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4부

by 박환희

4부

3개월 후

그렇게 리나가 잊혀질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잊었냐고? 당연히 잊지 않았다.. 그 어미라는 작자와 여러 번 만났고 전화도 몇 번이나 하고 주말에 시간 나면 리나 씨가 자주 갔다는 장소도 여러 번 갔다. 그러나 허탕이었다. 지현 씨는 언제부턴가 나를 안타까워하는 것 처럼느껴졌다.. 내가 정신과 의사인데 지현 씨에 눈을 보면 '저 원장에겐 어떤 트라우마가 있을까? 왜 그 여자아이에게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의 심리상태를 가늠하는 듯한 표정을 종종 비쳤다.. 나를 어느 순간부터 어려워하거나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먼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나는 너보다 인격적 소양이 깊어 라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가질만한 표정과호흡, 태도와 말투를 하면서 굉장히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러한 지현 씨의 태도에 처음에는 불쾌감을 느꼈다. 그래서 괜스레 명령조와 신경질을 내면서 이 병원에서 너는 내가 주는 월급으로 생걔를 이어가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애써 직장 내 계급적 우위를 이용하여 유치하게 행동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그런 태도가 친구처럼 편안한 느낌을 줬고 내속마음을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았고 아무 말 없이 한 공간에 있어도 대화를 해야 한다는 부담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느새.. 주변의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정말 다양했다. 어제는 어떤 60대 중반의 아줌마였다. 60대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관리를 잘했고 역시 누가 봐도 부잣집 사모님처럼 비싼 백과 화려한 장식들로 몸을 치장했고 의학의 기술을 빌려 얼굴을 4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관리를 잘한 사모님이었다. 그녀 또한 내게 있어서는 환자이기에 상담을 진행했다. 결혼을 하고 자식들은 지금 돈걱정 없이 생활하고 있고.. 첫째는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있어서 손녀 보는 낙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어떤. 문제가 있어서 왔냐고 하니 파트너가 바람난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아~ 요즘은 남편을 파트너라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지 만나도 참 순진무구했다. 파트너란 내연남을 지칭한 단어 였다. 눈물을. 계속해서 훌쩍거리면서 요즘은 자신을 부를 때 예전만큼 말투가 부드럽지 않고 메시지를 보내도 답을 안 하지는 않지만 답장이 늦는다고 했다.. 혹시 자신에 나이가 많아서 싫어하는 것 같아 얼굴에 보톡스와 가슴수술도 했다고 했다. 벌써 5번째란다. 나는 이 이야기에 공감하는 표정과 적절한 리액션을 하면서 속으로 이걸 듣고 있어야 하나, 이건, 정신과가 아니라 법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러다가 나는 그저 순진무구하게 남편은 내연남에 대해 알고 있냐고 물었다. 내담자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나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느꼈다.. 나를 갑자기 숫제 개취급을 하며 나에게 남의 가정사에 대해 머가 그리 궁금하냐.. 당신은 내 얘기를 들어주고 해답을 주면 되지 내가 바람을 피우는 말든 무슨 상관이냐며 목소리에 감정선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곧바로 나의 선 넘음을 사과하고 사죄를 드렸다. 그러다가 자신의 남편얘기를 하고 인생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주야 장천 해댔다.. 다른 손님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이 부잣집 아주머니께서 오늘 하루를 통째로 사셨다. 자그만치 1천만 원을 주고 오늘 하루 나의 시간을 빌렸다. 아무리 손님이 늘었다지만 천만원을 하루 상담비로 주는 환자는 없다. 아마 역사상 없을 것이다.... 전화로 예약받은 지현 씨가 말할 때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곧바로 절반의 금액인 500백만 원을 선입금한 걸 보고 바로 오케이 사인을내렸다. 나는 다시 쩐의 힘을 빌려 판사가 아닌 리스너가 되야겠다는 다짐을 한 후 계속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나는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나.. 그러할지라도 사랑해야 한다고 스스로 계속해서 돼 내었다.. 경청 경청 또 경청했다.. 계속 듣다 보니 이 현대의학에 힘을 빌려 미모를 간신히 유지하는 아주머니도 속앓이를 많이 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결혼초에 남편이 사업가다 보니 출장이 잦았고 출장을 다녀오고 나면 숱한 여자향기가 났다고 했다.. 어쩔 때는 남편이 뻔뻔하게 나오기에 자신이 유난 떠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고 자신처럼 미천한 여자가 이런 부잣집에 시집을 와서 삼시세끼 걱정 없는 삶을 살게 된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며 자신 안에 느껴지는 수치심과 모멸감을 애써 외면했다고 했다. 가난이라는. 잔인한 놈에게 호되게 뜯겼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사랑은 없었지만 번지르르한 얼굴덕으로 돈만은 사업가인 지금의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한남편의 아내로서 내조를 똑 부러지게 하는 내조의 여왕으로 정하고 어떤일이 있어도 이혼하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을 하고 결혼 생활을 시작 했다고 했다. 하지만 내조의 여왕 역할을 톡톡히 하기 위해 시댁의 키우는 고양이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혼자 골방에서 욕조에 몸을 담글 만큼 의 눈물을 쏫으면서도 다음날이면 웃으면서 시댁식구들과 남편을 모셨고 남편의 손찌검을 자기를 향한 관심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하면서 버텼다고 했다.. 그리고 자식들을 낳았지만 시댁에서는 아이들의 엄마인 자신과 가까이하지 못하게 했다. 더러운 피가 섞인 것도 마땅찮은데 천한 냄새와 태도와 생각이 아이들에게 묻어날까 하는 듯한 분위기를 거리낌 없이 그녀에게 드러냈다. 시댁시구들은 태어난 이 아주머니의 자녀들을 마치 아빠 혼자서 자웅동체로태어난 아이들처럼 대했다. 그잡안에서 그녀의 존재는 그야말로 없을 '무' 였다. 그렇기에 같은 집에서 사는 자신의 핏줄들을 맘대로 껴안지도 못했고 갓난아기 때 젖을 줄 때 빼고는 같이 있던 시간이 없었다. 새끼들과 한시간도 떨어져 있기 싫어서 아기가 젖꼭지를 피가 날 정도로 물었지만 혹여나 소리를 지른다면 아기를 품에서 때갈까봐 두려움에 눈물을 머금고 꾹 참았던 게 한두 번이 아니랬다. 또 그녀는 아이뿐 아니라 친정 식구들도 챙겨야만 했다. 아틀라스조차 그녀를 보면서 혀를 찼을 정도로 그녀가 매고있는 고통의 짐은 무겁기만 했다.

