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생각하고, 살아내기

삶의 문장으로

by 서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대단히 똑똑해진다거나, 곧바로 부자가 된다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책이 쓸모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책은 나를 한순간에 바꾸진 않지만,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내 생각을 크고 깊게 만든다. 마치 나무뿌리가 흙 속 깊이 스며들듯, 책 속의 문장들은 나의 내면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의 감촉, 종이 위에 묻은 잉크 냄새, 아주 가끔은 삐뚤게 인쇄된 문장에서 느껴지는 인간적인 온기까지. 책은 단순한 종이 묶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과 생각과 경험이 오롯이 담긴 세계다. 그 세계를 방문할 때면, 내 안에 있던 경계가 조금씩 허물어진다.


쓰기 또한 마찬가지다. 책에서 만난 생각과 내 삶의 경험이 서로 얽히고 풀리며, 문장으로 흘러나온다. 쓰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한다. 책을 읽으며 들었던 의문을 다시 꺼내보고, 그 답을 내 삶 속에서 찾으려 애쓴다. 이 과정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나를 계속 쓰게 만든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학력이나 직책, 혹은 그들이 나온 학교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다. 그것들이 한 사람의 전부를 말해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고, 꾸준히 공부해 온 사람을 마주할 때면 조금 다르다. 그 앞에서는 경계심보다 존중의 마음이 먼저 앞선다. 그들이 가진 지식은 단순히 외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읽고, 생각하고, 삶 속에서 체화한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책을 대하는 마음을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어떤 날은 그저 쉬고 싶어 펼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답을 찾기 위해 절박하게 뒤적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날은, 그저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위로가 된다. 책 속에서 만난 한 문장이 마음을 흔들면,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붙잡는다. 다시 읽고, 생각하고, 가능하다면 내 삶에서 한 번쯤 실천해 본다.


책은 나를 단번에 변화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 읽다 보면, 내가 하는 말과 행동, 심지어는 침묵마저 조금씩 변해 있다. 그 변화는 조용하고 은밀하지만, 누구보다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예전 같으면 쉽게 내뱉었을 말이 목구멍에서 한 번 멈춘다. 즉각적인 판단 대신, ‘혹시 다른 시각은 없을까’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그 순간, 나는 책이 내 안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책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정보를 모으는 일이 아니다. 그건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다. 근육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오랜 시간 반복과 지속이 필요하다. 책과의 만남도 그렇다. 한 번 읽고 덮는 것이 아니라, 읽고, 생각하고, 또다시 읽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힘이 생긴다.


어떤 이들은 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하고, 어떤 이들은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 한다. 나에게 책은 두 가지 모두 다. 책을 읽으면 세상과 나를 동시에 들여다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진 편견과 한계가 드러나고, 그 틈을 메울 새로운 생각들이 들어온다.


결국 책은 ‘읽기’에서 끝나선 안 된다. 읽은 것을 내 삶에 가져와 ‘살아내는’ 것이 진짜 의미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그 속의 문장이 내 손끝과 발걸음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건 아직 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작게라도 실천해 본다. 책에서 배운 친절을 오늘 누군가에게 건네고, 책에서 얻은 통찰로 내 선택을 한 번 더 생각한다. 그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 책 속의 문장은 내 삶의 문장이 된다.


나는 오늘도 책을 펼친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아직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세계를 향한 존중과 호기심이, 나를 읽게 하고 쓰게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이, 나를 조금 더 크고 깊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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