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던 부분들이죠. 그걸 연구하는 건 갑자기 자신 앞에 깊은 틈이 쩍 갈라지는 걸 보는 과정입니다. 리서치 과정에서 가장 흥미롭고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피터 밀러,『리서치란 무엇인가』, 18쪽
1부의 일정을 지나 2부는 노을의 황금빛이 들판을 비출 무렵, 조선 선조대 역적으로 내몰린 '이몽학 위령제'에 참여했습니다. 히스테리안이 부여 필드트립을 오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는데요. 이몽학 위령제는 저희를 이끌어 주었던 마스터가 2019년부터 기획한 행사입니다. (1부 참고)
버섯을 키우는 한 농부(마스터)가 2019년부터 자발적으로 만든 이몽학 위령제는 마스터의 궁금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기근과 역병, 왜란으로 혼란스러웠던 시절, 스스로 역적이 된 한 남자의 생애를 좇으며 기록된 역사와 그렇지 않은 역사 사이의 공백을 찾습니다. 당시, 배가 고파 인육을 먹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극도로 심한 가난을 겪은 충청 일대에 이몽학은 누군가에게 영웅이자, 역적이기도 했습니다. 이몽학이 꿈꾼 세상은 무엇일지, 삼삼오오 모여든 이들과 함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몽학의 난은 역사적으로도 꽤 큰 민란이었다고 합니다. 선조는 난을 일으킨 이몽학의 일가친척을 연좌제로 유배되거나 사형하였고 역모에 가담한 사건 이후 조선 후기에 관직을 맡는 것도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마스터는 이몽학의 생가터를 추정하여 그곳에 비를 세웠습니다.
이몽학은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인 실존 인물로 전해집니다. 이몽학에 대해 잘 모르실 수 있기에 이준익 감독의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2010년)을 참고하여 설명드리겠습니다.
영화는 이몽학이라는 인물 묘사와 임진왜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조선 중기, 선조 시대에 양당의 당파 싸움의 심각성과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진 갈등 구조를 잘 드러냅니다.전쟁이 곧 들이닥치는 위기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만 채우려고 했던 무심하고 무능한 사대부의 태도를 꼬집습니다. 당시, 실록에서도 임진왜란이 아니더라도 사회, 경제적인 파탄이 심각한 상황이었고 역병까지 온 나라를 휘감아서 백성들의 삶은 고달팠다고 기록됩니다. 특히 충청도 일대는 당시 호서/내포 지역으로 평야 지역으로 쌀 생산량이 많았고 수탈이 심했던 곳이었다 합니다.
영화는 양반 가문의 서얼 출신인 견자(백성현)와 대동계의 일원이자 반역을 주모했다고 전해지는 이몽학(차승원)이라는 두 인물의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두 인물의 공통점은 서얼출신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서얼이라는 신분적 한계는 당시 정계에 진출하거나 일정 관직에 오를 수 없는 제도적 한계가 있었는데, 견고한 제도와는 다르게 나라의 안전과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는 나라의 모양새에 울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영화는 두 가지 측면으로 이몽학을 조망합니다. 역모를 꾀하고 반란을 이끄는 이몽학을 저지하기 위한 견자 일파와 이몽학의 민란을 돕는 백성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역사에서 이몽학에 대한 사후 평가를 반란이냐, 민란이냐의 차이 또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역모를 일으킨 반역자, 민심을, 마음을 읽은 희대의 영웅. 영화는 이 두 가지의 입장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견자의 입장에서 출발합니다. 서얼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양반 가문 자제들 사이에 속하지도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며 울분을 삼키는데, 어느 날 견자는 하룻밤 새에 자기 가족들이 이몽학에 의해 목숨을 잃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이몽학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지만, 아직 어린 견자의 어설픈 무예 솜씨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는 자신과 같이 이몽학을 좇는 한 남자를 따라가며 무예를 배웁니다. 그의 이름은 황정학(황정민)으로 앞을 보지 못한 맹인입니다. 그는 이몽학과 같은 대동계 출신으로 이몽학에게 대동계의 대의에 관해 묻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대동계’에 대한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에서 이몽학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등장하며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성품과 행실이 불량하다고 기록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를 따르는 인구 만해도 600~700명 정도라고 전해집니다. 