자기 때문에 이제 발뻣고 자는 가족들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 없기에 자신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꾹 참았다고 했다.. 그렇게.. 결혼 5년 차에 시댁어르신 들이 운이 좋은 건지 다행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두 분 다 일찍 돌아가시자 조금은 숨통이 트였고 남편도 부모님들의 눈치 때문에 아주머니에게 온전한 관심과 사랑을 주지 못했지만 그런 자신이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그녀가 짠했는지 모르지만 어지됐든 자녀들과에 시간들을 마련해 주려고 노력했고 요 며칠간은 손찌검을 하지 않고 꽃도 사다 주면서 응어리진 상처들에 연고를 발라줬다고 했다. 여자의 분냄새 또한 당분간은 나지 않았고 자신과에 마음과 생각과 몸의 관계에만 신경을 써줬다고 했다. 하지만 옛말에 사람은 고쳐쓰는게아니라고 했던가. 이세상에 그 말처럼 정확한 말은 없다는 걸 이 여인은 깨달았다. 술에 취해 쥐잡듯 폭력을 쓰는 건 예삿일이고 심지어는 술집 여자를 데리고 와서 자신과 자녀가 있는데도 안방에 들어가 농밀한 몸에 대화를 나눈 일이 여러 번 있다고 했다. 난 그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어떠한 감탄사도 나오지 않고 입만 벌리고 멍하니 들었다. 그러다가 무의식적으로 "쳐 죽일새끼"라는 말이 나왔고 상처 많은 사모님은 같이 피식 웃으며 그래도 아내로서의 도리는 해야겠는지 입을 가리고 웃음을 바로 떨쳐 냈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하던중 정말 기적 초풍할 일을 들려줬는데 나는 처음에 무슨 드라마 시나리오 그것도 아침 드라마 시나리오도 이렇게는 안 쓰겠다는 생각이 상담을 하면서 들었다. 이 밍크코트 입으신 사모님께서 무슨 사연을 들려줬냐면 그 남편이라는 놈이 집으로 온여자들이 자신에게 하는 반응이 다양했다고 했다. 어떤. 여자는 관계를 끝내고 방을 나오면서 자신에게 미안하다면서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어쩔 주 몰라하면서 서둘러 집 밖을 나 간경 우도 있고 떠 어떤 여자는 방을 나오면서 자신을 보면서 한쪽입 고리만 씩~ 올라가면서 우쭐대는 미소를 지으면서 모델처럼 집 밖을 나 간경 우도 있다고 했다. 그때 남편은 안나왔냐고 물으니 꼬래 미안했는지 방에서 몇 시간이고 안 나오고 나올 때는 헛기침을 하면서 민망해했다고 했다. 나는 여사님에 대한 모든 판단과 정죄의 마음을 우선 유보 시켰다.그렇다고 이 여자의 바람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나는 분명 옳고그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닌건 아닌 거다.. 나는 톨스토이가 안나카레니나를 죽이면서 나름의 정의를 수호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사모님과의 상담이 끝나고 가면서 너무 마음이 홀가분하다고 했다. 나는 사모님이 가고 지현씨도 퇴근하고 의자에 기댄 채 그 남편에 태도와 정신상 태를 정신과 의사답게 매스를 대고 째고 해부해 봤지만 박제된 동물처럼 텅텅 비어있었다. 도대체가 그남자의 정신에 대한 정의가 서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리나에게로 생각이 옮겨졌다. . 만약 다시 만난 다면 친한 오빠동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받고 보호받지 못한다는 세상에 대한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꿔주고 싶다는 다짐이 시간이 갈수록 굳어졌다. 키다리 아저씨가 되면 뭐 어쩐가. 나는 리나를 생각하면서 어깨가 축 쳐진채 크게 한숨을 쉬며 불을끄고 나가려는데 지현씨가 퇴근한 줄 알았는데 다시 병원으로 왔다.

