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다음 주까지 여전히 파리만 날렸다. 지금까지 리나 씨를 상담한것 빼고 한 명도 없다. 강남이라서 돈걱정 없이 잘 먹고 잘살아서 그런가 상담을 받으러 안 오나? 아닐거다.아닐 거다. 오히려 돈 때문에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정신과에 오는 비율이 훨씬 적다.. 돈걱정 없어서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오는 지루함과 허무함에 정신적인 문제를 일이 키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데 왜 안 오냐고!!!! 그래도 위로가 되는 사실은 오늘 리나 씨가 상담하러 오는 수요일이다. 2시까지 오기로 했는데 조금 늦는 거 같다. 시간이 2시간이 지났다. 나는 초조한 마음을 들키지않으려고 노력하는 말투로 지현 씨에게 리나 씨에게 전화 한번 걸어보라고 했다. 전화를 안받았다. 혹시나 해서 리나 씨의 모성애 강한 엄마에게 전화한 번했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이 흐른 후 전화를 받았다.
"혹시 리나씨 어머니 되실까요?"
"네 맞는데 무슨 일이시죠"" 친절한 말투였다. 교양 있는 말투의 전형처럼 들렸다.
"여긴 강남에 위치한 붙들어주는 손 정신과입니다.. 저는 병원장 박라니라고 합니다. 다름 아니라 리나 씨가 연락이 안 돼서 어머니께 연락드렸습니다." 잠시 말없이 정적이 흘렀다. 나는 상대방의 응답을 기다렸다.
"어 우선 리나 그애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따로 살고 있습니다. 저도그애상황을잘몰라요.저도 그 애상황을 잘 몰라요. 전화도 잘 안 받고 사춘기가 와서 그런지 나참 하하하 제가 한번 연락해 볼게요.. 그 애가 종종 연락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다 제 불찰입니다 우선 끊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정신과에 갔다는 사실을 들었으면 엄마라는 사람이 당연지사 딸아이가 왜 정신과에 전화를 했으며 정신과 의사란 양반이 왜 나에게 전화를 했을까 하는 질문을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었지만 바로 생각을 바로잡고 나 스스로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 여자는 남자에 미쳐서 성폭행 당한 딸을 질투하는 미친 여자다.. 눈이 돈 여자에게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나는 속으로 참 천박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한. 55분 있다가 전화가 왔다. 자기 전화도 안 받는 단다.. 그리고 갑자기 자기변호를 하기 시작했다. 난 묻지도 않았다. 자기는 지금 일에 치이고 새 가정을 꾸리느라 딸을 신경을 못썼다고 했다. 그리고 누가 봐도 연기하는 듯한 울을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이럴 때 정신과의사로서 그의 마음과 기분을 물어주는 게 직업윤리에 적합하겠지만 도저히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나오기 일보직전이라서 그냥저냥 하고 전화기를 끊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끊었다. 누군가를 비판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이해하는 것이 정신과의사로서 가져야 하는 마땅한 태도겠지만 난 내 감정에 좀 더 솔직하게 상담을 하기로 결심하고 이병원을 열었다. 상담에 정답이 없는 법이다.. 모든 사람을 끌어안을 수는 없다.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표할 필요도 없다. 살인강도를 저지르고 여성을 짐승보다도 못하게 여기고 우주 같은 아이들을 학대하는 인간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까? 절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옳다고 여기고 억울해한다.. 그런 사람에게 신의 은혜가 동일하게 적용되겠지만 분명히 이세상법과 도덕적으로는 철퇴를 맞아야 한다. 웃음이 아니라 분한 얼굴로 그들을 대하고 외면하고 버려야 한다.. 그들까지 나는 상담하거나 끌어안지 않을 것이다.. 돈만 밝히는 변호사나 하는 짓을 나는 기어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마음이었느지 모르겠지만 겉옷을 챙기고 지현 씨에게 리나 씨 주소를 보내달라고 했다. 지현 씨는 약간 머뭇 거리다가 용기를 내 말했다
." 환자 집에 찾아가는 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뭐가 위험한 대요"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며 도전적인 말투로 되물었다. 하지만 지현 씨는 어떤 자신만의 단단한 생각에 의지하듯이 또는 소신을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진 사람의 특유의 강단과 침착함을 겸비한 말투로 자신의 의견을 조근조근 피력했다.
