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은 두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
낯선 일 앞에서 나는 늘 멈칫했다. 어릴 적, 호기심에 만졌던 두꺼비집(차단기)에서 찌릿한 감전을 겪은 뒤로 전기라는 단어만 들어도 몸이 움찔했다. 그때의 두려움은 몸 깊숙이 각인되어, 전구 하나 갈아 끼우는 일조차 누군가의 손을 빌리고 싶을 만큼 조심스러웠다. 시간이 흘러도 그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전기만이 아니었다. 숫자 계산에도, 새로운 일에도, 나는 쉽게 겁을 냈다.
숫자와 나는 언제나 어색한 사이였다. 학교 다닐 때 수학 시간은 늘 긴장된 시간이었고, 숫자 하나라도 틀릴까 봐 늘 숨을 죽였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숫자가 얽히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계산이 필요하면 애써 피하게 됐다. 회계, 금융, 통계 같은 단어들은 나와 거리가 먼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은 이렇게 묻는다.
“그래도 해볼 수 있잖아요?”
처음에는 그 말이 무책임하게 들렸다. 두렵고 낯선 일을 앞에 두고 ‘해보라’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해보지 않으면, 두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낯설다는 건 단지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뜻일 뿐이라는 것.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도 한 걸음 내딛는 것이다.” -넬슨 만델라
나는 작은 도전부터 시작했다. 집안의 전등이 깜빡거릴 때, 예전 같으면 곧바로 전기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고, 필요한 공구를 준비하고, 두꺼비집의 구조를 다시 들여다봤다. 손끝이 떨렸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차분했다. 전원을 끄고 LED등을 교체하고, 적정 용량의 차단기를 찾아 스스로 교체했다. 작은 성공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성공이 내 안의 낯섦을 하나 지워줬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 마음 하나가 내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를 만들었다. 어렵다고만 여겼던 회계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처음엔 분개와 잔액조차 헷갈렸지만, 원리를 이해하고 나니 숫자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벽에 붙어 있던 먼지를 털어내듯, 내 마음속 두려움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삶을 돌아보면, 낯선 일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두려움’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성장 전의 신호’ 일지도 모른다. 익숙한 길만 걸으면 안전하지만, 그 길에는 새로운 풍경이 없다. 낯선 길로 한 걸음 나설 때 비로소 세상이 넓어진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도시 안에도 아직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골목이 수없이 많다. 그 모든 길이 낯설지만, 그 낯섦 속엔 새로운 발견이 숨어 있다. 그 길을 걸어보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같은 풍경만 보며 산다.
낯선 일을 마주한다는 건 단지 기술을 배우거나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게 아니다. 그건 내 안의 익숙함을 흔들고, 오래된 두려움과 타협하지 않는 일이다. 두려움은 언제나 우리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속삭인다.
“이건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하지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용기, 그것이 바로 ‘도전’의 시작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이제 나이가 들었으니 새로운 걸 배우기엔 늦었어요.”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늦은 게 아니라, 단지 마음이 낡았을 뿐이라는 것을. 나이를 먹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낯섦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잃는 것은 선택의 결과다.
누군가 말했다.
“익숙함은 편안하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배움이 없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조금 서툴더라도, 낯선 일 속에 나를 밀어 넣을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이제 나는 낯선 일을 두려움의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건 나를 다시 성장하게 하는 신호이자,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다. 작은 일이라도 괜찮다. 전등 하나 갈아 끼우는 일, 계산기를 켜는 일, 새로운 길을 걸어보는 일. 그 모든 순간이 ‘변화의 연습’이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끊임없이 낯섦을 받아들이는 일 아닐까.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배우고, 다시 단단해진다.
오늘도 나는 낯선 길의 문 앞에 선다. 손잡이를 잡는 손끝이 여전히 약간은 떨리지만, 그 떨림이 나를 앞으로 밀어준다.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그 두려움조차 내 편이 되었다.
한 발자국. 그 한 걸음이, 새로운 나를 만든다.
낯선 길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성장의 또 다른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