"지현씨 퇴근하라니까 왜 왔어요""

"그냥요 원장님 식사 안 하셨잖아요.. 배가 고파서요 근처에 포장마차 있던데 술이나 하실래요? 여기 앞에 포장마차 가락국수 국물이 끝내준다는데.?

나는 약간 당황했지만 뭐 이렇게 된 거 그러자고 했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졌고 한파가 오기 직전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날씨가 더 추웠다.. 나와 지현 씨는 목도리로 목을 꽁꽁 감싸고 포장마차에 도작했다..

"이모 여기 가락국수 2개 하고2 김밥 한 줄 하고 소주 한 병하고 맥주 한 병 주세요""

"맥주까지 시켰어요? 소맥?"

"그럼요 저는 소맥 아니면 취급 안 합니다""

"난 포장마차를 거의 안 와봐서 그런데 포장마차에서도 맥주를 파나 봐요 소주만 파는 줄 알았는데"

"소주만 파는 곳도 있고요 맥주랑 같이 파는곳도 있어요" 그렇게 음식이 나오고 멋들어지게 소맥을 만 다음 건배하나 없이 계속해서 들이마셨다.. 약간의 취기가 올랐다.

"지현 씨 왜 갑자기 포장마차를 오자고 한거에요? 무슨일 있어요? 혹시 그만두는거 아니죠?

"아니에요 그런거..." 지현씨는 약간 주저하다가 말했다.

"그냥요 원장님이 힘들어 보여서요. 저는 일개 접수원일 뿐이지만 들을 수 있는 귀는 있거든요 원장님도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을 거 아니에요.. 실례가 될 수도 있는데 원장님은 가족얘기 친구얘기 하나 없는 것 같아서요. 제가. 주제넘었다면 얘기해주세요''

"아니에요 지현 씨 고마워요 뭐 술기운도 올랐겠다. 나도 숨통 좀 트고 싶네요.. 지현 씨 귀좀 빌릴게요. "

나는 그렇게 지현씨와 회포를 풀었다. 대부분 나의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 였다. 이렇게 된거 나의 고아원 생활과 친구들과의 우정을 이야기하자면 나에게는 고아원 친구 2명이 있다. 지금까지도 서로 호형호제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중 준수는 라는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는 항상 올곳았다..

