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재촉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 가장 불안했습니다.
하루를 무난하게 보냈는데 저녁이 되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뭘 한 거지?’ ‘이렇게 보내도 되는 걸까?’
분명히 쉬고 있었는데 쉬고 있다는 감각은 없고, 대신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만 남았습니다.
누가 보라고 한 것도 아닌데 계속해서 제 하루를 어딘가에 제출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 시기에는 아무도 저에게 결정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도, 주변에서도, 심지어 상황 자체도 “지금 당장 뭘 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스스로에게 계속 묻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까지 이럴 건데?’ ‘뭔가는 정해야 하는 거 아니야?’
돌이켜보면 그 질문들은 계획을 세우기 위한 질문이라기보다 불안을 견디지 못해서 던진 질문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뭔가를 하면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적어도 판단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판단 기준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만히 있는 시간을 자꾸 실패처럼 느꼈습니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을 뿐인데, 아직 정리 중일 뿐인데, 이미 잘못 가고 있는 것처럼요.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그 불안의 모양이 보였습니다.
그건 게으름도, 의욕 상실도 아니라 방향이 없는 상태에서 생기는 긴장감이었습니다.
앞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이 없을 때, 몸이 먼저 반응해버리는 감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계속 불안했던 이유는 바로 그 지점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모든 것이 명확해진 상태는 아닙니다.
여전히 기다리는 일도 있고,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도 어떤 과정의 한 부분일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아서요.
이 글이 지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게 꼭 잘못된 상태는 아닐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기록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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