역사에서는 그는 ‘대동계’가 아닌 ‘동갑회’를 조직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몽학의 행실이 불량했으면, 그를 따르는 이가 그토록 많았을까? 그를 따르는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조선은 왜구의 침략으로 나라의 정세가 혼란스러웠고, 해양은 이순신 장군이 왜구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기에 내륙에서 일어난 이몽학의 난은 역사적으로 크게 인정받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한마음, 한뜻으로 나라에 닥친 위협을 해결해야 할 때, 이들의 반란은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기근과 병란으로 굶주림이 지속되었고 죽은 자의 인육을 먹을 정도로 참혹한 상황에서 나라를 위협하는 왜구나 군납을 강요하는 조선의 관리들은 같은 선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대동계(大同契)’는 1589년 선조 22년 때 정여립이 만든 무술연마 조직이라 합니다. 정여립은 전라도 일대에서 촉망받는 인재였으며 그를 따르는 이도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정여립은 원래 율곡 이이의 제자로 촉망받는 서인이었으나 율곡 이이가 갑작스레 사망하자 당시, 집권 세력이었던 동인 쪽으로 돌아섰는데, 이에 따라 정여립은 율곡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배사론에 휩싸입니다. 이 사건으로 스승을 배신한 간신이라는 이유로 선조의 눈 밖에 났고 정여립은 낙향한 후, 고향인 전주에 자리 잡습니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 직전이었으나, 나라 정세가 어지러웠고 피폐해진 사회 질서를 자리 잡기 위해 상층민과 하층민이 친목을 도모하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잡기와 무예에 능했다고 전해지는 정여립이 만든 대동계는 일종의 향촌 문화로 씨족이 아닌 동네 단위로 상하 합계의 전환이 이뤄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대동계의 명칭도 동계를 이르는 명칭의 하나이다. 또한 한자의 ‘동同’은 사람들이 장막 안에서 모여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를 뜻하기도 합니다.
대동 사회는 근본적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는 세상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진 대동계가 임진왜란에서 왜구를 물리쳤다는 설이 증폭되면서 대동계가 무사 집단의 성격을 띠었다는 정황이 커졌고 정여립이 모반을 꾀했다는 사실을 제공했을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이몽학은 정여립이 속한 대동계의 일원이었고 정여립이 역모로 몰려 조직의 위기를 맞이하자 정여립을 죽이고 뜻을 모은 동지와 한양으로 향합니다. 영화는 허구적 내용이 가미되어 있고 이몽학의 동갑회와 정여립의 대동계의 연관은 아직은 모릅니다. 정여립 모반사건과 이몽학의 난은 7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영화의 허구와 역사적 사실을 기반에서 저희가 영감 받은 뜻은 바로 ‘동同’입니다.
중국 고대 고유가의 경전인 오경의 하나로 예법을 풀어쓴 『예기』의 예운 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대동세계는 천하를 공물로 여겨서, 어질고 능력 있는 인물이 정치를 하고, 자기 아버지만 아버지라고 잘 모시지 않고, 자기 아들만 아들이라고 귀엽게 여기지 않는다. 재물을 탐하지 않고 만인들이 더불어 다 잘 살고, 남을 헐뜯는 중상과 음모가 없으며, 도적이 없어서 문을 닫지 않고 산다.
제 역할이 있고 계급과 신분에 구속받지 않는 삶을 꿈꾼 대동 사회는 과연 오늘날의 사회와는 얼마나 맞닿아 있을까요. 이몽학의 난으로 희생당한 이들을 위하는 위령제는 이몽학이 참살당한 날을 추정한 7월 21일에 함께 했습니다. 죽은 이의 넋을 기리는 마음을 그리며 천막 안으로 손수 지은 음식을 나눠먹습니다. 마음에서 ‘동(同)’의 의미를 새겨봅니다.
https://youtu.be/PHO0FUs3gro?si=Qb_NGdLZAvWa6Gub
리서치 노트_이연화
이상하게도 부여에 무언가를 두고 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히스테리안 리서치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1박 2일의 부여 필드트립을 다녀왔을 뿐인데 말이죠. 지금까지 흐릿한 인상의 지방 소도시로만 여겼던 부여가, 이제는 달라 보입니다. 모든 땅은 나름의 이야기를 품고 있지요. 백제, 조선, 일제강점기의 시간을 넘나들며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부여는 그야말로 이야기가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불러내는 사람들 덕분에 부여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곳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진 장소와 얼굴들이 있으니, 외롭지 않게 혼잣말을 이어가며 부여를 찬찬히 살펴보고 싶네요.
