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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혜연 Jul 19. 2022

감자 때문에 헤어진 연애 이야기

3년 반의 국제 연애를 끝내며

 리마에서 일주일간 머물던 숙소를 체크 아웃하는 날, 아침은 간단히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를 털어 먹기로 했다. 감자 다섯 알, 양파 한 개, 오이 반쪽, 치즈와 계란 두 알, 라임 두 개. 어떻게 먹어도 맛있을 무난한 식재료들이다. 아침 일찍부터 그는 감자를 삶고 양파를 볶고, 치즈도 큐브형으로 잘게 썰었다. 나는 적당히 잘 익은 감자를 건져 껍질을 벗기고 마찬가지로 큐브형으로 썰었다. 삶은 계란도 큐브형으로 썰고 후추와 소금, 고춧가루로 간을 했다. 그는 라임을 뿌려 먹겠다고 했지만, 나는 삶은 감자에 라임은 아닌 것 같아 뿌리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전자레인지로 치즈를 녹여먹을 거라고 하니, 그는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 접시를 돌리면서 라임이 뿌려진 그의 접시도 같이 돌렸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그는 감자는 샐러드처럼 차갑게, 치즈는 녹이지 않고 큐브 형태로 먹고 싶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터키에서는 삶은 감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건조해지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나 뭐라나. 화가 난 그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틀었고, 나는 혼자 식탁에 앉아 접시를 비웠다. 한참 후 감자가 완전히 식고 나서야 그는 식사를 했다. 우린 함께 요리를 했고 따로 식사를 했다. 아주 화가 나고 슬픈 기분으로. 항상 이런 식이다. 언급하기도 애매한 사소한 것들이 싸움의 원인이다. ‘왜 감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냐’ 하는 것들 말이다.


 점점 식사를 따로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동안은 식사가 문제 되지 않았다. 둘 다 외국에 있으니까 먹고 싶은 음식을 못 먹는 건 공평했다. 어쩔 수 없이 현지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고, 본래 삶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그래서 그간 몰랐다. 우리가 아주 다르다는 것을. 정착 생활은 여행과는 많이 달랐다. 사소한 문제들이 반복되자 더 이상 사소하지 않았다. 우리의 동거는 불편했다. 그를 옆에 두고 혼자 밥을 먹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헤어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동안 많은 이별을 경험하면서 만남의 끝무렵쯤 느꼈던 감정들을 고스란히 다시 느끼고 있었다. 너와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우리 관계는 이미 오래전에 끝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마땅한 이유가 없어서 헤어지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감자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고 헤어질 수는 없으니까.


 그와의 연애가 좋았다. 그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 좋았다. 숱한 연애를 경험했지만,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준 건 그가 처음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꾸려 들지 않았다. 국적이 다르니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 쉬웠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존중해 줄 수 있었고, 그건 분명 장점이었다. 하지만 연애가 길어질수록, 우리는 본질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그건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었고, 노력할수록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더 절실히 깨달을 뿐이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처음 만났다. 그 후로 함께 아시아를 여행했다. 그는 아시아 문화를 잘 받아들였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나의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높으며, 나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순전히 여행자로서 나의 문화를 존중했을 뿐이었다. 몇 달 전, 혼자 한국에 입국하며 이스탄불을 경유했다. 그를 통해 터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터키를 가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를 만나기 전 그가 존재했던 세계를 나는 그제야 처음 접했다. 온몸으로 느꼈다. 그는 내가 전혀 모르는 세상에서 왔다는 걸.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는데도 나는 그걸 몰랐다. 어쩌면 나는 그를 전혀 모를지도 모른다. 여행자인 그의 모습만 봤을 뿐이다. 3년 반을 만났는데도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함께 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많은 것을 공유할 수 없었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웃긴 영상도 그와는 공유할 수 없었다. 카페에 있을 때면 우리는 각자의 핸드폰으로 모국어로 된 콘텐츠를 소비했다. 티비를 볼때는 주로 미국 영화를 봤다. 스파이더맨은 둘 다 아는 거니까. 대사도 영어니까. 더 이상 볼 미국 영화가 남아있지 않자 한국영화를 봤다. 한국어 자막의 터키 영화를 찾는 것보다 터키어 자막의 한국영화를 찾는 게 쉬웠으니까. 그렇게 3년 동안 미국 영화와 한국영화를 다 보고 나니,  더 이상 같이 볼 게 없었다. 그러자 그는 혼자 터키 코미디 프로들을 보기 시작했다. 한국어 자막도 영어자막도 없었고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박장대소할 만큼 웃긴 장면이 나오면 그는 신난 표정으로 나에게 통역했다. 그럼 나는 억지로 웃었다. 말 뜻을 이해했다고 그게 나에게 웃긴 건 아니다. 그걸 보고 웃을 수 있으려면 문화, 정서, 유머 코드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들을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그건 내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크게 싸운 어느 날, 그는 말했다. 너에게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없어서 너무 답답하다고. 우리는 주로 영어로 대화했지만, 영어를 잘 못한다. 우리가 쓰는 단어와 표현은 감정을 표현하기엔 너무 제한적이다. 감정표현이 중요한 연애에서는 더욱 더 고차원적인 언어 능력이 요구된다. 말 한마디에 담긴 숨은 뜻과 감정, 태도, 말투, 호흡까지. 모국어로도 힘든 일을 모국어가 다른 우리가 해낼 수 없었다. 답답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뇌 회전이 느려서 뱉어내야 하는 말을 바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진심을 전하려면 천천히 생각하고 그보다 더 천천히 편지를 써야 했다. 하지만 알파벳 난독증이 있어서 외국말은 잘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편지를 쓸 수가 없다. 우리는 단 한 번도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언젠가 그는 책을 출판한 적이 있다. 그의 책을 읽고 싶어서, 한 문장 한 문장 구글 번역기에 입력했다. 하지만 읽을 수 없었다. 구글 번역기는 감정이 없다.