부모가 없었지만 그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종교심이 남달랐다. 그래서 원장님을 따라 교회를 드나들었고 항상 성경과 책들을 끼고 살았다. 그래서 그런 걸까 대화를 하고 같이 지내오면서 나는 그 친구를 사실상 기댈수 있는 어깨라고 여겼다. 주변에 어른이 없었기에 그친구를 어른으로 여기며 살았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항상 부드러운 말투만은 쓴 것은 아니다. 어떨때는 (거의 정의롭지 않은 상황이나 부도덕함과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상황이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상대방이 ' 아 이 미친놈은 건들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눈이 돌 때는 아무도 못 말리는 친구였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성질을 내고 나면 자신은 감정하나도 절제하지 못한다며 신께 눈물로 회개했고 누가 봐도 더 나아지고 더 탁월해지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하는게 눈에 보였다. 그와 반면 또 하나의 친구가 있는데 이름은 민철이었다. 지금은 결혼하고 아들, 딸 하나씩 키우고 있다. 그 친구는 순수했다. 해맑고 도시에 사는 시골청년 느낌이랄까??? 그래서 주변 애들에게 바보라며 놀림을 당했다. 그런 민철이를 지키기 위해서 나와 준수는 양쪽에 서서 민철이가 괴롭힘 당하지 않게 호의 무사를 자처했다. 민철이를 보고있으면 마음 한켠이 너무 짠했다. 솔직히 민철이 이는 준수와 나와 달리 자신의 부모를 안다. 자주는 아니지만 1년에 한 번씩은 얼굴을 보러 왔다.. 하지만 난 너무 이 친구가 뭐랄까 짠했다.더 알맞은 단어가 떠올르지 않는다. 바보처럼 당하고 돈 뺏기고 침을 얼굴에 맞아도 웃거나 우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특이한 것은 지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보고 들으면서 터득하는 것들을 민철이는 바보스러움으로 대부분 무마했다. 아니 무마하는 것도 지혜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떤 상황이 내앞에 펼쳐져도 이 둘은 내게 심장 같은 존재들이다. 내가 고꾸라져도 아니면 내가 잘나가도 이들은 내게 한결같은 친구들이다.이둘을 나의 위치가 달라진다고 해서 다르게 대하지 않을것이다. 그럴빠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그만큼 내게 소중한 친구들이다...그리고 준수뿐 아니라 민철이도 내겐 어른이다. 세상적으로 뭐 내세울 게 없지만 예수가 각별히 챙기고 사랑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의 표상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이야기의 꽃을 피워가다 어느새 우리는 소주 6병과6 맥주 4병을 깠다. 지현 씨는 자신은 괜챃다고했지만 지현 씨에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현 씨도 나름의 아픔을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자신의 비밀과 치부를 말할 때 그 관계는 더 깊어지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더 주게 되었다.. 지현 씨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에게 좋아하는 마음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 말할 용기가 없었고 언젠가는 둘이 연인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상상이 머릿속에 뜬금없이 떠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고주망태가 되어 지현 씨를 먼저 집에 데려다줬다.. 무슨 ''라면 먹고 갈래' 같은 멘트는 없었고 서로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그렇게 서로 몸을 함부로 줘야 하는다는 생각을 애당초 같고 있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서로 했었다. '자고 만남 추구' 라는 지금 시대의 성문화에 대해 서로 비판하는 시각이 같아서 상담실 안을 떠들썩하게 목소리를 높여가며 대화를 나눴었다.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나는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면서 포장마차 앞에 앉아 있던 여자가 나보다 큰 존재라는 걸 느꼈다. 회사 안에서의 부득이한 계급구조상 나는 위고 지현씨는 아래 지만. 시간이 지나고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참 담백하고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어른처럼 느껴졌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 여자에게 심리적으로 어느 정도 의지하게 됐다. 나이는 내가 더 많지만 사랑받으면서 받은 사람특유의 채워진 마음이 줄 수 있는 것들을 나는 은연중에 지현 씨에게 갈망했을 수도 있다. 그 채워진 것들에 손을 대서 슬쩍 훔쳐 내주머니에 넣고 싶고 나에게 머라고 할라치면 "넌 많잖아 쫌 나눠줘"라고" 애처럼 투정 부릴 수 있는 어린아이가 내 마음속에 있을 수도 있다.. 혼자 소설을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남녀가 연인이 되기 직전의 설렘과 결과를 알 수 없는 그 짜릿한 스릴이 나의 공허하고 마음에 쌓인 노폐물 들을 여과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그때부터 하루 온종일 부정적인 이야기만 듣는 내게 쌓인 부정적인 것들이 걸러지는 것을 느꼈고 내정신은 나 자신에게 힘과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을 내 마음과 생각에 가득 채워 줬다. 둘 다 연애에 대해서는 숙맥이라서 먼저 사귀자고는 못했지만 상담실 안은 둘만 있어도 봄날에 벚꽃길을 걷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60대로 보이시지만 보디빌더라고 믿어질 만큼 풍채도 좋으시고 흰머리가 신사처럼 보이는 남자내담자가 상담을 신청해 왔다. 처음 문들 열고 들어오시는데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셨다. 속으로 무슨 문제가 있으신 걸까? 보기에는?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어떤 일 때문에 방문하셨을까요"

"어 모르겠네요. 약간의 두려움인 것 같습니다"

"두려움이요?"나는 곧바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환자를 많이 보지 못했기에 조금은 당황했다.

" 내가 믿는 것들 그리고 지켜냈던 것들 그리고 그게 확실하다는 걸 나 스스로 확신하고 있습니다만 어찌 된 건진 마음이 불안하고 손이 떨려오긴 합니다. 큰 문제라고는 생가하지 않아요.. 정신적으로. . 문제가 있지 않다는 걸 제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상담 한 번 받아보는 게 나쁘진 않을 것 같아서요" 나는 그의 말을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상담을 계속 이어나갔다..

