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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세상을 닫는 시간

귀를 닫고, 눈을 덮고, 나를 켜다.

by 서담

언제부터인가 내 머리맡에는 작은 물건 두 개가 자리 잡고 있다. 수면안대와 귀마개. 이 둘은 마치 나의 밤을 지켜주는 조용한 경비원처럼, 하루의 끝마다 내 곁에 놓인다.


나는 잠을 잘 잔다. 머리만 베개에 닿으면 5초도 채 지나지 않아 꿈의 문이 열린다. 그래서 아내는 내게 “5초 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잠들기까지 긴 의식도, 오랜 생각의 미로도 필요 없다. 그저 몸을 눕히면 세상은 멀어지고, 잠은 순식간에 나를 데려간다. 그런 나를 보면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은 말한다.


“참 부러운 체질이에요. 당신은 복 받은 사람이네요.”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나는 잘 자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피로가 남아 있었다. 깊게 잠들었는데도 몸이 무겁고, 이유 없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눈은 쉬었는데, 마음은 쉬지 못한 느낌. 그 원인이 바로 ‘소리’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귀가 예민하다. 작은 소리에도 귀가 반응한다. 냉장고의 미세한 진동음, 창문을 스치는 바람의 결, 심지어 이웃집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까지도 들려온다. 누군가의 말소리나 음악이 아닌, ‘세상의 미세한 숨소리’들에 늘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셈이다. 그건 어떤 면에서는 축복이다. 음악을 들을 때는 악기 하나하나의 질감이 느껴지고, 누군가의 목소리 안에 담긴 온도까지도 들린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피곤한 재능이었다. 세상의 소리들이 내 안으로 쉬지 않고 밀려들어와 마음의 평온을 앗아갔다.


그래서 나는 귀를 닫기로 했다. 하루 중 단 한 시간이라도,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잠시 차단하기로 했다. 그렇게 귀마개를 귀에 꽂았을 때 처음 느낀 건 고요가 아니라 ‘적막’이었다. 불편했다. 너무 조용했다. 세상의 숨소리가 사라지자, 오히려 내 안의 소음이 커졌다. 생각의 파편들이 귀를 두드리고, 머릿속엔 묘한 공허감이 흘렀다. 그 고요를 견디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적막’은 ‘평온’으로 변했다. 외부의 소리가 사라지자, 내 안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낮 동안 쌓인 피로의 신음이었고, 억눌린 감정의 한숨이었다. 귀를 닫는 일은 세상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듣는 일이었다.


눈을 덮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수면안대를 쓰면 세상은 한순간에 꺼지고, 나는 오롯이 ‘내 안의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그 어둠은 두려움이 아니라 쉼의 공간이었다. 빛을 차단한다는 건 시각을 닫는 게 아니라 감각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일이다. 눈으로 보던 세상 대신, 마음으로 느끼는 세상이 열린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비로소 가볍게 호흡하고, 천천히 내려놓는다.


낮에는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세상을 받아들이지만, 밤에는 눈을 덮고 귀를 닫아 나를 받아들인다. 그 단순한 전환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고요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듣는다.” -파울로 코엘료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전화벨, 알림음, 대화, 음악, 광고, 뉴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듣는 일’에 소비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 안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 조용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과 진짜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나는 이제야 안다. 잠을 잘 잔다는 건 단순히 눈을 감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잠시 끄는 일이라는 걸. 세상의 소리와 빛을 잠시 차단할 때, 비로소 나의 내면은 ‘켜진다’. 그때 나는 쉰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다.


어쩌면 귀마개와 수면안대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나로 돌아가기 위한 통로’ 일지도 모른다. 그 작은 고요의 장치들이 나를 세상과 분리시키는 대신, 내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든다.


오늘 밤도 나는 그 둘을 머리맡에 올려둔다. 세상의 소음을 잠시 내리고, 내 마음의 고요를 다시 켜기 위해. 눈을 덮고, 귀를 막고, 그렇게 나는 세상을 닫는다.


그러나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된다. 왜냐하면 고요 속에서 들리는 건 세상의 본질, 그리고 살아 있다는 작은 리듬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닫을 때 비로소 나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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