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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혜연 Jul 25. 2022

상파울루 - 포즈 두 이과수 - 시우다드 델 에스테

코시국 브라질 여행 ep.1

상파울루

 2020년 12월. 락다운이 걸린 네팔에서 10개월을 보내고, 드디어 새로운 나라로 날아왔다. 당시 브라질은 확진자가 세계적인 수준이었지만, 코로나 검사도 요구하지 않을 정도로 입국 규제가 없었다. 때문에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당시 자가격리 없는 거의 유일한 나라였던) 브라질로 몰렸다. 바다와 자유로운 여행이 그리웠던 우리는 바다가 없는 네팔의 락다운에서 벗어나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2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에 몸을 싣고 네팔에서 브라질 상파울루로 날아왔다. 하지만 락다운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상파울루에 도착하자마자 연말연초라는 이유로 다시 락다운이 시행된 것이다. 상파울루의 락다운은 네팔보다 심각했다. 식당을 비롯한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시민들은 외출을 자제했다. 그 바람에 거리에는 원래 거리에 있던 사람들인 노숙자들 뿐이었다. 상파울루는 원래도 노숙자가 많았지만, 락다운이 걸리자 이젠 정말 노숙자’만’ 남게 된 것이다. 마약에 취한 노숙자들만이 거리를 활보했고, 고층빌딩이 늘어선 화려한 도심은 마약 냄새와 똥냄새로 뒤덮여 악취와 광기로 채워졌다. 도시는 이미 노숙자들의 거대한 텐트촌으로 변해있었다. 성당 앞에서는 절망에 찬 사람들이 신을 향해 울부짖거나, 약에 취해 널브러져 있었다. 길 한복판에 드러누운 이들은 살아있는 건지 죽은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공원에서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영업을 했다. 개중엔 트랜스젠더도, 70도 넘어 보이는 할머니도, 다리가 하나 없는 창녀도 있었다. 그들은 다리 밑에서 섹스를 했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맸다. 거리에서 노숙자가 아닌 사람은 우리뿐이었고 어딜 가든 위협적인 시선들이 쏟아졌다. 때문에 웬만하면 핸드폰을 비롯한 기중품은 숙소에 두고 다녔고,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짧은 거리도 우버를 이용했다. 조용하고 음침한 이 도시가 시끄러워질 때는 시위할 때뿐이었다. 티켓에는 쓰인 붉은 글씨들이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의 단어만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제노사이드’ 그동안 숱한 시위를 봐왔지만, 그런 건 처음 보는 단어였다. 그동안 봐온 시위들은 자국민만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외국인으로서는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 단지 시위가 파업으로 이어지거나 도로가 봉쇄되어 여행 일정에 지장이 생길까 봐 걱정될 뿐이었다. 그런데 ‘제노사이드’라니. 그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무서운 단어였다. 상파울루는 그동안 경험한 도시 중 당연 최악이었다. 만약 지구가 종말 한다면 그 바로 직전 모습이 상파울루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피폐하고 험악했다. 상파울루에는 우범지역이 따로 없다. 도심 한복판 가장 번화한 대로마저 위험한 도시 전체가 우범지역이었다. 이 도시에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상파울루에서 머물렀던 에어비앤비 숙소들은 집을 드나들기 귀찮을 정도로 보안문이 많았다. 철저한 보안과 삼엄한 경비는 감옥을 연상케 했고, 이 감옥을 벗어날 수 없었던 우리는 이 도시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LA 다음으로 큰 한인촌으로 알려진 봉헤찌로의 한식당들은 철장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영업 중인지도 알 수 없었다. 벨을 누루고 영업을 하냐고 물어보면 그제야 주인아주머니는 문을 열어 안으로 안내하고는 다시 문을 걸어 잠갔다.


