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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냄 Nov 18. 2022

돌고 돌아 공무원

남 좋은 일을 하는 직업

우리 모두에게 삶은 단 한번 주어져 있습니다. 언제쯤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제 삶의 모토를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 가치 있고 행복하게 살자’로 정했습니다. 우리 집 가훈은 뭐냐고 묻는 아들의 질문에 가훈을 저 문장으로 정하기까지 했지요.      


그래서 저는 ‘가치’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립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인가? 내 일에 어떻게 더 가치를 더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을 가치 있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등등의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대학 전공도 직장도 가치를 쫓았습니다. 전문성을 키워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무원 하려고 들어간 행정학과 대신에 부동산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직장으로 웅진그룹 지주회사에서 그룹 계열사의 사무실 공간을 임대차 관리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신입이었지만, 재밌게 열심히 했습니다. 나름 좋게 봐주셔서 첫해 종무식 때 베스트 사원상과 신입사원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신인상도 받았습니다.      


그러다 2년 차에 회의를 많이 느꼈습니다. 사기업 특성상 매출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신규 사업 추진 분야도 제 생각과는 다른 분야에 집중되었고, 하기 싫은 일을 자꾸 해야만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활동이 매출에만 초점이 되어 일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두 번째 직장은 창업컨설팅회사였습니다. 당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치킨전문점, 음식점, 주점 등을 창업하려는 사람에게 매물로 나온 점포를 소개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부동산 지식을 바탕으로 상권분석, 매출분석, 영업이익 분석을 해주고 알짜배기 매물을 인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었죠. 서울 주요 상권을 돌아다니면서 상권을 익히고, 다양한 창업분야를 공부하고, 매물을 접수하고, 사장님과 예비 창업주를 만나는 영업활동을 하면서 바쁘게 지냈습니다. 일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업직이다 보니 고정적인 수입이 없었습니다. 공인중개사가 계약을 체결해야 수수료를 받을 수 있듯이 창업컨설턴트도 계약을 성사시켜야만 수입이 생겼습니다. 고객을 위해 좋은 매물을 고르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예상보다 계약실적이 저조했습니다. 잘해서 팀장이 된다 해도 매달 지급해야 하는 광고비 때문에, 몇 달만 계약을 못해도 수천만 원의 빚이 생기는 구조였습니다. 심지어 거래한 점포가 매출이 저조하다며 사기죄로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창업컨설턴트가 보람도 있고 가치 있는 직업이었지만, 당시 상황으로는 오래 지속할 수는 없는 구조였습니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계약실적이 저조한 저에게 팀장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계약해서 돈도 벌어야지, 남 좋은 일만 할 거니?’라며 말입니다. 나중에 저는 이 말에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남 좋은 일’ 제가 가장 보람을 느끼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은 바로 남 좋은 일, 남을 좋게 해주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돈 걱정 안 하고 실컷 남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 바로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서 2016년 세 번째 직업으로 지방도시 시청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지적과 도로명주소팀에서 근무를 시작해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수송팀에 파견근무도 나가보고, 이후 총무과 인사팀을 거친 후 비서실에서 시장을 보좌하는 수행비서로 근무했습니다.   

   

맡았던 일마다 가치를 고민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할 때마다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지적과에서는 파란색 오각형 건물번호판을 직접 수작업으로 만들던 것을 전문 제작업체에 용역을 주면서 업무 효율화를 꾀했습니다. 건물번호판 택배 배송 서비스를 시행해서 먼 곳에 사는 시민들이 직접 시청으로 찾아오지 않아도 되도록 편의성을 높였습니다. 또 도로명주소 업무편람을 만들어 누가 일을 맡더라도 시행착오를 줄이고 체계적으로 일을 배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총무과 인사팀에서도 가치 있는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출산휴가자나 휴직자가 발생하면 임시로 투입되는 대체인력 제도가 있었는데, 기간제 근로자 대신에 한시임기제 공무원을 도입해서 업무권한 문제와 과다한 인건비를 문제를 해소했습니다. 또 정식 공무원이 되기 전 실무수습 직원에게는 공무원증 발급이 안돼서 부서 출입이 어렵고 신분증빙이 어려웠는데, 신분증을 별도로 발급해 주어서 부서 출입, 신분 증빙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남 좋은 을 실컷 하면서도 급여를 받으니 저에게 공직은 천직인가 봅니다. 돌고 돌아 공무원이 되었지만, 앞서 두 번의 직장경험이 오히려 제게 무엇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의 직업에 감사하며 지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제 마흔. 공무원 퇴직 전까지 저에게는 20년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맡아, 어떻게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할지 설렙니다. 남은 20년도 주어지는 일마다 조금 더 가치 있게, 조금 더 의미 있게 할 수 있도록 계속 질문하며 공직생활에 임할 것입니다.


인생은 소중하고, 가치 있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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