"믿고, 지켜냈다는 게?

"어 혹시 최근에 뉴스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3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석방된 사람을 아실까요?.. 뭐 상담하시느라 바쁘셔서 못 봤을 수도 있죠 제가 그 당사자입니다" 나는 저절로 손을 입에 가져갔다.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검찰 쪽과 법원 모두에게 사과를 받고 금전적 보상도 받았고요.. 저에 대해서 무슨 다큐멘터리니 영화화한다느니 말이 많잖아요. 그리고 그걸 다 받아들였습니다.. 숨길필요도 없고요.". 나는 무슨 연예인을 만나 것처럼 신기함과 놀라움에 입에서 틀어 나오는 탄성을 손으로 어떻게든 틀어막았지만 손가락 사이로 소리가 새어 나왔다. 2주 전엔가 뉴스가 핫했던 사건이 있었고 해외 언론에도 보도되는 사건이 있었다. 어떤. 사건이냐면 어떤 아버지라는 사람이 자신의 딸을 성폭행한 후에 살인했다는 누명을 씌고 무기징역에 쳐해 진 사건이었다. 그당시 30년 전이었지만 대한민국이 난리가 났었고 사람들이 법원과 청와대 앞에 나가 사형을 구가하라고 농성을 펼치고 누군가는 무기징역을 내린 판사 집 앞에서 자신의 배를 과도로 가르고 사형을 시키라며 유혈낭자한 일도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sns가 발달되지 않았던 아날로그 시대였지만 파장은 일마만파로 커졌고 다행인 건지 아니면 고상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는 세계적인 트렌드가 인권의 진보를 위해 인권이라 의미의 외연이 범죄자까지 확장되는 분위기였고 살인자들에 인권도 인권이라는 담론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여기서 정말 섬뜩한 사실은 남자를 신고한 건 죽은 여자아이의 엄마이자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바람난 아내였다. 여기서 다가 아니다. 내가 이 앞에 있는 분을 인터넷상으로 '영웅'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바로 아이를 성폭행하고 죽인 건 그 변태성욕을 가진 내연남이었다는 사실이다. 여자는 내연남을 뺏기고 싶지 않아 가정을 위해 충실히 사는 남편을 사실상 딸과 함께 죽인 것이다.. 단 숨은 살아 붙어 있고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 끼를 챙겨주는 교도소로 였지만 사회적으로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이제서야 무죄가 확정된 이유는 검사와 법원이 자신들 스스로 실수를 발견하고 양심고백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깜빵으로 쳐넣은 전 아내의 신고였다. 그것이 양심의 가책과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사실은 당시 살인을 저지른 내연남과 신고한 아내는 남편이 교도소에 들어가자마자 대놓고 살림을 차렸고 결혼까지 골인해 자녀를 3명이나 나아 잘 먹고 잘살고 있다가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두 번째 들어맞게 그 발정 난 남자는 아내 몰래 혼외자식을 대한민국의 저출산을 막고자 양산 수준으로 씨앗을 뿌려댔고 그걸 교묘하게 kgb나 국정원처럼 숨겼지만 자신의 소유인 남자가 다른 암컷의 채취를 1%라도 풍기면 무서우리만치 눈치채는 여자 많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후각으로 남편의 뒤를 쫓았고 결국 남편이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경찰에 자신의 지금 남편이 과거 자신의 딸을 살해했다고 신고하면서 거짓 눈물을 흘리면서 연기를 했다. 그렇게 그는 전 아내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억울한 감옥살이를 30년을 하고 출소를 했다. 그리고 출소를 하고 바로 찾아간 곳은 딸이 있는 납골당이었다. 묘에 묻고 싶었지만 도대체 시체를 수습할 수 없을 만큼 그 당시 훼손돼있었기에 가루로 남기는 것이 그 당시 최선이었다. 많은 카메라와 기자들이 있었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신사이자 영웅은 가슴에서 30년 동안 눈에 댐을 만들어 가둬눴다가 댐을 허물어 그물을 쏟아내듯이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 안에 있던 많은 납골당의 뼈 가루들 전부 다 충분히 적실만큼의 눈물이었다. 우리가. 경험하고 봐왔던 그 눈물이 아니라 정말로 신기하리만치 많은 눈물이 미친 듯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미안한 딸과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먼지로 덮인 장막을 씻기듯이 씻겨나갔다. 언론과. 국민들은 그 바람난 여자와 그 거세하지 않고 날뛰고 다니는 발발이를 쳐단 해야 한다고 봉기가 일어났고 사건이 점점 겉잡을수 없을 만큼 커지자 이때를 놓칠리 없는 정치인들도 이사건에 뛰어들었다.마침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여야 진보, 보수할 것 없이 법의 엄단함과 함께 그 둘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격한 사법적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흔히 10명의 죄인을 풀어주더라고 1명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는 법죠계의 유명한 말처럼 사법계화 경찰이 수사에 좀 더 신중을 가해야 한다고 국민들은 자신들의 뜻을 정부에 강하게 내비쳤다. 