"우선 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장님은. 의사예요 그것도 사람의 마음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정신과 의사요. 하지만 세상에 리나 씨의 아픔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지옥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 널렸어요. 유난히 한국에 많긴 하죠 그 사람들을 다 치유할 순 없어요.. 앞으로 리나 씨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병원에 찾을 거예요 그러면 그럴 때마다 무슨 부모처럼, 복지국 직원마냥 일거수 일투족 수발들 수는 없는 거잖아요 원장님...만약 오지 않고 연락이 안 된다면 칼같이 끊어셔야 해요.. 제 말이 냉정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살려면 팔다리를 잘라야 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정말 실례가 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건 이건 너무 나대는 거라고요. 연락안된지 3시간도 안됐어요.. 잠들어있을지 핸드폰을 잃어버렸을지 약속을 깜빡했을지 원장님이 도대체 어떻게 알아요 그런데 몇 시간 연락 안 된다고 집까지 찾아가는 게 리나 씨에게 도움이 될까요? 오히려 부담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원장님"
맞는 말이다. 선을 지켜야 한다.. 학교 다닐 때도 교수님들과 선배들이 항상 하는 말이 상담할 때 너무 감정이입을 한다던가 사생활에 직접 적인 관여는 분명 탈이 난다고 귀에 닦지가 들정도로 말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나는 합리적인 사고를 내팽개치고 리나 씨가 걱정이 돼서 지현 씨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고 병원 밖을 나갔다. 주소를 네비에 찍고 도로위를 달렸다. 병원에서 1시간 남짓 걸렸다.. 집은반지하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그런 반지하. 밖에는 술취한 취객이 발사하는 노상방뇨와 토악질을 해대는 모습이 정면으로 보이는 그런 반지하. 하필이면 주변에 유흥주점이 많이 있어서 추한 인간들이 반지하에 근처 쓰레기에 서식하는 쥐와 바퀴벌레 마냥 득실댔다.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건물로 들어서자 무덤처럼 습하고 음침한 찬기운이 얼굴을 덮쳤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 비린 내가 코를 찔렀다. 마스크를 쓰고 왔어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걸 만약 리나 씨가 본다면 수치심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쓰지 않았다.. 그 배려는 의미가 없었다.. 계속 불렀다. 문을 두들기고 전화를 해봤지만 안에서 전화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종종 같은 건물에 사는 주민들이 나와서 짜증을 냈다. 개중에는 몸에 문신한 문신돼지와 옆에서 천박한 우월감을 뽐내는 가슴을 반쯤 드러낸 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상황에서 느껴지는 한탄과 그 한탄에서 싹튼분노의 화살은 전부 리나씨의 부모에게로 향했다. 리나 씨의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답이없다. 아니 기다리질 못했다. 5분도 안돼서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음이 흐른 후 전화를 받았다
리나 씨가 집에 없다고 했다. 혹시 연락됐냐고 묻자 심드렁하게 그런 적 없다고 했다. 자다가 일어난 목소리였다. 딸이 없어졌다는 세상 잘 잔다는 생각을 했다. 좀전에 통화해놓고 퍼질러 잔다는 생각에 화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이통화로 도저히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들어 전화를 끊었다. 그럼 학교에 연락을 해서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학교에 있을 수 있지 않나.. 상담을 받기 위해 인적사항을 적어둔 게 있기 때문에 학교에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학교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났다.. 그래서 지현 씨에게 연락을 해서 물어보려고 했지만 약간 머뭇거려졌다. 아까 지현 씨와의 대화에서 틀린 점을 하나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만약 학교이름까지 물어보면 잔소리를 해댈까 하는 두려움에 전화대신 문자를 보냈다. 답이왔다. 학교이름과 전화번호였다. 그 외에 어떠한 말도 붙지 않았다. 점하나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직원눈치를 봐야 하지 하는 생각과 내가 돈 주는 사람 이잖아? .. 