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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혜연 Jul 21. 2022

여행의 끝

돌아오는 건 어쩌면 떠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

거의 3년 만에 귀국이다.

한국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도 안 들어가서 그런지 귀국이 두렵기까지 했다.

내 나라가, 내 가족과 친구들이 낯설었다.

어색하고 불편할 것 같았다.

2020년 설에 한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네팔에서 무려 10개월을 보냈다.

서서히 하늘길이 다시 열리자, 나는 한국이 아닌, 한국에서 가장 먼 남미로 날아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거의 2년이나 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돈도 조금 생겼고 유명해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여행하는 나를. 그것도 사랑하는 남자와 여행하는 나를. 그러면서 돈도 버는 나를.

물론 나름의 고충이 있다. 하지만 그 고충 끝에 붙는 말은 항상 ‘그래도 난 네가 제일 부럽다’였다.

맞는 말이다. 나는 누구나 꿈꾸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삶이기도 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보다 나은 삶은 생각해 낼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완벽한 삶이었다.

그러니 나는 분명 행복해야 했다.


귀국을 결심한 이유는 몸이 아파서였다.

최근 살이 많이 빠졌다.

오랫동안 체중을 재지 않았었는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잰 몸무게가 40kg였다.

새벽까지 왕창 먹고 잰 몸무게가 40이었으니, 아마 여행 중엔 30kg대였을 것이다.

살이 빠진 이유는 분명했다. 뭐, 호르몬 문제나 몸에 이상이 생겨서가 아니었다.

작년에 치아교정을 시작하면서 교정기를 하루 22시간 이상 착용하고 있어야 했으니,

자연스레 먹는 시간과 횟수가 줄었을 뿐이다.

안 먹었으니 그만큼 체중이 준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른 몸을 갖는 게 평생소원이었는데, 잘된 일이다.


생리도 안 했다. 생각해보니 올해 들어 한 번도 안 했다.

생리통이 워낙 심한 편이라 매번 고생했는데,

특히 여행 중에 생리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라서

한 번도 밀린 적 없는 규칙적인 생리가 원망스럽기만 했는데,

드디어 멈췄다.

생리 안 하는 것도 평생소원이었는데, 이것도 뭐, 잘된 일이다.


라면을 먹고 싶었다. 그사이 신제품도 많이 출시됐다.

먹방 유투버들은 새로 출시된 라면마다 ‘인생라면’이랜다.

진짜 맛있게 먹는다. 나도 먹고 싶다. 부럽다.

아니지, 그래 봤자 라면이 라면이지.

한국에선 고급화된 음식들.  케이크, 아보카도, 해산물 뭐 이런 것들.

가끔 먹기도 부담스러운 음식들을 나는 매일 먹잖아.

나도 sns에 킹크랩 사진 올려놓고 그 밑에다가 ‘라면 먹고 싶다’ 같은 멘트나 적어볼까 생각했지만,

그건 또 너무 유치한 것 같아 접었다.


목 어깨가 아팠다.

주변에 물어보니 너도 나도 다 아프다고 했다.

이런 건 바란 적 없었지만, 그래도 평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직장인들 보단 낫겠지, 뭐.

남들은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수영, 헬스, 요가 모두 나는 매일 할 수 있으니까.

단돈 만원에 전신 마사지를 받고, 아로마향 맡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나면, 또 한동안은 괜찮으니까.


그러니 나는 행복해야 했다. 행복해야만 했다.

그토록 원했던 삶을 살고 있었기에, 여기서 행복하지 못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도무지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 정말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행복에 더 집착했다.

나는 행복하니까, 행복해 보이니까,

행복전도사라도 된 것 마냥, ‘나처럼'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설교했다.

그러면 나는 진짜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내 행복을 더 과시했다.


갑자기 마비가 왔다. 며칠 전부터 오른쪽 어깨부터 손끝까지 계속 저리더니, 오른쪽 얼굴에 경련이 왔다.

그제야 거울을 통해 내 몸을 살폈다.

앙상한 몸엔 뼈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 뼈들은 괴상하리 만큼 뒤틀려 있었다.

골반뼈는 높낮이가 달랐고, 어깨 불균형이 심각했다.

심지어 뒤통수를 잡고 고개를 숙이니 목뼈 하나가 왼쪽으로 튀어나가 있었다.


무서웠다. 그래서 하루 종일 운동만 했다.

눈 뜨자마자 수영을 했고, 틈틈이 유튜브로 찾아낸 동작들을 따라 했다.

하루 3시간을 걸었고, 아침저녁으로 철봉에 매달렸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손바닥엔 물집과 굳은살이 잡히고, 운동에 지친 몸은 점점 더 야위어만 갈 뿐이었다.


몸이 마비되니 정신도 마비된 것 같았다.

매주 월요일, 아이폰이 알려주는 핸드폰 사용시간은 매주 10프로씩 증가했다.

어떨 때는 10시간도 넘었다.

내 눈은 핸드폰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어느새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움을 볼 수 없었다.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흥미롭지 않았다.

여행은 의무적인 일일 뿐이었다. 여행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이젠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

돌아갈 곳이 없어지니, 이건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 방황일 뿐이었다.

길을 찾기 위해 시작한 여행이었지만, 길을 잃어 방황하는 내 모습만 남아있었다.

내 삶이 뒤틀려버린 내 몸처럼 고장나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는 오랫동안 울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운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마지막으로 기뻤던 게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멍했다. 그냥 계속 멍한 기분이다.

그 기분이 싫어서 다시 핸드폰 화면을 들어다 봤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길을 잃은 아이는 불안함과 무서움에 몸을 떨지만,

나는 그런 것들 조차 느낄 수 없었다.

내 안에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간 기분이다.


누군가 나를 터트렸다.

내가 불쌍하단다. 너무 진심으로 나를 불쌍해했다.

그 덕에 너무 오랜만에 울어서인가,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한참을 울었는데도 계속 눈물이 나와서,

그 후로도 일주일은 더 울었던 것 같다.

그래도 울고 나니, 마비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다.


사람들은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사랑하지 못해서 외로운 거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런 건 진화가 500억 년쯤 빠른 외계인이나 할 수 있으려나.

그래서 사랑을 갈구한다. 내가 사랑할 수 있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어쨋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단 백번 천 번 더 쉬운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랑을 받았음에도 사랑하지 못했다.

내 주변엔 항상 사람이 넘쳤는데, 나는 외로웠다.

나는 500억 년쯤 퇴화된 생물인 것만 같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에, 내 삶이 풍요롭다고 생각했다.

사랑받은 만큼, 나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사랑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착각이었다는 걸, 외로움은 너무 쉽게 증명해 보였다.

생각해보면 참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내 가족도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남이라고 사랑할 수 있을 리 없다.

내 나라와 문화를 사랑하지 못하는 내가 남의 나라를 사랑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어쩌면 나는 삶을 사랑하는 법을 전혀 모를지도 모른다.

삶은 여전히 힘들고 구질구질하고 치사하고 더럽지만, 사람들은 그럼에도 그 삶을 지키며 살아간다.

매일 꼴 보기 싫은 직장 상사를 마주하고, 상처 준 부모를 보살피고,

시기하는 형제들의 안부를 묻고, 죽이고 싶은 배우자를 끌어안고,

울고 불고 소리치고 싸우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나는 그저 남들은 다 견디는 삶을 외면했을 뿐이다.


이 여행을, 아니, 이 긴긴 방황을

이제는 끝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동안 외면했던 가족들을 사랑하는 법을

내 나라와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자신 없고, 상처받을까 봐 무섭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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