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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조울 Apr 21. 2024

수면제 연대기(2)

  우스개소리처럼 말하지만, 현존하는 수면제는

대충 다 먹어본 것 같다. 내가 체험한 약의 효과와 부작용은 아래와 같다. 약에 대한 반응은 개인차가 워낙 심해서 그냥 참고만 하길 바란다.


1. 졸피뎀

가장 오래, 자주 먹었다. 그러다보니 끈질긴 심리적 의존이 있다. 오남용의 대상이기도 했다. 작용 시간이 5-10분으로 짧아서 좋다.

5mg은 조금 약하고, 10mg은 과하다. 10mg을 먹으면 다음날 졸림, 피로, 메슥거림이 있다. 입면 유도는 되지만 수면 유지 효과는 없어서, 불면증이 심할 때는 잠들고도 자주 깬다.

먹고 나서 잠들기 전까지 한 행동이 기억나지 않는 전향적 기억 상실을 유발하며, 술과 함께 먹을 때 특히 위험하다. 몽유병처럼 자다가 돌아다니거나, 음식을 먹는 등 ‘복합수면행동’을 보일 수 있는데, 겪은 적은 없다.


2. 벤조다이아제핀 (알프라졸람 등)

졸피뎀은 입면 유도 효과만 있다보니, 나처럼 잠들기도 어렵고 잠든 후에도 자주 깨는 사람은 수면 유지 효과가 있는 벤조다이아제핀 계열 처방이 필요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나의 주치의 포함) 졸피뎀 처방을 웬만하면 해주지 않으려 하며, 불면 증상에는 거의 항상 벤조계 약을 단독 처방해 주었다.

알프라졸람은 0.125mg부터 시작하는데, 나의 경우 0.25mg은 약하고 0.5mg은 과하다. 0.5mg을 먹으면 다음날 나른하고 (졸피뎀으로 인한 졸림과는 좀 다른게, 머리가 멍하고 몸이 늘어지는 기분이 든다.) 묘하게 기분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

갑자기 끊었을 때 부작용이 있는데, 하루 정도 이유 없이 불안하여 안절부절하게 된다. 처음엔 금단 증상인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벤조계 약물을 최소 2주 이상 복용하다가 갑자기 끊으면 어김없이 불안 증상이 생긴다는 걸 깨달았다.


3. 멜라토닌

잠들기 1-2시간 전에 먹는 약이고, 별다른 부작용이 없으며 미국은 처방전 없이도 살 수 있어 요즘 유행하는 약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다음 날 두통이 너무 심해서 몇 번 먹어보고 바로 포기했다. 평소와 다른, 편두통스러운 두통이 오더라.


4. 쿠에티아핀

입면 유도, 수면 유지 모두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으나, 다음날 생각의 지연이 생기고 (사고와 판단이 몇 초가량 느려진다.) 공황장애 같은 불안이 찾아와 끊었다. 벤조계열 약물을 끊었을 때 불안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불안으로, 실제로 심박수가 빨라지고 숨 쉬기 어려운 느낌을 받았다. 트라우마로 남을 만큼 끔찍한 경험이었다.


5. 트라조돈

멜라토닌과 비슷하게 두통이 심해서 포기했다.


6. 1세대 항히스타민제

원래는 수면제가 아니지만 부작용으로 졸림 증상이

있어 수면제처럼 먹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수면제가 떨어졌을 때 차선책으로 먹어봤는데, 졸려서 입면 유도 효과는 있지만 다음날 하루 종일 전신 위약 증상에 시달린다. 엄청나게 피곤하고, 팔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반감기도 길어서, 꼬박 하루가 지나야 좀 괜찮아진다. 이젠 웬만하면 먹지 않으며, 감기에 걸려 콧물 때문에 항히스타민제를 먹어야 할 경우 반드시 2, 3세대로 처방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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