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첫발을 내딛다
정신과 개업한 지 첫째 날이다.. 너무 떨렸다. 드디어 내 이름을 걸고 병원을 개업했다. 우선직원은 접수직원 1명만 고용했다. 대학교 친구동생인데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본의 아니게 몇 달 동안 백수생활을 하다가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해 도저히 안 되겠다 싶던 차에 내가 병원을 개업한다디까 간곡히 부탁했다. 인상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름은 김지현고 했다.
직원이 어떻게 보면 내 첫 환자일 수도 있는 거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직원들과 얼굴 붉히는 일은 없는 게 나에게도 훨씬 이득이기 때문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해야겠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내가 내심 뿌듯했는지 왠지 모를 만족감을 느꼈다.첫날은 어떤 한 내담자도 없었다. 걸려오는 전화는 잘못 걸려왔거나 스팸전화뿐이고 손님이라곤 주변에 개업한 짜장면 집 전단지 붙이러 온 배단원들 뿐이다. 강남 한복판이라서 이런 작은 중국집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중국집은 어느 틈 속에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도저히 누가 사주하지 않고는 이렇게 파리만 날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발길이 뜸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에 자살률이 OECD1위라는 게 사실인지 의문이 갔다. 우울증 환자가 많다는 뉴스기사는 역시 조회수과 구독자를 늘리려는 술수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길 저주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 환자가 없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러다 망하는 건 아닌가. 역시 나는 태생이 천해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가.. 천애고아인 내가 역시 잘난 의사가 될 수 있겠나. 모난 부모밑에 잘난 새끼가 날수 없는 노릇이다. 그건 진리다. 이런 불안들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잡념의 고통이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정신과의사다. 불우한 환경을 이겨내고 한국 최고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그것도 수석으로 졸업했다. 지금 상황에 대해긍정적인 의미부여를 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내가 느끼는 감정은 인지부조화에서 오는 오류다. 이건 팩트다. 감정은 생각을 통해 만들어진다. 주어신 상황 즉 환자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내가 하는 생각들은 극히 불합리한 생각들이다. 펜으로 나의 생각의 오류들을 적어내고 긍정적 스토리텔링을 하자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았고 상황을 보다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지현 씨도 회사가 부도가 나서 망하고 몇 달 동안백수생활로 가족들의 눈치를 많이 본 건지 계속해서 내쪽을 흘깃거리면서 앞에 닦았던 대를 수십 번은 문지른 것 같다. 저러면 오히려 더 지저분해지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한마디 할 수도 없는 게 그 모습이 딱하기도 했고 그래도 내가 작은 정신과이지만 그래도 원장인데 환자가 없다는 것에나 스스로 도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지현 씨가 무슨 잘못인가? 그렇다고 해서 정신과 의사가 전단지를 가지고 가서 길거리에서 살며시 미소를 띤 채"혹시 자살을 하고 싶거나 죽고 싶거나 정신병을 앓고 있거나 마음이 심란하신 주부, 학생, 회사원 할 거 없이 저희 병원으로 오세요. 모든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신비롭고 놀라운 곳입니다"라고 호객행위를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의사란 본래 흰색가운을 입고 진득이 앉아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환자에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사람 이다. 망할 때는 망하더라고 체면은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머 은행에서 빚 갚으라고 독촉전화하면 어떠한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다면 되는 거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지현 씨처럼 나도 내방을 쓸고 또 쓸고 닦은대를 또 닦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가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머지? 하던 차에 밖으로 나가다가 문을 열었는데 지현 씨가 달려오더니 "원장님 드디어 환자예요. 환자가 예약을 했어요 내일 오전 11시에 약속 잡았어요, 아 맞다. 죄송해요 당연히 원장님과 먼저상의를 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나는 춤을 추고 싶은 기쁜 마음을 애써 숨긴 채 신경 쓰지 말라는 말과 함께 다음부터는 시간을 물어봐달라고 자상한 말투와 듬직한 남자와 그리고 원장이라는 권위에서 나오는 무게감 있는 말투를 한데 섞어 말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 파리만 날리는데 무슨 새벽에 상담받으러 온다고 해도 잠옷바람으로 나갈 생각이었다.나는 환자에 대해 간단한 질문을 했다.
