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의 깊이
어릴 적 나는 세상이 내 맘대로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노력하면 되지 않는 일이 없고, 진심은 반드시 통할 것이며,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사람들도 세상도 따라와 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실망도 많았다. 사람들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세상은 너무나 더디게 돌아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말과 행동이 외면당하거나 왜곡될 때, 억울했고 분했다. 그럴수록 더 목소리를 높였고, 더 바꾸려 애썼다. 내 방식이 맞는다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설득하고 다그쳤다. 그것이 사랑이고 정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아끼는 사람이라 해도, 그의 마음과 방향까지 내 뜻에 맞게 움직이게 할 수는 없다는 걸. 상대가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상대의 방식과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그런 나를 돌아보게 된 순간이 있었다 “당신은 항상 나를 해석하고 평가하려고 하잖아. 근데 가끔은 그냥 내 얘기를 ‘그렇구나’ 하고 들어주면 좋겠어.”
그 말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을 울렸다. 이해하려고 애쓴 건 사랑이었는데, 그게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해한다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바꾸려 했던가. 그 마음이 사실은 나의 기준을 강요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세상과 사람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더는 억지로 쥐려 하지 않고, 흐름을 따라가며 필요한 만큼만 힘을 쓰는 법을 배우는 것. 무엇보다 그 무력함을 부끄럽거나 패배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진짜 사랑은 바꾸려 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의 방식과 속도를 존중하며,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모습이든 옆에 있어주는 것. 조언 대신 기다림을, 설득 대신 이해를 택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진짜 어른의 마음, 그리고 성숙한 사랑의 모양일지 모른다.
이제 나는 누군가를 향해 ‘왜 저럴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그저 조용히 속으로 되묻는다. ‘나는 언제쯤 저런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될까.’ 그렇게 조금씩 시선을 바꾸다 보니, 세상이 덜 날카롭게 느껴진다. 사람들이 모두 완벽해 보이지 않아도 좋다. 다들 자기 방식대로 잘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많이 알고 똑똑한 것보다, 변화와 성장보다 수용에 가까운 마음을 갖는 일 아닐까. 세상을 바꾸는 대신, 내가 어떻게 이 세상과 더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지켜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을 분명히 구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 때로는 부끄럽게 여겨질 때가 있다. 너무 많은 것을 바꾸려 했고, 너무 빨리 결과를 원했으며, 너무 쉽게 사람을 재단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그 시절의 너도 나였고, 그때의 실패가 지금 나의 이해와 수용의 깊이를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조금 느리게, 조금 더 너그러이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려 한다. 완전하지 않은 세상을 받아들이고, 완전하지 않은 나 자신을 다독이며.
한 줄 생각 :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주는 마음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