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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스테리안 Aug 03. 2024

[리서치클럽: 현장 노트1] 숨은 O

히스테리안 리서치클럽



리서치는 일반적으로 그늘에 가려진 곳에서 일어나고, 자신의 기반이 확실한 영역 안에서 일어나며, 내부에서 일어나는 작업입니다. 깊은 지식에 대한 작업이고요. 리서치란 그 안락한 공간 밖으로 벗어난
전문 영역 이외의 것들을 조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피터 밀러,『리서치란 무엇인가』, 24쪽



히스테리안 ‘숨은O’ 리서치클럽은 세 가지 개념어(풍류/신명, 한, 흰 그늘을 엮어 한국의 미의식 연구를 다양한 갈래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5월부터 클럽원들과 함께 텍스트를 기반으로 리서치를 진행해 왔습니다. 검토해야 하는 개념들의 관계도를 함께 그려보면서 텍스트의 레퍼런스를 읽어나갔습니다. 히스테리안 리서치는 불편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내면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며, 다시 문제를 재조립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촉발시키는 대화는 리서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히스테리안이 다루는 리서치 방법론은 다양한 레퍼런스를 자신의 경험과 감각에 활용하여 전개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산책과 여행은 리서치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동합니다. 몇 해 전부터 충청남도 부여를 관계인구로 오가면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습니다. 부여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난다고 하여 클럽원들과 부여로 필드트립을 떠났습니다. 체화된 경험이 우리를 어떤 정념으로 이끌지 궁금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가져다주는 변수가 창조성에 이르는 중요한 단서에 되기에, 엉덩이를 가벼이 두는 법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부여를 오가는 모든 이들은 그를 ‘마스터’라 부릅니다. 부여 곳곳, 아니 전국 곳곳, 어디든 출몰하는 마스터의 차는 우리를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데려다 줍니다.



히스테리안 클럽원 이연화님의 스케치입니다. ⓒ이연화


동선은 부여의 유산이 보관되어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의 흔적인 부여신궁과 백제의 충신이었던 성충, 흥수, 계백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인 삼충사와 신동엽 시인의 생가터이자 문학관을 방문하여 전시 <동학 노트>를 관람하였습니다.  


부여의 아름다움과 정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검이블로 儉而不 화이불치陋華而不侈)로 표현합니다. 무엇하나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부여의 정신과 그곳에서 나고 자란 신동엽의 문학정신을 살핍니다. 승패의 역사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역사의 서사성은 사후적인 것을 동반하기에 신화, 전설, 민담으로 내려지고 있는 야사가 품은 속뜻을 살핍니다. 그리고 그 먼 역사의 이야기를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듣게 됩니다. 우리의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고여있을지도 모릅니다. 



부소산성 내에 위치한 부여신궁은 일제강점기시기 내선일체를 주장한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곳입니다. 부소산성은 동성왕, 무왕 때 부소산으로 형성되었으나, 백제의 왕성으로 백제 성왕이 부여로 천도하면서 적의 침궁을 막기 위해 축성했다고 전해집니다. 


백제의 역사와 함께하는 부소산성에 일제의 잔재가 있었는 게 그것이 바로 '부여신궁'입니다. 부여신궁은 조선신궁처럼 일제가 내선일체, 황군신민화정책을 세우기 위해 조성된 신사로 그 규모도 어마어마(신궁부지만 6만 5000평에 달한다)하다고 전해집니다. 그 흔적도 마스터의 안내로 인해 알게 되었지 어떤 안내판이나 내용이 적힌 곳이 없었기에 지나가다가 알 수 있는 정보는 아니었습니다. 

마스터에 의하면 이 당시 전국에서 동원된 인구도 많았고 굴이 깊어서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고 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일종의 비밀통로로 쓰일 것을 염두하여 사람이 지나갈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 삼충사가 있었습니다. 신궁의 중심지로 추정된 자리에 세워진 삼충사의 백제의 멸망과 함께했고 백제를 지켰던 충신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1950년대 만들어졌고 80년대 중창한 이곳은 현재도 삼충제를 지냅니다. 부여에서는 이 신궁을 철거하냐 보존하냐의 문제의 기로가 있다고 합니다. 




히스테리안 클럽원 이연화 님의 현장 스케치입니다. ⓒ이연화


다음 이동지는 신동엽 시인의 문학관입니다. 신동연 시인은 1930년대생으로 부여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시인은 일제강점기 시기, 소학교에 입학했을 때 일본어로 읽고 쓰면 유년시절을 보냈을 겁니다. 그 당시, 한글이 아닌 일본어로 글을 배우면서  '내지성지참배단'으로 뽑혀 일본에 다녀온 경험은 어린 신동엽에게 강렬한 경험이었을 겁니다. 그때 신동엽 시인이 느꼈던 감정이 무엇일지, 그것이 어떻게 문학의 동기가 되었을지를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신동엽의 아버지는 그 당시, 공문서를 대신하여 작성해 주는 대서사로 글씨를 잘 썼다고 합니다. 그는 일찍이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였고 시인이 생전에 남긴 모든 메모, 글, 흔적을 다 수집했다고 해요. 또한, 신동엽 시인의 아내이자 민속학자, 짚풀문화학자, 시인인 인병선이 그의 일대기를 정리하고 문학관을 건립했죠. 문학관을 운영하는 위원들도 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문학관 곳곳 시인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어요. 이곳에서 11년간 근무한 김형수 관장님은 시인의 시간을 좇으면서 연구하는 것이 느껴졌어요. 


특히 이번 <동학노트>는 시인이 문학 정신의 기반을 동학을 두었는 과정에 대해 소개해주셨어요. 동학군 진로군을 찾은 구상회, 이강과 함께 동학군 순례를 떠나면서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어요. 또한 신동엽이 품은 본질은 생명으로서의 동학에 관해 궁금해졌어요. 


현재 '동학'은 지금 현재 다루고 있는 리서치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을 담당하지만, 동학에 대해 심도 깊게 다루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정작, 마음속에만 동학이 있지, 동학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아직 시작조차 못했던 거죠. 신동엽 시인의 정신이 깃든 문학관에서 동학전시에서 그 의미를 살펴봄으로 앞으로 가야 할 방향성을 차차 찾아가려 합니다. 


관장님께서는 글쓰기의 비밀은 화자의 눈빛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긴 호흡으로 세계관을 이끌어 나갈 화자의 눈동자에 빛을 채우기 위해서는 시인은 끊임없이 화자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했을 거라고요. 한 사람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일대기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관장님을 보면서 떠올리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사적 화자의 "눈빛"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영성적 높이에 이른 사유가 떠오르면 방금 전에 받은 명함 앞뒷면에라도 우선 옮겨 적었다.


신동엽 문학관 김형수 관장님. <동학노트> 전시는 8월 말까지 진행됩니다.



필드트립 1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2부는 이몽학 위령제 소식을 전합니다. 



일정: 2024. 05.~09.

5월: 26일

6월: 2일, 16일, 23일, 30일

7월: 14일, 28일

8월: 11일, 25일

9월: 1일 - 자유 연구 발표(예정)

리서치클럽원: 강병우, 강정아, 김민주, 김수환, 김지율, 남궁예은, 노소영, 손혜림, 오윤주, 윤마리, 이연화, 이인현, 임다운, 유은, 한승우


✦ 히스테리안 리서치클럽 오프라인으로 모임이 진행되나, 온라인(줌) 참관이 가능합니다. 참관 시 논의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으나, 참여는 제한될 수 있습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hysterian.public@gmail.com로 문의하세요.  


✦ https://www.instagram.com/hysterian.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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