"환자기본인적사항이 어떻게 되죠?"
"여학생이고요"
"학생이요? 대학생?" 나는 지현 씨가 말하는데 끼어들 어물었다.
"아니요 고등학교2학년이래요 "
나는 약간 당황했다. 분명히 지금은 5월이고 방학기간이 아닌데. 왜 학교에 있어야 할 학생이 오전 상담을 신청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건 내일 되면은 풀릴 일이다. 그렇게 환자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나누다. 퇴근까지 3시간이 남았지만 특별히 오늘은 조기 퇴근을 하기로 했다.. 지현 씨는 조기퇴근 얘기를 듣자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나를 껴안았다. 서로 당황했다. 지현 씨는 자신에 행동에 정전기가 난듯 깜짝 놀라하면서 인사를 하고 재빠르게 퇴근준비를 하러 접수대로 갔다. 지현 씨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무슨 술 취한 사람처럼 얼굴이 사과같이 빨개졌다. 나도 덩달아 당황해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가슴이 뛰었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그냥 당황한 거지라고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주문을 되었다. 내 대학친구 놈이 워낙 인물이 좋아서 하루에 한번 꼴로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는데 동생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장난으로"너 닮았으면 얼굴반반 하겠네 소개좀 해주라 어때?"라며 장난스럽게 이야기 했었 는데 지현씨가 처음면접을 보러 왔을때 헉소리가 날정도로 미인 이었다. 하지만 공과 사는 지켜야 했고 또 대학친구와 되게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더 조심했다. 혹여나 연분이 생겨 사귀다가 헤어지면 우정에 금이 갈 수도 있고 지금은 오픈시기이니 병원 일에 더 몰두해야한다는 마음으로 생각을 다잡았다.워낙 환자가 없으니 짧은 기간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정신과 의사다 보니 지현 씨 이야기를 하루 온종일 듣는 날도 있었고 지현 씨도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읽은 것이 확실하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경청하는 기술이 훌륭했다. 주희 씨가 다니는 회사가 망하지만 않았다면 분명히 임원은 달았을 거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듣는 기술뿐 아니라 굉장히 달변가였다
우선 마음을 다잡고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왔다. 지현 씨가 먼저 가고 없었다. 그래도 약간의 설렘 비슷한 감정이 내 마음을 감쌌고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내일 첫 환자와의 상담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사람들만 없으면 길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가는 길에 비싼 한우와 맥주한팩을 사갔다. 소고기는 평소 같으면 당연히 미국산 아니면 호주산이겠지만 오늘은 특별히 나에게 한우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집에 가서 소고기를 굽고 다른 재료 없이 오직 히말라야소금과 와사비만 가지고 편의점에서 맥주와 같이 산 얼음컵에 맥주를 담아 무한도전을 켜고 소파에 앉아 고급진 한우에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심리상담가 입에서 나올 이야기는 아니지만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잠이 오지 않았다 환자를 상담하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내 병원에서 첫 환자라는 사실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우선 그동안 학교에서 배우고 상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환자에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상담을 해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그 방법은 첫째도 경청이요 둘째도 경청이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할말 만 하지 남의 얘기를 들을 줄을 모른다. 듣더라고 온통 다음에 자기가 할 말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태반이다. 내일은 입에 미싱질을 했다고 생각하고 말을 최대한 줄여야 겠다. 대신 귀를 귀이개로 말끔이 후벼 팠다. 그라다 불현듯 지현 씨가 생각났다. 하얀 피부에 전지현 머리처럼 긴 생머리.나는 아차 싶어 빨리 생각을 문을 닫았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