그 억울한 아버지와 그의 가엾은 딸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분노하는 정치인도 있을 것이고 아닌 정치인도 있겠지만 그중 또 누군가는 표를 받아 자신의 야망을 채워야 하기에 있는 눈물 없는 눈물을 쏟아 냈다. 어떤 정치인은 눈물 연기를 하려고 인공눈물을 눈에 넣는 걸 그 반대편 지지자에게 딱 걸려 언론을 타서 눈이 건조해서 넣은 것이라고 에둘러 변명했지만 결과는 지지율이 찢어발겨져 낙마하고 말았다. 반면 그 상황에서 불타오르는 화를 주체하지못하고 그 살인범과 엄마의 탈을 쓴 마녀를 경찰이 연행할 때 어떤 정치인이 그 둘에게 달려들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고 눈물콧물 다 빼면서 범인들의 멱살과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채면서 곁에 있는 경찰과 보좌진들이 뜯어말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하면서 그 정치인은 또 눈물을 흘리며 분노때문에 호흡이 엉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욕 하나는 아나운서만큼이나 똑 부러지게 했다. 그는 야당 정치인이 었고 이때다 싶어 여당 정치인들과 논객들의 공격이 시작됐지만 상황은 오히려 반대로 흘러갔다. 시민들은 그 범죄자들에게 진심 어린 분노와 어린아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자신들을 대신 공감해 준 정치인에게 애정과 공감대가 형성돼서 연대의식이 생겼고 그 정치인은 압도적인 투표율로 당선이 됐다.. 알고 보니 그는 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약자들 편에 섰으며 이번에 당선되면 2선이 되는건데 처음 당선되고 실무적인 능력도 전국에서 3손가락 안에 드는 등 능력으로도 인정받았다.. 키도 190은 넘었고 풍체도 듬직했고 보수 쪽 정치인이지만 전라도 말투를 구수하게 쓰다 보니 지역감정을 해소할 유일한 인물이 다느니 아니면 대통령감이라느니 여러 가지 말들이 오갔으며 본의 아니 게 차기 대선 잠룡으로 우뚝 솟게 됐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시 돌아와서 내 앞에 앉아있는 이 한 많은 남자의 이야기를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상담을 마치고 다음 상담은 가지지 않았다. 나또한 그럴 필요를 부정했고 본인 또한 자신의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란 걸 알았다. 나는 돌아가는 그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고 조금 오랫동안 그 자세를 유지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담아 예의를 차렸다. 그리고 퇴근후에 집에 와서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감옥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것도 평생을 독방에 살았단다. 정말 그건 있을수가 없는 일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그것도 지극히, 철저히 사회적인 존재다. 어떻게 혼자서 독방에 살면서 저렇게 온전할 수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일에 심리학적 이론은 딱히 쓸모가 없어진다.. 많은 시간을 대화한건 아니지만 그분은 마음상태는 정상이었다. 손이 떨리고 약간의 확신이 없다는 것은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똑같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가지고 바로 정신과에 와 자신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태도 또한 그가 정상이라는 걸 반증해 준다.. 그는 독방에서 하루에 팔 굽혀 펴기를 300개씩 매일했다고 했다 그게 몸이 좋아지냐고 의문을 가진다면 저 300개를 매일 30년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히 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는 정신적으로 버틸수 있었던 것도 대단한 운동은 아니지만 꾸준한 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옛말처럼.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 그리고 나는 다른 무엇보다 그의 정신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고 평가를 넘어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아 혼자 있는데도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그남자의 입장이 돼봐라 한번 . 기가 찰 노릇 아닌가? 아니 어떻게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이 동반자 라고 믿었던 아내가 바람을 폈고 그 아내의 내연남이 자신의 딸을 성폭행하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무참히 살해했고 거기다가 자신이 딸을 성폭행해 살해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써서 30년 동안 감옥에서 인생을 썩혔다는 게 말이나 되는소리냐는 거다. 