 상응하는 감정이 담긴 가사는 'here goes nothing, Geronimo.'이라 생각된다. 해석을 하자면 '그래 한 번 해보자, Geronimo.'이다.
자조적으로 내뱉은 '그래 한 번 해보자'는 자신을 파멸시킬수 도 있는 마지막일지 모를 추락에 애써 부정하던 삶을 돌파할 실날 같은 희망이 묻어있다.
2번 트랙 'Gerenimo!'에서는 타인에 의한 보여지는 나와 내가 알고있는 나와의 대립이 서술된다.
well, 보여진 거와는 달리
theres alot more inside me
alot of more pain
alot in between
thats where you can find me
대한민국은 섣부르게 남을 평가하는것에 익숙한 사회이다. 외모, 돈, 능력등 복합적인 기준들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을 평가하고 속단한다. 이러한 사회현상에 있어서 가수들은 언제나 희생양이었다. 좋은쪽으로든 나쁜쪽으로든 남을 향한 평가는 곧 '나'라는 존재에 대한 괴리감으로 이어진다.
보여지는 나와 내가 알고있는 나와의 간극이 심화될 수록 우리의 삶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휘청이며 끝없는 심연으로 곤두박질 친다.
3번 트랙 'TO WHOEVER'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주마등처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이 서술된다. 어린시절의 기억에서 시작해 현재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놓치고 있었던 기억들을 하나둘 찾으며 자신을 서서히 인식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궁극적인 질문인 'where do we go?'를 통해 현재가 아닌 미래를 향한 질문을 던진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어디로 가야하는가?'와 같은 인간이라면 한 번 쯤 고민해봤을 삶의 이유와 목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4번 트랙 'OUT OF CONTROL'에서도 공허함과 괴리감은 이어진다.
무대를 내려올 땐 다른 이야기지
내 microphone을 건넨 뒤엔
이상하게도 불안함이 계속 밀려오네
동시에 허전함이 느껴져 내 온몸에
무대는 성공적으로 마치면 기쁨과 후련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 뒤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심연에서 몰려오는 파도와 같은 공허험과 불안감이 밀려온다. 'I'm sick of the drama, I think I need some time.'
드라마는 지긋지긋하다며 잠시 생각 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가사는 남들에게 보여지는 트루먼쇼와 같은 거짓된 자신이 아닌 진정한 자신을 찾기위해서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Interlude와 같은 5번 트랙을 통해 현실과 잠시나마 단절을 선언하고 6번 트랙 'S.O.S'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선박이나 항공기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무선 통신 장치로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보내는 메시지인 SOS를 sailing over saturn의 의미로 사용했다.
두 눈을 감으면 끝없는 어둠이 눈앞에 펼쳐진다. 마치 우주의 한 가운데에 떠있는 것과 같다. 무엇이든지 상상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다. 토성을 여행한다는 가사는 앞선 트랙에서 언급한 것처럼 두 눈을 감았고 생각에 잠겨있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why can’t we just live our lives?
why can’t we just love life?
like 왜 사람들은 말만 하면 서로 헐뜯을까?
이러면 뻔하잖아 지구의 결말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유영을 하듯 우주를 자유롭게 여행하며 해방감과 함께 '우리는 왜 순수하게 우리의 삶을 즐기고 사랑할 수 없을까?'와 같은 원초적이자 궁극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다음 트랙에 열거해 놓았다.
7번, 8번, 9번 트랙은 앞선 6번 트랙에서 'why can’t we just live our lives? why can’t we just love life?'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주는 트랙들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있어서 사랑은 매우 중요한 감정이자 요소이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죠. 그러나 사랑만큼 진정으로 원하고 절실한 마음은 없다는 점에서 (모든 사랑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사랑을 태도로 삼는 것.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이만한 해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 오혁
혁오의 최신 앨범의 제목인 '사랑으로'와 관련된 인터뷰 내용이다. 혁오는 사랑을 인간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답이자 궁극적으로 삶의 목적이자 이유로 언급을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3개의 트랙은 사랑을 노래하며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한다.
10번 트랙 'Legacy'의 가사는 거칠다. 앞선 트랙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인다. 도발적으로 상대를 자극하며 우월감과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뿜어져나오는 가사들로 구성이 되어있다. 후렴 또한 단순하게 곡 명인 Legacy를 반복하며 그냥 단순히 가장 좋아하는 래퍼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후대에 기억이 될 래퍼가 되고자 하는 포부 또한 엿보인다.
그 rolex, 그 money dance
어설퍼 너, 음.. no thanks
your favorite rapper,
걔 누구였지?
I mean don’t get it too twisted man, keep doing you, so I can do me
11번 트랙 'NO RESCUE NEEDED'을 통해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서사의 끝은 언제나 감격스러우며 눈에 보이지 않던 무언가를 기록한 앨범의 마침표를 깔끔하게 찍었다. 추락하며 다급하게 구조를 외치던 모습은 이제 없다. 구조는 필요없다고 자신있게 외친다.
I don’t mind how I got here
if I die, why would I care?
green blue skies
yeah I love those
green blue skies
to whoever get’s this message,
please smile for me.
자아실현을 이룬자의 후련함과 기쁨이 묻어나는 트랙이다.
유명한 매슬로의 욕구이론을 인용하자면 가장 높은 욕구는 바로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가장 어려우면서도 궁극의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욕구로 어떻게 보면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는 욕구일 수 있다.
사자성어 '대기만성'을 직역하자면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이다. 하지만 조금 더 원론적으로 접근하자면 큰 그릇이라는 개념은 매우 상대적이다. 즉 어떻게 보면 큰 그릇은 영원히 만들어 질 수 없다는 역설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자아실현'도 비슷한 맥락으로 느껴졌다. 신기루와 같은 이 4글자에 우리는 도달하기위해 끝없는 사막을 건너간다. 하지만 자아실현이 무조건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DPR LIVE를 통해 느꼈다. 자아실현의 또 다른 표현은 재능실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자아실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신화에 불과한 허구이고 환상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관계론에 예외가 되는 존재들이 있다. 선천적인 재능을 강하게 타고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보통 천재라고 불리운다. 이 같은 천재들에 한해서는 자아실현은 곧 재능실현이라고 한정되게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DPR LIVE는 힙합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재능을 숨기지않고 펼쳐보이며 재능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첫 정규 1집 앨범인 IS ANYBODY OUT THERE?은 노력의 과정을 서서히 증명하는 앨범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중요하고 큰 울림을 주는 앨범이라 생각한다.
IS ANYBODY OUT THERE?을 외치던 소년은 이제 누군가의 IS ANYBODY OUT THERE?의 외침을 듣고 음악을 통해 손을 뻗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