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도 카피라이터
일의 영향력을 바꾸는 문장 하나
공무원이 되고서야 알았습니다. 공무원도 글을 많이 써야 하는 직업이라는 것을요. 직원에게 보내는 메일부터 시작해서 각종 보고서, 사업계획서, 대내외로 발송하는 공문까지. 공무원은 문서로 말한다는 얘기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카피라이터가 되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행사 때문에 포스터나 팸플릿을 제작해야 하거나, 사업을 알리는 홍보 글을 써야 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홍보물품에 부착해야 하는 스티커까지 구상해야 할 때도 있지요.
저 역시 카피라이터가 되어야 할 순간이 있었습니다.
2016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원주시청 지적과 도로명주소팀에 배치되었습니다. 2014년에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되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자기 집의 주소만 겨우 알 뿐 도로명주소가 어떤 원리로 부여되는지 모르는 시민들이 많았습니다. 택배 같은 물류 업무 종사자 말고는 거의 모른다고 보는 게 맞았지요.
그래서 지자체마다 도로명주소 홍보비를 예산에 반영하여 홍보물품을 만들어서 시민에게 나누어주곤 하였습니다. 텀블러, 우산, 치약 같은 제품들을 선택해서 제품 표면이나 포장지에 도로명주소 홍보문구를 간단히 넣어서 시민에게 배부해 주었습니다. 당시 제품에 새기던 문구는 ‘모두에게 편리한 도로명주소’였습니다. 예전에 사용하던 지번주소에 비해 도로명주소가 편리하다는 메시지만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업무를 실제로 담당하면서 도로명주소가 정말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건물 입구에 부착된, 도로명과 숫자가 적힌 파란색 오각형 판을 보신 적 있으시죠? 건물번호판이라고 부르는데 그 판에 적힌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이루어진 게 바로 도로명주소입니다.
원리만 알면 정말 찾아가기 쉽습니다. 간단히 설명드리면, 도로구간 왼쪽으로는 홀수번호, 오른쪽으로는 짝수번호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건물번호 1마다 거리는 10미터입니다. 이 두 가지만 알면 도로명주소는 끝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무궁화길 10번 건물을 찾아간다고 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무궁화길 초입에 도착해 있습니다. 그럼 앞에 알려드린 두 가지 원리만 기억한다면 이런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건물번호가 10번 짝수이니 내가 있는 도로의 오른편 쪽에 있겠구나. 둘째, 건물번호 10에 10미터를 곱하면 100이니까 여기서부터 100미터 지점에 있겠구나 하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무궁화길 10번 건물은 무궁화길 입구에서 100미터쯤 간 뒤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 건물번호 1마다 거리 10미터. 이것만 알면 주소 찾기가 정말 쉬워지는데, 수년 간의 홍보에도 아는 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러다 제게 홍보물품 제작 기회가 왔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왕 홍보물품 만드는 거 도로명주소 부여 원리를 시민들이 알 수 있게끔 해서, 보다 편리하게 도로명주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는 추운 겨울이어서 홍보물품은 일단 시린 손을 따끈따끈하게 녹여줄 휴대용 손난로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홍보문구를 넣은 스티커를 새로 만들어서 손난로 포장지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스티커를 어떻게 만들지가 중요했습니다. 공무원인 제가 카피라이터가 되어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 어떤 이미지를 담을지 고민해야 했습니다. 고민 고민 끝에 이렇게 카피를 정했습니다
‘한번 제대로 알면, 평생 편리합니다’
한번 자전거를 익히면 몸이 기억하고 평생 자전거를 타듯이, 딱 한번 원리만 이해하면 평생 쉽게 도로명주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왼쪽은 홀수, 오른쪽은 짝수, 건물번호 1마다 거리 10미터’라는 원리는 이미지로 표현했습니다. 시에서 대표적인 도로명을 활용하고, 시각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상했습니다. 스티커만 한번 보면 ‘아 이렇게 주소가 부여되는구나’ 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강구한 것이죠. 제가 생각한 컨셉이 온전히 담길 수 있도록 제작업체와 여러 번의 피드백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로명주소 부여 원리가 담긴 스티커가 부착된 새 홍보물품이 나왔습니다. 제가 고민한 카피와 이미지가 담긴 스티커를 보니 제게는 자식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스티커를 다 보지는 않을 것을 압니다. 하지만, 한번 배우면 평생 편리하다는 이 쉬운 원리를 한 번쯤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드렸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제가 다른 부서로 옮기고 난 뒤에도 제가 만들었던 스티커는 계속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뿌듯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른 후임자가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카피를 생각해내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때에 따라서 전해야 하는 메시지가 계속 변하니까요
담당자가 쓴 문장 하나에 맡고 있는 일의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관행대로 써오던 그대로 말고, 때에 맞는 메시지를 어떤 문장으로 전할지 스스로 고민하고 찾아보아야 합니다. 정보를 제공하든 홍보를 하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 하나. ‘나도 카피라이터’라는 생각으로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면, 더 쉽게 찾아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