정말 화가나서 정말.. 그리고 그는 자신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독서로 뽑았다. 그가 말하기를 처음에는 자포자기 였다고 했다. 교도소에 들어갔을때 처음에는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기억을 가끔식 잊어버리고 발작을 일으키는가 하면 모든 게 비현실감으로 자신의 정신과 몸이 분리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의 판단으로 그건 신경증의 한종류인 '이인증'이라고 생각된다. 밖에서부터 딸을 비참하게 잃은 상황에서 정신과 마음이 박살이 났는데 사형선고가 떨어져 시행만 안 됐지 정부의 허락만 떨어지면 사형수인생은 언제 끝나는지 모르는 상황이고 한편으로는 차라리 사형을 당해서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지금보다. 더 지옥은 없을 테니까...... 또 교도소란 어디인가?. 악취와 오물로 둘러싸인 인간 쓰레기통이지 않나? 그런곳에서 신입이 왔는데 가만히 있을 괴물들이 아니다. 골려주고 자신의 노예로 만들려고 협박과 온갖 정신적 박해를 가했지만 악다구니로 대항했다고 했다. 독방이라서 더 나았냐고 물었을때는 그건 잘 모르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니 외로움과 공허감때문에 자살충동을 엄청나게 느꼈다고 했다..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들과 죽을 때까지 같이 있어야 하는 것 고통스럽지만 영원히 혼자 있는 건 더한 지옥이지 이라고 했다. 그는 거듭 고백하기를 책이 자신에게 많이 힘이 됐다고 했다.. 살면서 바쁘게 살아오느라 책 한 권을 읽지 않았고 학교도 집안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고 바로 일을 해서 집안을 먹여 살려야 했기에 활자와는 거리를 두는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극적인 그의 숱한 역경의 이야기중 그 부분이 가장 가슴이 아파와 눈물이 눈에 고였다. 어떤 책들이 가장 힘이 됐냐고 물었을 때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수용소의 하루>, 임레>, 케르테스 <운명>,<운명 데이비드D.번즈< 필링굿> 등 삶의 역경과 지옥 같은 현실에서 먼저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와 현자들의 지혜를 읽으면서 많은 힘과 위로를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자신이 반드시 이 억울한 감옥살이에서 벗어나서 딸이 있는 납골당에 가서 가루가 된 딸과 대화를 나누고 그런 다음 책방을 열어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소설가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목표를 살아가야하는 의미와 이유로 삼아서 그 고단한 하루하루 언제 나갈지 알지못하는 오리무중의 상황을 견딜 수 있었다고 했다. 매일 혼자 독방에서 사람들에게 책을 팔고 딸의 곁에 가서 죽은 딸과 대화하는 상상, 작가가 되어서 지옥을 살고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마음 든든해지는 상상,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미소짓는 딸의 모습등을 상상하며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넘어 망상에 가깝지만 그런 태도가 그를 지금까지 버틸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라고 했다. 지금 자신이 국가에서 받은 돈으로 작은 동네 서점을 열었고 딸이 이름을 따서 '민지서점' 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그이야기를 하면서 설레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나도 저절로 입꼬리고 올라갔다. 그에 억울한 사연을 들음 으로써 감정이입을 통해 나는 내 안에서 나름의 치유를 얻었다. 세상에는 참 힘든사람들이. 아니 힘든다는 말은 부족할 것이다.. 말 그대로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꼈다.. 자신이 우주의 귀퉁이에서 세상을 다 아는 듯 판단하고 신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변화무쌍한 인간의 본성을 책 몇을 독파했다고 으스대며 꿰고 있다고 착학한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시뻘개 졌다. 그러다 갑자기 나의 마음속에 드는 생각이 나의 감정을 지현씨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그생각과 함께 설렘과 마음 따뜻해짐이 동시에 느껴지며 자연스레 내 얼굴에는 또다시 미소가 띄어졌다.... 내담자와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는 건 직업적 윤기강령에 어긋난 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나의 설레는 감정과 그가 한딴한땀 축조한 이야기를 지현 씨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현씨의 그 똘똘한 눈동자와 그 특유의 재기 발랄함과 진심이 묻어있는 반응을 보면서 마음한견을 채우고 싶었다

