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양극성 장애
요즘 참 날씨가 좋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창밖으로 부지런한 햇살이 반짝인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가끔 불어오는 살랑 바람은 상쾌하며, 그 속에 묻어나는 은은한 꽃내음도 달콤하다. 정오쯤 강해지는 햇살을 피해서든, 퇴근길 친구를 만나서든 야외 테라스의 계절이기도 하다. 너무 더워지기 전, 딱 몇 주만 즐길 수 있는 늦자락의 봄.
한때 나에게 봄은 늘 경조증의 시작이었다. 겨우내 울적했던 기분이 신기하게 좋아지고, 기운이 나고, 사고가 빨라졌다. 말이 많아지고, 동시다발적으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내 노력과는 별 관계 없었지만 그래도 다시 밝아진 스스로가 사랑스럽고 기특했다.
가끔 이런 날씨가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우울이 한창 심할 때는 아침이 찾아오는 게 힘겨웠다. 또 괴로운 하루를 구역구역 이어갈 생각에 기운이 빠졌고, 한숨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쨍쨍한 햇살이 눈을 찌르면 머리가 아팠다. 출근길, 좋은 날씨에 기분 좋은 타인들의 눈빛과 마주칠 때면 열등감과 소외감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나만 혼자 괴로워하고 있는 게 역겨웠다.
지금은 어느 쪽이든 양극성 장애의 증상이었다는 걸 알고, 꾸준히 관리하면서부터 봄이 선사하던 '마법'은 사그라들었다. 이제 날씨에 따라 감정이 널뛰는 일은 좀처럼 드물다.
실제로 양극성 장애를 앓는 환자는 계절을 탄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변하는 일조량이 원인이다. 일조량이 줄어들면 세로토닌 분비량이 줄면서 더 쉽게 우울해지고, 반대로 일조량이 늘면 경조증, 조증이 더 잘 온다. 나의 경우 일조량이 줄어드는 늦가을~겨울에 늘 우울 삽화가 시작되었기에, 피부로 느껴지는 기온이 쌀쌀해지면 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든다. 이제 우울에 시달리진 않지만, 오랜 경험으로부터 체득한 일종의 '위험 신호'다.
그래도 요즘처럼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좋다. 이 정도는 지극히 보편적인 반응아닌가. 아무리 집순이라도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망이 든다. 일단 움직이면 몸이 조금씩 깨어나고, 며칠동안 머리를 잠식했던 잡생각도 사라진다. 덕분에 요즘처럼 날씨가 좋으면, 아침에 눈 뜨자마자 절로 웃음이 난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날씨의 순효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