리서치 노트_이인현
부여 리서치 트립을 나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뾰족한 한 지점으로 표면을 꿰뚫어 내면과 외면을 연결하는 힘. 이쪽이 백제라면 저쪽은 2024년의 부여이고, 이쪽이 뜨거운 부여의 태양이라면 저쪽은 하우스에서 습기를 먹으며 자라나는 표고버섯. 또한 한 점에서 주위를 아우르며 확장해 가는 나선의 힘. 금동대향로와 빅물관, 부소산성과 부여신궁, 동학의 뒤를 쫓던 신동엽 시인, 그의 원수성, 임진왜란과 이몽학 위령제를 경유해서 다가오던 시간들, 인물들, 동물들. 모두 황홀하고 신비로웠습니다.
왜 이 시간에 이 공간에 이런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일까 생각해 보면 내면이 파헤쳐져 드러나는 순간에도 나사가 무언가를 걸고 고정시키는 행위라는 것을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볼 때에도 거기임을 기억하고 무언가 걸러 갈게요.
리서치 노트_ 김수환
터에 남아있는 흙으로 매몰되어 있던 부여 신궁의 입구 터널이요. 어떻게든 사라지지 않으려 얼굴을 들이민 느낌이라 기분 나빴습니다. 상상됐습니다. 그 굴의 입구를 통해. 터밖에 남아있지 않아서 상상되기 어렵지만. 그 터널의 입구와 어디론가 연결되었을 끝. 그곳을 드나들던 사람들, 그것이 건축된 이유, 그 신궁을 기점으로 확장해 나가려 했던 기운이라고 할까요. 흙에 매몰되지 않은 그 작은 구멍에서부터 그 기운이 일본의 어딘가에서부터 연결되어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기분이었어요. 무엇보다 그 장소에 대한 이해가 진행 중인 급변들로 전복되거나 사라지기보다는 그저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 느낌이었습니다. 해결되기보다 일시 중단된 것 같았어요.
함께한 다른 이들처럼 무언갈 열심히, 유심히 관찰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저는 그냥 그 장소에 그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덥다고 투덜대고 양산을 챙기지 않았다고 장난스레 타박하고 모르는 지역 어른들의 위계나 질서 없는 오히려 무규율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위령제를 지내고 5년 만에 제사상을 앞에 두고 제삿밥을 먹은 게 좋았거든요. 떠나고서야 기억되는 게 많네요. 거기서 제가 느낀 것은 그런 것들입니다. 돌아오고 나서야 생각나는 것들은 더 많습니다.
리서치 노트 _윤마리
금동대향로. 지상과 수상을 구분시켜 주면서 동시에 서로 닿게 하는, 안개보단 무겁고 비보다는 가벼운 물안개가 품는 지상과 수상의 상념은 어떠할까. 5가지 음악의 태평성대가 일어나면 솟구치는 봉황은 마치 신명의 표상과 같다. 수컷은 봉(鳳), 암컷은 황(凰)이니, 신명 또한 수와 암이 한데 이루어진 것이다.
무엇이 신동엽을 동학으로 이끌어 갔을까.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는 하방론자. 나의 눈과 귀가 향하고 손이 손을 쥐게 하는 이야기들의 ‘서사적 눈빛’을 살펴보면 그곳에서 또한 나의 역사를 찾게 되는 일. 그렇게 이끌리는 일. 그렇지만 위로 향하지는 않는 일. 축척의 오류와 기이한 지도에서 소멸되는 자아와 ‘민’의 정신을 붙잡는 일.
눈과 귀가 없어도, 입으로 먹고 숨을 마시고 서로의 팔을 쓰다듬는 것으로 역사의 전승이 가능할까? 숱한 시공간을 떠도는 령들과 함께 밥을 나눠먹는 것이 가능할까? 뜨거운 햇빛 아래 끈적이는 땀의 증발과 피부에 맺히는 수증기가 구분이 되지 않을 때, 나와 우리를 둘러싼 어떤 물안개 같은 가능성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서사는 이렇게 맘대로, 툭 툭 귀신처럼 존재한다. 야사와 구전의 힘.
일시: 2024.07.21(일)-22(월)
동선: 국립부여박물관, 부소산성 내 부여신궁, 신동엽 문학관, 이몽학 위령제 참여, 무량사 등
리서치클럽원: 강병우, 강정아, 김민주, 김수환, 김지율, 남궁예은, 노소영, 손혜림, 오윤주, 윤마리, 이연화, 이인현, 임다운, 유은, 한승우
✦ 히스테리안 리서치클럽 오프라인으로 모임이 진행되나, 온라인(줌) 참관이 가능합니다. 참관 시 논의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으나, 참여는 제한될 수 있습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hysterian.public@gmail.com로 문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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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터를 구성하고 있는 이야기 발굴하는 생산소와 함께합니다.
이 모든 일의 시작: 마스터 @jungkeekim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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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히스테리안 @hysterian.publ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