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인간 - 2화

by 박환희

정식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읍내에 있는 마트를 갈 계획이었다. 집안에 음식이 동이 났기 때문에 살기 위해선 음식물을 섭취해야 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그에게 언제나 힘들고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굶어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힘겹게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읍내에 있는 마트로 향했다. 지하인간이 지하를 벗어나 외출하기 위해 입는 옷은 허름하고, 온갖 구정물들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그의 곁에 다가가면 악취로 고생깨나 할 것 같았다. 옷을 살 수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기초생활수급과 장애수당으로 나오는 돈을 대부분 술을 먹는 데 사용했다. 그는 불편한 왼쪽 다리를 질질 끌어가며 식량을 구하기 위해 동네에 있는 b 마트에 도착했다. 시골에 있는 마트였지만 나름 규모가 있었다. 정식은 마트 안으로 들어가기 전 입구에 섰다. 그는 벌써부터 턱밑이 막혀오는 느낌을 받았다. 이윽고 배와 등 쪽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지하인간에게는 이토록 버거운 일이었다. 마트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반갑게 맞아주는 직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라면코너 쪽으로 들어서려던 찰나 그는 계산대에서 있는 계산원을 보고 기겁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젊고, 아름다우며 생기발랄하게 생긴 여자가 계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식은 주변에 이 마트 말고는 생필품을 살 곳이 딱히 없는지라 지하에 물자가 떨어지면 으레 b마트를 찾곤 했다. 그가 화들짝 놀란 이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트계산원 이라함은 얼굴과 몸에서 기가 빨려서 인간미라고는 없는 아줌마들이 계산대를 독식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피부가 뽀얗고 깔끔하게 생긴 미인이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고 있고 심지어 감히 서비스 직종에서는 찾을 수 없는 친절함과 미소까지 겸비했기 때문이었다. 정식은 먼가에 홀린 듯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눈이 마주쳤다. 계산원은 정식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저 남자가 자신을 쳐다볼까?'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곧바로 그녀는 지하인간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정식은 그녀의 미소에서 당사자의 의도를 묻지도 않고 지레짐작 본인을 향한 비웃음으로 해석했다. 그는 부끄러움에 온몸이 뜨겁게 달구어지는 느낌을 들었기에 뒤를 돌아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몇몇 직원뿐 아니라 그곳에 장을 보는 사람들이 멍하니 서있는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뒤돌아 나간다면 자신을 욕할게 뻔했기에 도주는 포기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고개를 숙여 사주경계를 하면서 현실감각을 마비시키는 알코올 보따리가 있는 코너로 발걸음을 옮겼다. 술이 잔뜩 쌓여있는 코너 앞에 서자 정식의 경계는 한층 더 광범위하고 예민해졌다. 맞은편 고기코너에서는 무표정하게 고기를 썰고 있는 남자들의 시선을 피해 야채코너를 향했다. 그곳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 직원과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정식은 별안간 현기증이 느껴저서 그 자리에서 쓰러지기 직전이었지만 젖 먹던 힘(참고로 그는 엄마의 젖을 먹어본 적이 없다.)까지 끌어모아 한쪽다리에 힘을 주고 손으로 옆에 있는 기둥을 간신히 잡았다. 마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장애인 아니면 노숙자 또는 인생 패배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한데 모여 자신의 머릿속으로 던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서둘러 술을 사고 옆에 있던 안주거리를 대충 집고는 다리를 절뚝이며 계산대로 향했다. 어떻게든 그저 일시적인 사고로 발을 절뚝이는 척하고 싶었지만 왼쪽 다리는 완전한 감각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는 자신의 심장박동소리가 자신의 귓가에 맴돌정도로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일생일대 최대고비라고 생각하며 비장한 마음으로 계산대로 향하려던 찰나 그만 들고 있는 맥주캔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맥주캔을 급하게 주우려다가 들고 있던 안주거리들이 연이어 바닥에 떨어졌다. 옆에서 투박한 표정으로 줄곧 정식을 바라보던 조끼를 입은 중년 여자직원이 다가와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큰 한숨을 쉬며 '다음부터는 바구니를 이용해 주세요.' 라며 이를 악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정식을 보고 '내가 널 혼낼 수 있는데 참아주는 거야'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떨어진 물건과 짝으로 된 술을 서둘러 카트에 담고 계산대로 향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는 고개를 숙이고 급하게 계산대로 향하다가 젊고, 어여쁘고, 친절한 여자 계산원 앞에 서버렸다. 정식은 그 자리에서 자리를 옮긴다면 자신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여성에게 모욕을 준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카트에서 술과 안주거리를 꺼냈다. 그런 정식을 보며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괜찮으세요?" 라며 인간미 넘치는 목소리로 조심히 물었다. 정식은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있을 수 없는 일이냐며 혼잣말을 해대는 통에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드디어 계산을 마쳤다. 상냥한 여직원은 대답 없는 그를향해 "안녕히 가세요" 라며 마지막까지 친절을 보였다. 그녀는 끝끝내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가버리는 정식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의 작은 생채기가 났는지 입술을 삐죽했다. 정식은 그런 사실도 모른 체 급하게 마트 밖을 뛰쳐나갔다.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육체의 비루함에 그의 꼴은 더욱 초라해 보였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그는 자신의 실수들을 곱씹으며 가게 안에서 덩치 좋고 훈훈한 야채코너 남자와 바닥에 떨어진 맥주를 주워주며 충고를 한 중년여성 그리고 서비스직을 하면서 좀처럼 보기 힘든 친절함을 함양한 여직원에 대한 기억들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과 표정 그리고 몸짓들이 자신을 업신여겼다는 오염된 생각들이 숨도 쉬지 않고 물밀듯이 정식의 뇌리 속으로 들어왔고 그는 그런 생각들을 여과할 여유가 없었고 또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숨을 고르게 쉬지 못하며 누가 보면 산소가 부족해서 호흡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정식은 들숨과 날숨을 힘들어했다. 참고로 그가 걷고 있는 길과 집 주변은 대부분 공기좋은 숲이었다. 그는 힘겹게 집까지 불편한 다리를 끌며 주파했다. 곧바로 지하세계의 문을 열었다. 정식은 너무 급하게 내려가는 바람에 계단에서 구르고 말았다. 퍽 소리가 났지만 그의 육신의 고통보다는 조여 오는 마음과 도륙된 영혼의 고통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그만의 치유방식은 오히려 자신의 병들게 한다는 걸 그 당시는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겠다. 서둘러 일어나 침대 메트 위로 몸을 옮겼다. 인근 교회 바자회에서 5천 원을 주고 사온 매트였다. 그는 신발을 벗고 매트 위에 정갈하게 누워 순서를 맞춰 왼손 먼저 배꼽 위로 올리고 마저 오른손을 곱게 올렸다. 그리고 그에겐 없을 것만 같았던 차분함을 간직한 채 서서히 깊은 몽상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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