다음날 보다 가벼운 발검음과 마음을 가지고 출근했다. 평소보다 30분 먼저 출근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머리를 말리면서도 거울을 보고 시리얼로 아침을 떼우면서도 우울함이나 지친 느낌 같은 것은 감히 끼어들 수 없었다. 흥얼거리며 출근을 했고 상담실에 걸려있는 거울을 보고 삐죽 튀어나와있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치아에 혹시 불순물이 꼈나 확인했다. 출근한 지현씨와 인사를 하고 오전 상담이 끝났다. 나는 지현씨와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그때 지현씨가 어떤 남자를 살짝 밀치며 웃고 있었다. 그의 인상착의는 다부진 몸에 얼굴을 배우상에 허여멀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현 씨는 내가 나온 걸 보고 인사를 하고 옆에 남자도 지현 씨를 따라서 인사를 했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고 창자가 배배 꼬이는 질투심에 몸안은 이미 마비가 되어있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어제 그 영웅의 번호를 달라는 뚱딴지같은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래도 짦은 순간이었지만 그런 재치를 발휘한 내게 칭찬을 덤으로 얹으겠다. 그러자 지현씨는 "원장님 그분 번호는 왜요. 또 사적으로 연락하시려는 것 아니시죠" 지현씨는 리나 씨 때처럼 개인적으로 내담자와 연락할까, 또 이놈의 착해빠진 의사양반이 오리잪을 벌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는게 보였다.나는 왠지 저 옆에 있는 새끼 에게서 작은 승리를 가져갔다는 느낌에 약간은 우쭐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전혀 아니거든요' 라며 옆에 있는 그 잘나게 생긴 남자에게 나와 지현 씨는 그저 다른 직장처럼 상막한 직장상사와 부하 사이가 아니라 친근하고 말을 놓는 오빠 동생 같은 사이라는 것을 넌지시 보여줬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내 생각에는 지현씨가 자신에 대한 사랑이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오만방자한 생각에서 나오는 태연자약함 이었다.. 짜증이 솟구쳤다.. 또 그의 표정을 보니 도대체가 그 표정의 저의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조금은 그의 표정을 읽어 보자면 놀람이라는 감정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표정이었다. 내가 그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다시 상담실로 들어가고 문을 닫을때 그 둘을 살며시 쳐다보니 둘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상담실에서 미어캣마냥 문에 대고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그렇게 둘을 인사를 하면서 헤어졌다.. 나는 상담실안에서 다른 업무는 보질 못했다. 미안하지만 상담이 5개나 잡혀있었고 각자의 사정이 있는 환자들을 상담했지만 나는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조금도 공감하며 듣지 못했다. 간헐적으로 태엽감은 인형처럼 리액션을 했다. 또 상담을 받는고통받는 내담자는 내가 자신의 이야기를 공감한다고 착각해 눈물을 흘렸다. 죄책감이 밀려왔지만 지현씨와 의문의 남자의 사이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해서 파동을 일으키며 커져갔기에 그런 죄책감쯤은 깡그리 무시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내가 요즘 부쩍 돈독에 올라서 얼굴표정을 바꾸는 법을 어느 정도 숙달하던 참이었다. 나는. 괜한 심술이 났는지 지현 씨가 업무 관련 일로 들어오면 표정하나 없이 정색을 하며 말투가 정이 뚝 떨어지는 말투로 지현 씨를 대했다.. 눈한번 마주치지 않았다. 나자신이 이행동을 하고 있음과 동시에 나 자신이 너무 옹졸했지만 그렇다고 웃고 싶지는 않았다. 지현씨도 내 표정과 말투에서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괜스레 말투를 유쾌하게 했다. 나는 그런 지현씨가 짠했지만 이상 야릇한 우월감에 마음 한켠이 기쁨으로 채워졌다. 좋은 의미에서의 기쁨의 감정이 아니라 그 뿌리가 썪어있는 듯한 기쁨이었고 무슨 즉각적인 벌을 받는 것처럼 머리가 복잡해 지끈거렸다. 퇴근 1시간전에 지현 씨가 문을 두들겼다. 혹시 자신이 먼저 사정이 있어서 퇴근해 봐도 되겠냐고 했다. 나는 여전히 찌질이 마냥 현재의 토라진 콘셉트를 유지하며 이유를 물었다. 아까 자신의 친오빠가 와서 새언니와 깜짞 결혼기념일 대신 준비를 해달라고 직접 찾아왔다고 했다. 몇일전 자신의 친오빠가(아까 내가 감히 매형 될 분에게 새끼라고 했던 그분 말하는 거다).. 새언니의 생일을 까먹는 바람에 새언니가 입이 대빨나와서 자신의 오빠와 말 한마디 안 하고 있기에 구원투수로써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무뚝뚝함을 유지하되 약간은 액채로 변하기 직전의 물렁물렁함을 어느 정도 가미해서 신사다운 말투와 마음 넒고 쿨한 상사의 표정을 지으면서 흔쾌히 허락했다. 그렇게 지현씨가 가고 나는 기쁨에 겨워 춤을 췄다. 나의 인생곡인 ''댄싱인 더 문라이트'를 틀어 놓고 혼자 주접을 떨며 몇십 분 전에 누군가 대성통곡한 상담실 안에서 춤을 췄다.. 오늘 또한 굴곡진 내담자들의 이야기가 펼쳐졌지만 나는 그들의 슬픔감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온전히 지금 유쾌, 통쾌, 상쾌한, 나의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일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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