  그의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일 때면 언어 문제는 더 크게 와닿았다. 나는 그의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젠가부터 내 친구들을 만날 때 그는 굳이 동행하지 않았고, 나도 그가 친구들을 만날 때 따라가지 않게 되었다.


 최근에 혼자 한국에 왔다. 한글이 적힌 종이책을 읽고 한국어로 말하고 한국음식을 먹는 게 좋았다. 한국인인 나는 한국의 것들이 필요했지만, 그에게선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도 터키의 것이 필요했다. 내가 한국에 있는 동안 그는 리마에 남아 많은 터키인들을 만났다. 그중엔 거슬리는 여자도 하나 있었는데, 내색할 수 없었다. 그녀는 터키인이고, 내가 그에게 줄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그에게 반드시 필요한 거니까. 그래서 나는 그의 주변 모든 터키 여자들을 싫어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들이 그들에겐 너무도 쉬웠으니까.


 언젠가 그와 터키 여자와 셋이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내 눈에 그녀는 예뻤다. 서양인이니까 당연히 서구적인 체형에 쌍꺼풀이 짙은 큰 눈까지. 그는 그녀가 절대 예쁘지 않다고 했지만, 나는 그녀가 미칠 듯이 신경 쓰였다. 그녀와 함께 하는 동안 나는 스스로를 얼마나 갉아먹었는지 모른다. 둘이서 터키어로 떠들 때면 나는 소외감을 느꼈고, 그 소외감은 질투를 키웠다. 사람들은 내가 아닌 그녀가 그의 여자 친구일 거라고 생각했다. 셋이서 더블베드와 싱글베드가 있는 호스텔에 입실했던 그날도 호스텔 직원은 내가 아닌, 그녀를 그와 한 침대로 안내했다. 그의 잘못도, 그녀의 잘못도, 그렇다고 딱히 호스텔 직원의 잘못도 아니였다. 그냥 우리가 인종이 달라서 생긴 일일 뿐이다. 아무래도 중동인과 아시아인의 얼굴합은 안 맞으니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기분이 더러운 것도 내 잘못이 아니다.


 별 거 아닐 거라 생각했던 외모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내 눈에 터키 여자는 다 예쁘다. 얼굴도 몸매도 나와는 다르다. 그녀들을 보고 있으면, 그에게 나는 전혀 섹시하지 않은 것 같아 자신감이 떨어졌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종종 나에게 본인이 잘 생겼냐고 물어봤다. 나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고, 그저 귀여워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언젠가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너에겐 내가 잘생기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고. 나를 만나기 전 그는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종을 경험했다. 중동인의 구릿빛 피부와 몸을 덮은 수북한 털은 북유럽에서 인기가 많단다. 하지만 아시아에서는 한 번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외모가 아시아에서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고, 나는 아시아인이다.


 섹스는 자신감이다.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위해서는 스스로를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성생활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최근 1년 동안 섹스는 거의 없었다. 너무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한 달에 한 번 정도 의무적으로 했을 뿐이다. 식사도 따로, 문화생활도 따로, 심지어 섹스도 하지 않는 사이. 연인 사이에 당연한 것들이 우리에겐 어려웠다.


 그래도 국제 커플이면 누구나 겪는 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가오는 이별을 막아보려 그의 언어와 문화를 공부했다. 하지만 그건 공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국제커플들의 글을 읽었다. 대부분 우리가 껵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봉착하기 전이였다. 이 문제에 봉착한 후에 극복한 이야기는 없었다. 나는 그에게 최선을 다했다. 내가 더 많이 노력한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착각이었다. 그는 떠나기 전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네가 나를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지 상상도 못 할 거야. 그런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제야 보였다. 그의 노력들이. 나를 위해 감수했던 불편함들이.


 좋게 헤어졌다. 좋은 이별 같은 건 세상에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그와의 이별은 좋았다. 모든 문제들이 나도 마찬가지였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도 노력했고, 그도 노력했다. 그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우리의 이별은 꼭 필요한 이별이었다. 그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행복을 위해서. 서로를 위한 이별이었다. 이별 후 우리의 삶은 나아졌다. 실컷 울고 나니, 해야 할 일은 끝낸 것 같은 홀가분한 기분마저 든다. 터키로 돌아간 그도 원래의 삶을 되찾았다. 그와 비슷한 외모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고 즐겨먹던 음식들을 먹었다. 그는 행복하다고 했다. 그가 내 옆에 있을 때보다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잘된 일이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이별은 서로를 위한 최선이었다. 우리는 끝까지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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