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해 벨은 울리는가

형식적인 배려

by 서담

매일 아침, 출근길을 걷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 있다. 횡단보도 옆, 아니 정확히 말하면 횡단보도에서 몇 걸음은 떨어진 풀숲 속. 거기에 불쑥 꽂히듯 서 있는 신호 벨 하나가 나의 걸음을 자꾸 멈춰 세운다. 신호등 아래, 보행자를 위한 버튼처럼 보이지만 그 위치가 너무도 애매하다. 벨은 있다. 하지만 그 벨은, 정작 누가 눌러야 할지조차 고려하지 않은 자리에 외롭게 놓여 있다.


그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신호 벨이다. 시각장애인이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 그 벨을 누르면 소리로 초록불을 알려주는 아주 기본적이고 작은 배려. 하지만 그 ‘배려’는, 누군가의 시선에선 철저히 형식적인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한 발자국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안다. 시각장애인이 그 벨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점자 블록도 연결되지 않았고, 벨은 보행로가 아닌 풀숲 안쪽, 무릎 높이쯤 되는 기둥에 아무렇지 않게 붙어 있다. 그 장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이 설치는 너무도 명백한 실수이고 동시에 외면이다.


“이걸 누르려면 누군가가 도와줘야겠네요.”


그 말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툭 던진 적이 있다. 그 말에 씁쓸하게 웃으며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 벨은, 누군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를 전제로 만든 건 아니었을 텐데요.'


도대체 왜 저 자리에 저렇게 설치했을까. 안전을 위한 배려였을까, 아니면 단지 “설치했다”는 숫자를 채우기 위한 보여주기였을까. 장애인을 위한 장비를 만드는 것과 그 장비가 실제로 ‘사용’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가끔 우리는 그 다름을 너무도 쉽게 놓친다. 배려의 진심은 ‘실효성’에서 판가름 나는데, 우리는 아직도 ‘표시만 내면 된다’는 방식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아무도 벨을 누르지 않고,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않는 풍경 앞에서 나는 묻는다. 이 장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의 정책과 설계, 행정이 진짜 사람을 향해 있는가. 아니면 사람을 가장한 숫자, 성과, 보도자료를 향해 있는가.


사람을 위한 시설이 사람을 배제할 때, 그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애초에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고민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시선과 손끝과 걸음을 상상해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것이 매일 아침, 내가 그 자리에서 마음이 무거운 이유다.


우리는 언제쯤 ‘있으니까 되는 것’이 아니라, ‘쓸 수 있어야 되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시스템에 새길 수 있을까.


어쩌면 사회의 성숙도는 바로 이런 지점에서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구를 생각했는가.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누군가를 위한 자리를 제대로 만들어뒀는가.


그래서 오늘도 출근길, 그 화단 옆에 멈춰 선다. 그리고 조용히 벨을 바라본다. 그 벨이 울려야 할 누군가의 손끝이 다가올 수 있기를, 다음에는 조금 더 가까운 자리에 놓여 있기를 바라면서.


한 줄 생각 : 진짜 배려는, 사용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4화바꾸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