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결혼 전, 30대 초중반에 나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을 앓고 있었다. 조절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절 나는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를 걷고 있었다.
연애를 오래 쉬었고, 나이가 들면서 소개팅도 점차 들어오지 않았다. 평일엔 가끔 친구들을 만났고, 주말엔 약속없이 늘 혼자 있었다. 죽도록 외로웠는데, 외로운 걸 곧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렵사리 만나자고 제안해도 미안해하며 거절하는 유부녀 친구들 보기도 민망하고...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만나자는 제안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퇴근길에 가까운 편의점에 들러 늘 와인 한 병을 샀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술을 들이키면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만날 사람이 없어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혼자 술을 마시며 드라마를 보는 게 훨씬 즐겁고 마음 편하다고 자위했다. 찌질하고 고독했지만, 그 땐 그랬다.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거나, 혼자라도 여행을 가거나 어떻게든 보다 생산적인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굳이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알코올 중독의 늪으로 서서히 잠겨들었다.
결혼 후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는 술이 땡긴다. 오늘은 너무 힘들었어, 상사가 아니면 동료가 나를 화나게 했어, 아니면 하다못해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반주를 하고 싶어. 하지만 늘 남편의 눈치가 보인다. 남편은 술을 즐기지 않는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술을 맛으로 마시는 사람이다. 분위기에 휩쓸려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그는 한 달에 1~2번 밖에 술을 마시지 않으며, 취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남편은 나의 병력을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다. 내가 평소보다 술을 자주 마신다고 느끼면, 혹은 좀 더 많이 마신다고 느끼면 부드럽게 한마디 덧붙인다.
"요즘 술 조금 자주 마시는 거 같은데?"
남편의 말에 나는 뜨끔하고, 술을 마시고 싶은 어느 날에도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술을 꺼내지 않는다. 결혼한, 물질의존장애를 동반한 2형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 배우자는, 늘 다정한 감시자 역할을 한다. 가족의 공감과 지지가 정신질환자의 예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배우자의 비난이 아닌 적당한 개입은 결혼의 부작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일상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오늘은 남편이 야근을 하는 날이라, 오랜만에 술을 한 잔 했다. 크으. 곧 퇴근할 남편이 아마도 잔소리를 하겠지만, 그런 잔소리가 있어서 내가 스스로 술을 조절해가며 마실 수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