포즈 두 이과수

 상파울루에서 3주 동안 거의 숙소에만 머물며 상황이 나아지기만을 기다렸지만,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그사이 여행에 대한 식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우리는 우울하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 줄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그렇게 상파울루 여행은 미뤄둔 채 ‘포즈 두 이과수’로 넘어왔다. 이과수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3개국이 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국경을 닫고 있었다. 이과수 폭포의 70프로가 아르헨티나에 속해 있지만, 아르헨티나 이과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르헨티나 이과수가 ‘거대함’으로 표현된다면, 브라질 이과수는 ‘아기자기함’이 매력이다. 아르헨티나의 ‘악마의 목구멍’처럼 거대한 폭포의 장엄함은 느낄 수 없지만, 멀리서 전체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귀여운 코아티와 폭포를 배경으로 날아다니는 새와 나비들이 만들어낸 몽환적인 풍경은 마치 애니메이션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브라질 이과수는 둘러보는데 보통 3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관광객이 워낙 없었던지라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국외 인솔자로 일했을 적에 매년 방문했던 이과수지만, 한적한 이과수의 풍경은 처음이었다. 당시 인솔했던 남미 여행상품은 페루 리마에서 시작해서 브라질 이과수에서 끝을 맺었다.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만큼 감동도 더 크게 느껴졌는데, 그때마다 언젠간 꼭 사랑하는 사람과 올 수 있기를 소원했다. 그런데 막연하게 꿈꿔왔던 소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비록 아르헨티나 이과수는 못 봤지만, 사랑하는 이와 함께 바라본 브라질 이과수의 한산한 풍경은 그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주었다.


시우다드 델 에스테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국경을 닫고 있었지만, 파라과이와 브라질을 잇는 우정의 다리는 개통되어 있었다. 당시 파라과이는 입국 시 코로나 검사와 2주의 자가격리를 요구했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올 경우엔 입국 심사가 요구되지 않았다. 파라과이 국경도시 ‘시우다드 델 에스테’는 면세도시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쇼핑을 목적으로 방문한다. 남미에서 전자기기가 가장 저렴한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에서 아이폰이 가장 비싼 나라 브라질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매년 10만 명 이상의 브라질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오랜만에 찾은 시우다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코로나로 오랫동안 국경이 막혀있었던 탓에 폐업한 가게들도 많았다. 그러서인지 가격도 예전만큼 저렴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전자기기들이 한국보다 비쌌다. 당시 나는 핸드폰과 노트북이 모두 고장 난 상태라 전자기기 쇼핑이 절실했다.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실망했지만 아이폰이 3000불이 넘는 브라질에서 쇼핑을 할 수는 없었기에, 시우다드에서 쇼핑을 해야만 했다. (남미는 파라과이를 포함한 모든 나라의 전자기기 판매가가 미국보다 비싸다.) 그런데 새로 산 아이폰이 산지 이틀 만에 고장 났다. 배터리가 거의 다 차있었음에도 갑자기 꺼져버린 아이폰은 아무리 충전해도 다시 껴지지 않았다. 다음날, 그대로 고장 난 폰을 매장에 들고 가 환불을 요청했지만, 이미 포장을 뜯은 제품은 환불해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애플 제품은 구매 후 일주일 이내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무조건 환불할 수 있는 게 원칙이지만, 남미에서는 그 원칙이 통할리 없었다. 애플 공식 서비스 센터도 찾아갔지만, 당시 최신폰이었던 아이폰 12는 부품이 없어 수리가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경찰의 도움을 구하는 것뿐이었다. 5시간 동안 신고서를 작성하고 경찰과 함께 다시 매장을 찾았다. 경찰을 대동하자 매장 매니저는 그제야 폰을 본사로 보내 점검 요청해주겠다고 했지만, 다시 새 폰을 받기까지는 한 달 넘게 소요된다고 했다. 새로 산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괜히 쇼핑을 해서 스트레스를 산 것 같단 생각에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곳에서 한 달을 기다릴 순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켜지지 않는 아이폰, 아니 스트레스를 들고 떠나야 했다.


 관광객들이 시우다드를 찾는  하나의 목적은 ‘달러 인출이다.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와 남미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지만 에이티엠기 인출한도가 작은 칠레, 카드 수수료와 인출 수수료 10프로가 넘는 브라질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달러가 필수다에이티엠기 인출 수수료가 너무 비쌌던 탓에 상파울루에서는 ‘웨스턴 유니언’으로 현금인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남미 모든 국가가 겪고 있는 문제였고, 이에 브라질에서도 달러 유출을 규제하고 있었다. 때문에 달러 대신 날강도나 다를 것 없는 자체 환율이 적용된 헤알로 돈을 찾아야만 했는데, 이 과정에서 20%가 넘는 수수료가 빠져나갔다. 상파울루에서 브라질의 비싼 수수료를 경험한 우리는 비교적 인출 수수료가 저렴한 파라과이에서 최대한 많은 달러를 인출해서 헤알로 환전했다. 환전 수수료도 브라질에서 (달러를 헤알로) 환전하는 것보다 오히려 시우다드에서 환전하는 게 더 저렴했다. 쇼핑부터 인출과 환전, 아이폰이 고장 나는 바람에 경찰서까지. 공식적으로는 입국도 못했지만, 많은 일이 있었던 파라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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