내가 원장인데 환자 학교도 못 물어보냐며 불평 어린 말을 했다. 다만 혼잣말을 했다. 당연히 지현 씨 앞에서는 할 수 없기에...... 그렇게 학교에 전화를 걸어 담임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학교에 안 온 지 3일이나 됐다고 했다. 난 이해가 안돼서 재차 물었다. 선생님도 부모님에게 연락을 했지만 어디 싸돌아다닐 거라고 걱정 끼쳐 죄송하다고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나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를 하러 갔다.그래도 나는 리나씨의 부모가 아니기에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렇다고 불타는 질투심에 딸에 대한 모성애까지 같이 불태운 그 여자와는 통화를 할 수 없었다.. 그의 새아빠와는 더욱더 그랬다. 그래도 엄마와 리나 씨는. 피가 섞였기 때문에.. 그놈의 끊을 수 없는 피 때문에 보내야 하지 않냐는 결론을 내리고 문자를 보냈다. 도저히 통화로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는 기운이 쫙 빠지는 상태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지현 씨에게는 먼저 집에 갈 테니 이만 퇴근하라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계속 리나 씨 걱정이 온통 머리를 맴돌았다..' 별일 없겠지' 라고' 무슨 주문을 외우면서 갔다. 나도 왜 이렇게 리나 씨에게 집착을 하는지 스스로에게 자문을 했다. 상담을 많이 하면서 부모자식 관계에서 문제가 생겨겨 상담을 오는 경우가 많고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실습 때 무수히 많은 가족상담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까지 누가 봐도 선을 넘는 행동을 하는게 맞는지 생각을 했다. 아마 내 첫 환자이기 때문에 애착이 갔을 수도 있다.. 또 사랑받지 못한 부모에 대한 공감 때문일 수도 있다.. 아마 후자가 더 가까울 것 같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내 어렸을 적 회상으로 들어섰다. 나는 고아다. 어렸을 때. 부모가 누군지 찾지 않았다. 찾을 수도 없었다. 여건이 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도 찾기가 힘들었다. 항상. 부모가 궁금했다. 그리웠던 건 당연지사고 궁금했다. 살아있는지 왜 날 버렸는지 너무 궁금했다..그러다 성인이 되어 어느 정도 여건이 되어 수소문 끝에 내 부모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됐는데 둘 다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수없이 얼굴모를 부모를 상상해 봤었다.. 혹시 장애인일까? 그래서? 자신들이 키울 수 없어서 나를 고아원에 맡기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철부지 비행청소년들이 성욕을 찾지 못하고 피임을 할 돈이 없었거나 아니면 극한의 쾌락을 느끼고자 무책임하게 임신을 하고 아기를 지울 용기와 돈이 없어 낳고 버린 걸까?? 아니면 나에게 자신들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내줄 만큼 사랑하는 부모가 있지만 혹시 잃어버려 나는 부득이하게 고아신세가 된 걸까?? 하는 무수한 생각들을 했었다. 하지만 내예상이 맞았다. 하지만 절 만만 맞았다. 우선 나의 엄마라는 사람은 비행청소년이 맞았다. 장애가 있는 부모가 싫어 17살에 집을 나와 나이 든 사람들에게 몸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여자였다. 그리고 나의 아빠라는 사람은 자식이 셋이나 딸렸으면서 좋은 아빠와 남편 코스프레를 하면서 자신의 성욕을 딸뻘 여자에게 풀었고 임신을 하자 몰래 엄마의 엄마 즉 장애가 있는 외할머니에게 돈을 찔러 넣고 엄마와 외할머니가 같이 있는 자리에서 아기는 지우지 말고 낳되 이후에 너와 (나의 엄마를 지칭한다) 너 새끼(나를 지칭한다)는 내 앞에 얼씬도 하지 말라며 옆에 있는 그 철부지소녀의 엄마인 나의 외할머니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마치 영혼 없는 인형 마냥 무시하며 성관계 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으름장을 내며 명령했다. 그리고. 여기서 더가관이 있다. 난 이사실을 알고 굉장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꾀나 위로를 받은 부분이 곳곳에 있다. 뭐냐면 날 임신한 그 소녀는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기에 근처 교회로 도망쳤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그 교회 목사부부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냥 신학교만 졸업하고 목사딱지 달고 교회 먹칠하게 하는 병든 목사들과는 다르게 진심으로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는 목사 부부 였던 것이다. 