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하인간이다. 이름은 주변에 흔히볼수 있는 '정식'이다. 지하인간의 서류상 명칭은 고아원 원장이 지어준 이름이다. 지하가 편한 그는 대낮에 술을 끼얹는 부류들처럼 허송세월을 보냈고 나이가 불혹을 넘어 곧 있으면 50줄이 되기 직전이었다. 그의 유일한 자산으로는 반지하도 아닌 그저 구정물이 가득 찬 지하를 일천만 원주고 샀다는 사실이다. 그게 유일한 그의 자산이었고 나름의 자랑이었다.
정식은 지하가 편하다. 행색이 초라하고 직업은 딱히 없이 기초생활 수급과 장애수당을 받으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꾸려나가고 있다는 말도 애써 포장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어떠한 목표도 없이 원치 않지만 심장이 뛰기 때문에 살고있다. 거두절미하고 들숨과 날숨에 의해 그는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세상을 향한 무기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다리병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는 당당하고, 마땅하다는 마음가짐으로 장애수당을 받고 있다. 그의 인간관계를 들여다보자. 친구라고는 동네 떠돌이 개인 깜순이가 유일하다. 깜순이라는 부르는 이유도 단순히 검은색의 개라서 정식이 지은 이름다. 그가 거처로 살고 있는 곳은 시골이지만 20분 정도 걸어가면 읍이 나왔고 나름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하가 그에겐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다. 흔히 사람들은 이런 비참함을 두르며 사는 사람들을 볼 때 으레 그의 부모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비루하고, 하찮으며, 천박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그의 부모였을 거라고 짐작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의 편견은 과녁을 조금도 비켜가지 않았다. 옛 어른들은 지금의 관점으로 볼 때는 지극히 편견과 지나친 전통, 과한 예의범절, 남녀칠석 부동석 같은 폐악들이 넘치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었고 가난하고 못 사는 대한민국의 과거를 고려했을 때 몇몇 어른들의 모습에서 볼수있는 천박함과 매너없는 행동이 정상참작 할만했다. 하지만 역사를 막론하고 어느 세대나 인간이하의 성품을 갖거나 인간이라면 갖춰야 하는 미덕을 걷어차버리는 족속들이 있기 마련 인지라 정식의 부모는 그런 인간군 속에서도 일등석을 꿰찬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정식 자신과 같은 다리병신이었고 어머니는 온갖 동네 남자들을 홀리고 다니는 꽃뱀 중에 꽃뱀이었다. 그렇다고 절세미인이냐? 그것도 아니었다. 몸에는 살집이 있었고 얼굴은 이국적이지도 깔끔하지도 않고 다소 굴곡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혓바닥은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이 혀를 내두를 만큼의 따사로움과 달콤함을 머금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어떻게 다리한쪽을 잃은 온 동네에서 병신이라며 놀림받는 사내가 차지할 수 있었을까 싶지만 그런 아름다운 로맨스는 정식의 유전자에 전달되지 않았다. 평생을 열등감과 자격지심에 살던 정식의 아버지는 온갖 폐악질을 일삼다 유일하게 성적인 죄만큼은 짓지 않겠다고 다짐한 자신의 결의를 내팽게치고 길을 걷고 있는 정식의 어미를 범해버린 것이다. 온갖 만신창이가 된 그녀는 논밭에 버려졌고 비극적이게도 길을 가던 동네 모질이에게 한번 더 범해져 실신 직전까지 가다가 동네를 순찰 중이던 경찰에 의해 가까스로 구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식 어미의 배가 불어왔다. 그녀는 그녀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생명이 어떤 남정네의 씨앗인지 알지 못했다. 훗날 태어날 정식의 씨앗이 다리병신 사내인지(바로 이 사내라고 정식은 믿고있다.) 아니면 온갖 가정있는 유뷰남들과 놀아났기에 그들중 하나인지 아니면 마지막 널브러져 있는 그녀를 다시 범한 동네 백치인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뱃속의 아이를 지우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뱃속의 생명을 지우지 않고 낳는다는 사실이 지금까지 살아온 그녀의 삶에 드리운 부도덕이 씻겨질 수도 있다는 그녀 스스로 나름의 면죄부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으니 신의 사랑과 가장 닮았다는 어머니의 사랑은 그녀 본성의 천박함에 깔아 뭉개지고 말았다. 그녀에겐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그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선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먼 나라의 속담처럼 그녀에게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한 기독교재단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아이를 버려놓고 떠났다. 핏덩이가 채 마르지도 않는 갓난아이의 이름도 정하지 않은 채 그것도 장대비가 말라붙은 지면을 흔뿌리던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