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대인가, 감옥인가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깊어져야 한다고 배웠다.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 그것이 곧 지혜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마주한 건, 지혜가 아니라 자기 울타리 속에 스스로를 가두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직급이라는 의자에 오래 앉아 있거나, 한 직장에서 너무 오래 몸을 눌러두거나, 아니면 나이의 무게에 기대어 ‘나는 이미 다 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마치 오래된 가면 같았다. 겉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빈 공간이 많았다. 그 빈틈을 메우는 건 호기심도 열린 마음도 아닌, 오히려 변하지 않는 말투와 익숙한 생각이었다. 그들의 대화에는 ‘왜’라는 물음이 사라져 있었고, ‘혹시’라는 가능성도 없었다.
도그마에 갇힌 난쟁이처럼.. 나는 그 표현이 참적확하다고 생각한다. 난장(亂場), 즉 혼란스러운 장면 속에서 사람들은 떠들고, 움직이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난장은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채, 그들만의 질서와 규칙 속에서만 돌아간다. 한 발짝만 바깥으로 나와도 새로운 공기와 빛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들은 그 작은 울타리 안에서만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회의석상에서, 아이디어가 오가야 할 시간에 ‘그건 해봤어도 안 돼’라는 말로 시작하는 사람들. 젊은 사람이 새로운 길을 제시하면 ‘우린 원래 이렇게 해왔어’로 막아서는 사람들. 문제의 본질보다 체면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 자리. 그 속에서 창의성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없이 가라앉았다.
이런 모습은 특정 직업군이나 조직에만 있는 게 아니다. 삶 전체에도 이런 울타리는 있다. 관계에서, 가치관에서, 습관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가두곤 한다. 한때 유효했던 방식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옳다고 믿으며,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합리화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자유를 잃는다.
자유를 잃는 건 단번에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하루 작은 타협이 쌓인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자.’
‘이번엔 내 의견 안 내도 되겠지.’
‘굳이 바꿀 필요가 있나.’
그 작은 포기들이 모여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나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고, 더 이상 의심하지 않으며, 더 이상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걸.
그러나 모든 울타리가 나쁜 건 아니다. 때로 울타리는 보호막이 되고, 질서를 만든다. 문제는 그 울타리의 문을 언제든 열 수 있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닫힌 울타리 안에서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라 감옥이 된다.
나는 나 자신에게 자주 묻는다.
“너는 지금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있나?”
이 질문은 불편하다. 울타리 밖에는 미지의 것들이 있고, 실패와 상처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 밖에만 있는 공기와 풍경이 있다. 그걸 보고 느껴야만 비로소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되찾는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한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오답이 되고, 오늘의 지식이 내일은 쓸모를 잃는다. 그 속에서 ‘나도 한때는…’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과거에 가둔다. 반대로 지금도 배우고, 묻고, 시도하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젊다. 그 젊음은 피부나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성이다.
도그마에 갇힌 난장은 결국 자기만의 안전지대에서 생겨난다. 거기선 아무도 자신을 위협하지 않지만, 아무도 자신을 성장시키지도 않는다. 그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건,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단 하나의 질문이다.
“정말 이게 최선일까?”
그 물음이 울타리의 문을 여는 첫 움직임이 된다.
나는 바란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더 부드러워지고 더 유연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지켜주던 확신들이 오히려 나를 가두지 않도록. 내 생각의 모서리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언제든 새로운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도록.
닫힌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간다면, 그곳의 공기는 언젠가 탁해진다. 그러니 우리는 때로 울타리 밖으로 걸어 나가야 한다. 비록 바람이 세고, 땅이 울퉁불퉁하고, 길이 어수선하더라도. 그 길 위에서만, 잃어버린 자유와 창의성의 빛을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