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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구두

이야기

by 서담


구두는 단순히 신발 그 이상이다. 내 발을 감싸고, 매일의 길을 함께 걸으며 나의 시간을 기록해 가는 조용한 동반자다. 무수히 많은 걸음을 걸을 때마다 그 밑창은 조금씩 닳아가고, 표면은 흠집이 나며 색이 바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낡은 흔적들은 내 삶의 흔적이기도 하다. 내가 지나온 길, 맞닥뜨린 날씨, 그리고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모두 구두에 새겨진다.


나는 종종 구두를 신고 한 시간여를 걸어 출근하곤 한다. 매끄러운 도로와 거친 보도를 오가며, 구두는 묵묵히 나를 지탱해 준다. 많은 사람들이 구두는 금방 발을 피로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가 신은 이 낡은 구두는 발에 큰 무리를 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 구두가 내 발 모양에 맞춰져,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길고 반복된 시간 속에서 구두는 내 발에 맞춰 익숙해졌고, 나 역시 그 구두에 익숙해졌다.


회사에서도 구두를 벗지 않는다. 종일 구두를 신고 움직이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르면 구두 밑창은 서서히 닳아간다. 수없이 밟아온 땅의 흔적들이 밑창에 새겨져, 몇 개월을 채 넘기지 못한 채 구두는 수선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게 몇 번의 수선을 거치고 나면, 새 구두를 사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낡은 구두를 고집한다.


비록 구두가 낡고 빛이 바랬을지라도, 그것은 내 발에 가장 잘 맞는 신발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 구두를 신으면 처음에는 어딘가 어색하고,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신경이 쓰인다. 발이 구두에 길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낡은 구두는 다르다. 그 구두는 이미 나의 모든 걸음걸이를 알고 있다. 언제 힘을 주어야 하는지, 언제 편안히 놓아야 하는지를 알고, 그 순간에 맞춰 나를 지탱해 준다.


이 낡은 구두를 바라보면,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마주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겉은 낡고 바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없이 걷고 멈췄던 길 위의 이야기들이 그 구두 안에 살아있다. 그래서 나는 그 낡은 구두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구두를 갈아 신을 때마다, 마치 오랜 시간 함께한 시간을 외면하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허전하다.


"낡았다고 해서 버려야 할 이유는 없다"


오래된 것이 늘 낡고 쓸모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내가 가장 편안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겉은 조금 닳아 있을지 몰라도 그 속에는 시간이 만들어낸 따뜻한 추억과 익숙함이 가득하다. 구두가 그렇듯, 우리 삶 속에서도 소중한 것들은 낡고 바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소중함을 외면하지 않고 지켜볼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가치는 외적인 새로움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익어가는 내적 익숙함에 있다."


삶도, 구두도 마찬가지다. 낡았다고 해서 무조건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때로는 익숙함 속에서 진정한 편안함과 깊이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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