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결말
군인은 본질적으로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수호하는 숭고한 임무를 부여받은 존재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군인이 조국의 부름 앞에 묵묵히 헌신하며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다. 그러나, 역사의 어두운 장막 뒤에서 일부 권력에 눈먼 군인들이 국가를 배신하고 국민을 저버리는 치명적 범죄를 저질렀다. 그 중심에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있었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탱크와 장갑차가 수도 서울의 중심부로 진격했다. 이 역사상 최초의 군사 쿠데타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권력의 맛을 알아버린 육사 출신 장교들의 독재로 이어졌다. 박정희를 비롯한 육사 출신 장교들은 '조국근대화'라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정당화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권력의 단맛에 취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어진 1979년 12월 12일의 군사 반란과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참혹한 학살극 역시 육사 출신 장교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전두환과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 세력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무고한 시민들의 피를 흘리게 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수십 년간 암흑의 군부 독재 시대를 겪어야 했다. 군인의 총구는 적을 향해야 하지만, 육사 출신 장교들의 총구는 죄 없는 국민들의 심장을 관통했다.
문제는 이들의 행위가 단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육사 출신들의 특권의식과 그에 따른 정치적 행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육사는 오랫동안 대한민국 군 내의 절대적 권력을 형성하며 특권적 지위를 누려왔다. 소위 ‘하나회’로 대표되는 육사 내 비밀조직은 군대 인사권을 좌우하며 충성의 방향을 특정 세력과 출신에 한정시키는 악습을 만들어냈다. 충성은 본래 국가와 국민 전체를 향해야 하지만, 육사 출신 장교들에 의해 왜곡된 충성은 특정 정치 세력의 손에 조종당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하지만 이러한 육사의 정치적 타락과는 달리, 절대다수의 군인들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국민을 지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추위와 무더위를 견디며 한 치 흔들림 없이 조국을 수호한다. 그러나 육사 출신의 몇몇 장교들이 일으킨 권력욕으로 인한 과거의 죄악은 전체 군의 명예를 더럽히고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마저 상처 입히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육군사관학교는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육사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특권을 보장받고 인사를 장악하는 시대는 이제 과감히 청산되어야 한다. 역사의 쓰라린 교훈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충성은 특정 세력이나 출신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국가와 국민을 향해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육군사관학교가 이 나라의 군대를 대표하는 유일한 요람으로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가? 그들의 과거는 이미 그 명분을 상실했다. 오히려 육사의 존재가 대한민국의 군대를 하나의 특정 세력으로 제한하고,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킨 과거를 돌아볼 때, 육사의 해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며, 새로운 군대의 미래를 여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권력을 탐한 칼날은 언제나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군인의 총구가 국민이 아닌 적을 향할 때 비로소 국가의 안보는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된다. 역사는 늘 반복되지만, 그 반복을 끊을 수 있는 열쇠는 오직 반성의 용기와 과감한 개혁에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충성은 결코 특정 출신과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진정한 군인은 국가와 국민에게만 충성할 때 존재의 이유를 증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