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안 리서치클럽
기획 배경
히스테리안 시각연구모임이자 출판 공동체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매 시즌마다 사회 문화에 깔려있는 전반적인 기제를 감각하며 연구 주제어를 선정합니다. 시각연구를 바탕으로 예술가, 활동가, 독립 연구자와의 협업을 통해 전시 및 여러 프로젝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에 선정한 연구 주제어 '숨은O'은 조선에서 대한제국, 일제 식민에서 분단 전쟁, 그리고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단절적인 시공간과 연결하기를 시도합니다.
주제어를 '숨은O'으로 설정하게 된 기획 배경에는
지난 공공예술 프로젝트(욕망이 빠져나간 자리: 출몰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공예술 선정작(2022-2023)의 영향이 컸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 사회 내 욕망의 구조(산업화에 따른 개발 지역과 그로 인해 밀려나간 자리, 잉여적이고 유희적인 것은 관리되는 대상, 더럽고 쓸모없는 것이 밀려나는 현상, 수도권 중심과 지방의 이원화)에 관해 조사를 기반으로 공공예술로 연결했었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 내에서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라 여겨지는 지역을 삼 년 간 추적했습니다. (이에 대한 기록은 『파인더 03호.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 2023년 발행, 히스테리안 출판사에서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라 여겨지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지역의 공통점은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한 때는 번영했던 곳이 경제적 가치를 잃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밀려 들어왔다 빠져나갑니다. 도시의 흥망성쇠는 세상의 이치에 따른 운동성입니다. 터전을 일궈야 하는 생존의 본능, 생계에 따른 먹고사니즘에는 옳고 그름이 없기에 지역 소멸의 문제를 문제 해결차원이 아닌 순환과 재생의 의미로 바라보고자 했습니다.
떠나가고 머무르면서 발길 따라 이동했던 공간과 장소를 살피면서 눈길이 갔던 곳을 들여다봅니다. 눈동자에 비친 자리를 뚜렷하게 관찰하여 안 사실은 있다가도 없어진, 빠져나간 자리, 텅 비어있다고 여겨지는 곳에 '어떤 자리'의 모양이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떤 자리'를 구체적으로 사유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동시대 '우리'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졌습니다.
"숨은 신"이라는 개념은
다양한 종교와 신화에서 등장하며, 각각의 문화와 전통에서 다른 형태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들이 사람들 사이에 숨어 들어와 인간 모습을 취하거나 특정 상황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숨은 신의 개념은 다양한 종교와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특정한 시기나 장소에서 정확히 처음 등장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변천을 거쳐 발전해 왔으며, 각자의 신앙과 믿음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적 판단과 과학적 사유가 존재의 유무를 드러내고 세상을 구성하는 법칙을 풀어내면서 신의 자리는 그림자로 대체됩니다. 동양 철학에서도 숨은 신에 해당하는 개념이 존재합니다. 특히 동양 철학에서는 "대인(大人)"이나 "원천(元泉)"과 같은 개념이 숨겨진 신 또는 절대적인 존재를 나타낼 때 사용되곤 합니다. 도교나 불교에서도 숨은 신에 해당하는 개념이 존재하며, 수많은 존재들 사이에서 숨겨진 마음의 평화와 영원한 진리를 찾는 중요한 개념으로 취급됩니다. ‘숨은 신’은 인간의 존재와 우주의 신비함을 탐구하고 깨닫기 위한 노력이 담겨 있다고 전합니다. (숨은 신의 개념은 chat gpt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진행 과정
이곳저곳에서 보이지 않는 빈자리를 찾으며 '나와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싶어 졌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와 우리'를 무엇이라 정의할 지도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뿌리의 정체성을 한국인이라는 지정학적인 위치로 기반하여야 할지, 유전적으로 복제되고 있는 동일성으로 바라봐야 할지, 문화적인 습習으로부터 구성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해 확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주제어 '숨은O'의 'O'은 神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서에 스며들고 있는 감각들에 관한 것입니다. 과학적인 논리를 기반 한 설명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것이 ‘있다’라는 것을 그려보고 싶은 욕망이 제 안에 있습니다.
신이 우리 곁에 잠시, 머물고 있음을 우리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애통하고 비통하게 애끓는 마음, 무아의 경지에서 신명 나게 추는 춤사위, 꿈자리의 운수와 점을 치는 행위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연한 것들이 가진 움직임을 한없이 바라봅니다. 절망으로부터 복을 구하는 믿음은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숨은 O’ 리서치는 세 개의 핵심 개념어를 기반으로 갈래를 확산시킵니다. ‘한국’에 기반한 전통과 근대성이라는 다소 거시적인 차원의 문을 열고자 신명으로 표출되는 몸짓들(풍류), 한이 담긴 사연들, 그리고 김지하가 제안한 문예이론 '흰 그늘'을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개념어의 공통점은 일제 식민화 및 해방 이후 전쟁, 그리고 그에 앞선 시대의 가치들이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조형화했는지를 가늠하기 위한 일종의 신호들입니다. 우리가 공통으로 연루된 공동 기억과 감정, 구조의 방식이 있는지. 이것들이 시대와 세대를 횡단하며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살피기 위한 하나의 조망도로 여겨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예로부터 한국은 '귀신을 섬기는 나라'로 부르며 한민족의 무속의 기원(제사장)을 단군에서 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현묘한 도를 기록한 최초의 문헌을 살펴보며, 신명을 받아 격동의 춤을 추는 풍류가 무엇인지 논합니다. 삼국시대로부터 전해지면서 풍류의 문화적 요소가 우리 터전의 놀이문화에 어떻게 전승되어 왔는지, 참을 수 없는 격동의 몸짓을 일종의 한(압축된 분노, 광기, 슬픔, 표현할 수 없는 애환 등)과도 연결해 봅니다.