그렇게 배가 불러오고 어떠한 쪽지도 남겨놓지 않고 출산을 하기 위해 그 교회를 나왔다. 나중에 교회를 찾아가 보니 여전히 아이를 밴 어린 소녀를 걱정하고 있었다.. 다들 흰머리가 난 노인이 되어있었지만 여전히 인자한 마음으로 날 보고 껴안고 계속 흐느끼며 우셨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부모모다 처음 본 어른에게서 나는 어른의 보살핌이 주는 따뜻함을 느꼈고 내 안에 상처받은 어린아이와 같이 울었다. 몸을 팔아 번돈으로 간신히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게 됐다.. 임산부는 절대 들어갈 수 없었지만 게스트하우스 건물주가 같은 여자로서 배가 나온 어린 소녀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방세도 다른 입주자들의 절반만 받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철저히 비밀로 붙여달라고 했다.. 건물주 말고 건물을 관리하는 분이 건물주의 동생이었는데 그분도 어린 소녀가 안타까웠는지 집에서 음식이며 옷이며 애들 옷 같은 걸 준비해 줬다.. 그리고 방도 게스트 하우스 치고는 여유 있는 곳을 줬다. 엄마라는 사람은 뱃속에 아이의 성별도 모르면서 무책임한 엄마처럼 보인다면 지금 살고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내쫓길까 봐 어른들이 자신을 향한 동정이 혐오로 바뀔까 하는 두려움에 나의 성별을 여자라고 말했다. 그렇게 방에는 여자아기옷들이 즐비했다. 온통. 핑크색이었다. 그렇게. 예정 출산일보다 일찍이 내가 태어났다.. 어린 소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병원을 가지 않겠다고 우겼다. 주변에 어떻든 안전한 출산을 위해서 병원에서 출산을 권유했지만 그녀는 만약 그렇다면 이 건물에서 뛰어내릴 거라고 그러면 자신과 아이 둘 다 죽는다고 협박을 했다.. 주변사람들은 인간본연의 휴머니즘을 가지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 몰라라 할 수 없었고 이 깊지 않고 가벼운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면서 그것이 그냥 말뿐인 협박이 아니라 실제로 실행에 옮길 거 같다는 노파심에 게스트 하우스에서 출산을 했다. 게스트하우스는 한국인보다는 외국인이 더 많았다. 일본사람, 중국사람, 태국, 몽골,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브라질, 스페인등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다들 한류니 뭐니 하는 것 때문에 한국에 온 외국인 들이다.. 그렇게 나는 여러 국적의 삼촌, 이모의 걱정 어린 시선과 환대를 받으며 태어났다. 그래도 나름 자상스러운것은 세계 어디를 가도 나만큼 다양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시선이 집중된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는 결코 없다고 장담한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 문화사조 에 찰떡같이 들어맞는 탄생이었다. 내가. 태어난 당일날 나는 의사가운을 걸친 의사와 간호사들에 도움을 받아 출산된 게 아니라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태어났다. 그리고 그 외국 삼촌,이모들은 한국말로 아이가 태어났다는 걸 한국말을 연습할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여러가지 방식으로 표현하며 자기들끼리 웃어댔다. 나름 화목한 탄생이었고 그러다가 관리인 아주머니가 주변에 사람들에게 혼자서 휴식을 취해야 하니 당분간 근처에 오지 말라고 나무랐다.. 그렇기 출산 때문에 지친 소녀를 한때 자신도 소녀였고 출산의 고통을 알고 자신의 사랑 하는 중학생 딸을 3년 전에 잃게 된 관리인 아주머니는 나의 어머니를 자신의 잃어버린 딸아이라고 생각하고 출산한 소녀를 극진히 보살폈다. 그리고 새로운 탄생을 바라보며 마치 딸아이의 죽음으로서 겪은 심적 고통을 이 어린 핏덩이의 탄생으로 무마하려는 무의식적 시도들이 관리인 아주머니의 마음속에 소리소문 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철딱서니 없는 여자아이는 즉 내 엄마라는 작자는 그들이 보살필을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게 생각하고 종종 인상을쓰며 짜증을 냈으며 자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는 아주머니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고 마치 고3수험생 자녀에게 쩔쩔매는 엄마처럼 자기 마음대로 휘둘러 댔다. 비열하게도 내 엄마라는 사람은 진심을 가지고 관계에 몰입하고 딸을 잃은 상처를 꽁꽁 동여맨 아주머니의 마음을 이용해 돈도 여러번 뜯어 냈다. 그리고 어린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걸 자신의 가슴이 모양이 망가질까과 꺼려했으며 출산 때문에 살이튼 부분을 보며 그 갓난아기에게 수없이 눈을 흙기며 아기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일체 하지 않고 욕지거리를 해댔다. 