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내가 노력해서 얻었다고 믿었던 성취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모님을 잘 만나 먹고 살 걱정이 없었고, 내가 원하는 것은 대충 다 얻을 수 있었으며, 태어났을 때 이미 머리가 좋아서 공부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성취를 얻는 삶을 살았다. 하필이면 타고난 성격도 경쟁에 부합했고.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능력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좋은 성적을 얻었고, 그래서 의대에 진학했으며, 그래서 의사가 되었고, 전문의가 되었고, 그래서 지금의 명예와 부를 얻는 거라고 착각했다. 물론 노력이 없진 않았지만,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운이 지금의 내 모습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고, 꽤 중요했지만 내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
지금의 나는 능력주의를 믿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경쟁 사회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나친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이다. 한글도 읽지 못하는 나이에 부모들은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낸다. 더 좋은 영어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서 이사도 서슴치 않는다. 경쟁율이 높은 유치원에 보내기 위한 준비 학원도 있다. 유치원을 마치면 사립 초등학교, 그 다음엔 제주도로 이사하면서까지 국제학교로 진학시킨다. 정부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할지에 대한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의대증원을 추진해도, 전국민의 70%가 정책에 찬성한다. 왜냐면 내 새끼가 의사가 되면 좋겠으니까. 전국민이 은퇴 걱정 없이 고소득을 올리기를 바라는 나라, 그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나는 경쟁을 잘 버텼고, 거의 항상 이기는 쪽이었다. 그게 자랑스러웠다. 내가 머리가 좋다고 믿었고,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이 나를 추앙하는 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살면서,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양한 면이 있고, 어느 누군가는 내가 갖지 못한 능력, 성격, 배경을 갖고 있으며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고 않고 묵묵히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며 존중받아야 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깨닫게 된다. 단지 내가 똑똑하기 때문에 타인의 직업을 우습게 보았고, 하지 않을 뿐 기회가 오면 누구보다도 잘할 수 있다고 착각했었다. 그게 청소부든, 화가든, 변호사든, 뭐든. 그러나 나는 김연아가 아니고, 뱅크시가 아니며,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 동네에서 수 십 년간 순대국밥집을 운영해 온 사장님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따라갈 수 없다. 이 세상엔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나와 다르며, 어느 누구도 더 우월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가 치열한 극단의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며, 지금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면 게으르다는 낙인을 찍고, 도태되어도 불평불만을 할 수 없도록 몰아간다. 네이트판, 블라인드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 주제에 불평을 늘어놓는 '루저'에 대해서 비아냥거리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애초에 두 번째 기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없고,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면 당연히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하며, 좋은 직업을 갖지 못했다면 당연히 서울에 집을 살 수도, 비싼 오마카세를 먹을 수도, 외제차를 끌 수도 없고, 무엇보다 행복해선 안된다. 너는 경쟁에서 밀렸으니까. 너는 게으르고 무능하니까. 한국 사회는 실시간으로 개인이 처한 상황을 평가하고 거기에 따라 함부로 타인의 미래를 결정한다. 오지랖도 끝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 얼마나 가졌는지 감시하고 나보다 못하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손가락질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내가 더 가진 것 같으니까. 숨이 막힌다.
한국 사회는 신체적으로는 편리하지만 심적으로는 전혀, 편안하지 않은 사회다.
타인의 눈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가진 나도, 이 사회가 숨막힌다. 언제든 미끄러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동기, 선후배와 끊임없이 나를 비교한다. 지금 내 손에 쥔 것을 위해 노력해온 시간을 경멸하고, 더 큰 것을 얻지 못했다고, 더 많은 것을 위해 더 격렬하게 경쟁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비난한다. 나는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다. 그저 지금까지 이룬 것을 누리면서, 즐기면서 살고 싶다.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걸까?
한국 사회가 이토록 끝없는 경쟁을 부추기는 동안 우리의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전국민이 매일 7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OECD 평균보다 압도적으로 오랜 시간 일하고, 취미 생활을 즐기고, 가족와 지인들을 챙겨도 나는 부족한 인간이다. 왜냐면 열심히 사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모두가 잘 살아야만 하니까. 힘들다는 말도 하면 안된다. 애초에 불평불만은 용납되지 않는다. 남몰래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약을 타서 먹으며 심리 상담을 받을 지언정 누군가 알게 해서는 안된다. 겉으로 경쟁에 적극적인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아니, 심지어 즐기는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그리고 이 사회는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무한 경쟁의 굴레에서 정신질환자들은 루저의 오욕을 견디며 아닌 척 하루하루를 버티다 으스러져 간다. OECD국가 중 압도적 자살율 1위의 오명은 앞으로 오랜기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정부도, 국민도 딱히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고 패자는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그리고 당장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드니까.
지긋지긋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 왜 그렇게 강요받는가, 왜 벗어나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그렇게 서로를 감시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