각각의 개념어를 분석하며 닿을 듯 말 듯 연결되는/되지 않는 레퍼런스를 공유하면서 개념어의 빈틈을 대화를 통해 채워봅니다. 사료와 사례를 조사할수록, 종이 위에 서술된 지난 역사의 시간을 경험한 적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태초의 민족, 고대 국가, 조선과 일제강점기의 식민의 역사, 전쟁을 겪은 황폐화된 이곳을 아직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 느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일종의 비애감, 좌절감, 비통한 감정이 마음자리 곳곳에 맺혀있음을 느낍니다. 이 공통된 감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규명되지 않았지만, 유전(流轉)하고 있음을 압니다.
한이 서려져 있다고 표현이 있습니다. 한을 품고 그 한을 풀어온 ‘한풀이’의 해학이 도대체 무엇일까. 애끓고 비통한 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깊은 우울과 상실이 회복될 수 없음을. 고통의 시간은 절대적 시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회복될 수 없이 깊은 무의식에 침잠된 어둠을 들여다봅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안으로 응고된 마음의 상태, 간직된 '한'을 이해해보려 합니다.
분노와 화를 안으로 ‘삭히고' 꾹꾹 눌러 ‘참는다’. 이 같은 억제가 가중화 가속화되고 의지로서의 통 제가 불가능해지면 그 불안과 고통의 내용은 무의식 속에 억압된다. ‘쌓인다’, ‘서린다’, ‘맺힌다’ 등은 내면 깊숙이 밀어 넣는 억제와 억압의 심리작용의 결과를 형용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신은경, <풍류: 동아시아 미학의 근원>, 253쪽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한의 미의식을 감지하기 위해 김지하의 강연록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를 통해 참고합니다. 홍용희의 <김지하평론선집>(2015년)에서 밝힌 '흰 그늘'은 김지하 시인의 자전적 인생론과 문예미학, 사상론에 입각한 개념으로 1999년부터 언급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지하의 '흰 그늘'의 미학을 알기 전에서는 그늘에 대한 미의식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늘은 판소리의 용어에서 비롯됩니다. 판소리에서 '그늘'은 소리의 시김새가 잘 붙었다고 하여, 여운, 여유, 멋을 빗는 소리라고도 합니다. 판소리의 '그늘'은 내면에 깊숙이 배어 나와 툭하게 무심하게 뱉어진 '한'이 깃든 소리로도 표현됩니다. 흔히들 '그늘이 있는 사람'이라 할 때, 일종의 사연이 있는 사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견딘 자의 의젓함은 어딘지 모르게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우주를 바꾸려는 신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켜야 하는 데 그러자면 그늘이 있어야 하고 그 그늘만 아니라 거룩함, 신령함, 귀기(鬼氣)나 신명(神明)이 그늘과 함께 있어야 하며 그늘로부터 ‘배어 나와야’한다. 김지하,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 315쪽.
그늘의 자리는 어둠의 자리가 아니며 빛과 어둠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그늘지게 만듦으로 생성되는 깃들여진 어둠은 빛이 있어야 존재합니다. 이 둘 간은 서로 대립적이지만 상호보완적이며 무아의 경지로 젖어들어갑니다. 그것은 어떤 감정의 하나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이번 리서치는 한국의 미의식의 세계관을 다뤄보며 조금 더 넓은 차원에서의 심상을 다룹니다. 사건이나 현상에 관계 맺는 이미지보다 추상적인 마음자리에 기반하여 연구 주제를 더듬어 가고 있습니다. 어떤 연구 결과를 만들어낼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일정: 2024. 05.~09.
5월: 26일
6월: 2일, 16일, 23일, 30일
7월: 14일, 28일
8월: 11일, 25일
9월: 1일 - 자유 연구 발표(예정)
리서치클럽원: 강병우, 강정아, 김민주, 김수환, 김지율, 남궁예은, 노소영, 손혜림, 오윤주, 윤마리, 이연화, 이인현, 임다운, 유은, 한승우
✦ 히스테리안 리서치클럽 오프라인으로 모임이 진행되나, 온라인(줌) 참관이 가능합니다. 참관 시 논의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으나, 참여는 제한될 수 있습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hysterian.public@gmail.com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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