아이는 즉 나는 어렸을때부터 부모의 사랑이 아닌 내 존재 자체가 잘못 됐다 느낌이 들수있게 욕지거리를 받으며 태어났다.그러다가 어느 정도 안정이 돼서 아이를 보러 온 외국인들이 아이에게 욕을 하는 걸 듣자 아이 엄마를 만류하자 찰진 한국욕을 하며 너희 나라로 꺼지라며 온갖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하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주인아주머니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어른들은 이 소녀를 건물밖으로 지옥 같은 바깥세상으로 뱉어낼 수 없었다. 중학교 졸업장에 어떠한 진지함도 없고 삶에 대한 마땅히 가져야 하는 걱정도 없이 아이를 낳은 지 얼마나 됐다고 여느 중, 고등학교 여학생들처럼 얼굴을 꾸미고 밤만 되면 집 밖을 나가 아침이 돼야 들어왔고 어떨 때는 남자를 옆에 끼고 게스트 하우스로 들여올 때도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한마디라도 할라고 치면 노발대발 화를 내고 자신은 아이랑 함께 자살하겠다고 겁박을 주며 아주머니의 입을 원천 봉쇄 했다 . 게스트하우스는 방음이 되는 게 한계가 있었고 거기 사는 외국인들이 시끄러운데 조심 좀 해주면 좋겠다고 서툰 한국어로 말을 하면 또다시 입에 담을수 없는 욕을 해댔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사람들 감정에 예민하고 눈치를 많이 보나??????
. 그렇게 여러 인종과 관리인을 종부리 듯한 이 어린 여왕께서는 게스트하우스 관리실 안에 있는 돈과 몇몇 외국인들의 지갑까지 털어서 말끔이 사라졌다. 그리고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는 건지 그녀에 뱃속에서 10개월 같이 살았던 아이만은 덩그러니 놓고 갔다.. 그렇게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됐다.. 그리고 어린 나를 안타까워하고 같이 돌아가면서 돌 봐줬던 외국인 삼촌, 이모들은,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그러다 관리실 아주머니는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가야 했기에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며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고아원에 맡겼다. 그래도 나의 탄생에서 걷기도 전에 아기였을 때 부모의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이웃들의 사랑을 확인했고 그걸 알게 되었을 때 조금이나마 아니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됐고 충격흡수제로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맞다. 그리고 그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나러 갔지만 충격적 이게도 아니 어쩌면 그리 충격을 주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가 버려진 일주일 후에 자살했다고 했다. 그 위대한 엄마이자 남자에게 버려진 처량한 여자는 온갖 종류에 악한마음과 질투를 연료 삼아 아버지라는 작자를 찾아가 가족을 박살 내기 전에 돈을 요구했고 그 남자는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지만 '넌 할 수 없다고 아무것도 할수없다'고 당당한 태도로 나왔다. 그러자. 엄마는 정욕에 기름이 덕지덕지 부은 남자들을 꼬셔서 충분히 돈깨나 뜯어낼 수 있는 혓바닥과 심리전술과 응큼한 눈빛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만큼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비참한 여자의 새빨간 피보다 찐한 복수심으로 그 남자의 회사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 학교에 자신과의 관계영상을 뿌려버렸다. 남자는 집을 나갔고 그의 시체는 한강 해양경비대에 건져졌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나의 탄생을 곱씹는 동안 어느새인가 나는 집에 도착했다. 집 앞슈퍼에서 맥주를 사고 집에 들어와 티브이를 틀어놓고 순식간에 4캔을 마셨다. 알딸딸했지만 취하진 않았다. 계속해서 리나가 걱정됐다.. 뭐 없으니 존칭은 생략해도 되겠지. 혹시나. 납치된 건 아닌지 내가 태어난 지 일주일 조금 넘어 걷기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나의 아버지처럼 생을 마감하는 건 아닌지 또는 내 가 상담하면서 실수한 게 있었나 하는 온갖 잡념들이 머리를 감쌌다. 술에 힘을 빌려야겠다.맥주 와 소주 를 집앞 슈퍼에 무슨 피를 급하게 멎게 해야하는 사람이 붕대를 찾는것 마냥 나는 급하게 술을사서 집에서 안주도없이 들이마셨고 간신히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