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다 속이 건강한 사람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by 서담

헌혈의 집에 와 앉아 혈압계를 바라본다. 숫자들이 빨간 불빛으로 깜박이며 내 몸의 현재 상태를 말해준다.


112, 65, 그리고 71.


겉으로는 단순한 숫자들이지만, 그 안에는 내 삶의 방식, 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내가 앞으로 지켜야 할 미래가 담겨 있다.


나는 주기적으로 헌혈을 한다. 헌혈은 단순히 나눔의 행위가 아니라, 내 몸을 점검하는 중요한 기회다. 혈압, 알부민, 간수치, 콜레스테롤 같은 수치들은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스스로 건강하다고 믿고 싶어도, 수치는 냉정하게 현재를 보여준다. 그 숫자들을 마주할 때면 늘 긴장과 안도,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스친다.


우리는 흔히 겉으로 드러나는 건강에 안심한다. 살이 빠졌다는 말에 기뻐하고, 거울 속에서 탄탄한 몸을 보며 만족한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건 겉이 아니라 속이다. 피 한 방울에 드러나는 내 몸의 상태, 장기들이 보내는 신호, 그리고 내가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불균형들. 그 모든 것들이 내 진짜 건강을 말해준다.


나는 젊었을 때, 이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했다. 젊음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함부로 다뤘다. 막노동으로 몸을 혹사시키고, 밤샘으로 정신을 지치게 하면서도 “젊으니까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였다. 그러나 그때의 방치와 무시는 고스란히 지금의 나에게 흔적으로 남아 있다. 통증이 찾아올 때,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비로소 그 시절의 나를 향해 깊이 반성한다.


건강은 단순히 ‘아픈 데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나는 이제 그렇게 생각한다. 건강은 몸과 마음이 서로를 지탱하며 조화를 이루는 상태다. 몸이 지치면 마음이 무너지고, 마음이 흔들리면 몸도 쉽게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속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겉으로 보기에 씩씩해 보이지만 속은 병든 사람이 아니라, 겉모습은 소박해도 속이 단단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면 속이 건강하다는 건 무엇일까. 그건 몸속 수치가 안정적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또는 내 마음이 한 방향으로 정직하게 흐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나는 그것을 ‘균형’이라 부르고 싶다. 음식과 운동, 휴식과 노동, 일과 쉼, 욕심과 만족. 이 균형을 놓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속이 건강해진다.


살아가며 깨닫는다. 건강한 생각과 정신은 반드시 건강한 몸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몸이 무너지면 생각은 뒤엉키고, 마음은 쉽게 어두워진다. 반대로 몸이 제 자리를 찾으면, 정신도 빛을 되찾는다. 내가 매일 걷고, 먹는 것을 조절하고, 쉬어야 할 때 쉬려 애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 삶을 오래도록 지켜내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늦게나마 깨닫는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건 나 자신이라는 것을. 가족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일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젊음을 너무 안일하게 소비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내가 나를 잊어버리면, 결국 나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는 걸 이제야 안다.


앞으로 나는 수치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한다. 그 수치를 통해 내 삶을 성찰하고, 조금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면 된다. 겉보다 속을 먼저 돌보는 사람, 보이는 건강보다 진짜 건강을 추구하는 사람.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혈압계 앞에 앉아 다시 한번 다짐한다.

“가장 소중한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잊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26화결핍이 남긴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