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는 일, 그리고 끝내 남는 것에 대하여
사람의 일생에 무엇이 그리 대단한 게 있다고, 우리는 모여 앉아 누가 무엇을 해냈는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따져 묻는다. 성과와 결과를 나열하고, 빠른 속도와 큰 이름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말들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 정작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묘한 공허다. 떠들썩했던 이야기들은 흩어지고, 사람은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간다. 그때 비로소 조용한 질문 하나가 남는다.
그래서, 나는 무엇으로 살아왔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늘 글로 돌아온다.
난 그래서 쓰고 또 쓴다.
보고 쓰고, 생각하며 쓰고, 온통 쓸 생각밖에 없다.
쓰는 일은 대단한 것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쓰다 보면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인지, 얼마나 자주 흔들리고 미루고 후회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된다. 글은 나를 포장해 주지 않는다.
대신 나를 벗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는 이유는, 글이 나를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은 다만 묻는다.
지금, 너는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느냐고.
보고 쓴다는 것은 세상을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사람은 지나치고, 어떤 사람은 붙잡는다. 나는 자주 붙잡는 쪽을 택한다.
길가의 표정 하나, 스쳐간 말 한마디,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나 오래 남는 따뜻함 같은 것들. 그것들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문장으로 옮긴다. 쓰는 순간, 그 장면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이 되고, 생각이 된다.
생각하며 쓴다는 것은 나 자신을 함부로 결론 내리지 않겠다는 태도다. 우리는 너무 빨리 판단하고, 너무 쉽게 단정한다. 사람도, 삶도, 나 자신조차도.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그 속도를 늦춘다.
왜 그 말이 마음에 걸렸는지, 왜 그 장면이 불편했는지, 왜 그 선택이 아쉬웠는지를 천천히 들여다본다. 그 과정은 종종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생각이 자라고 있다는 신호라는 걸, 쓰다 보니 알게 되었다.
온통 쓸 생각밖에 없다는 말은, 삶을 도피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삶에 더 깊이 발을 담그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글은 나를 현실에서 떼어놓지 않는다. 대신 현실을 더 또렷이 보게 만든다. 글로 정리된 생각은 다시 삶으로 돌아가 선택의 기준이 되고, 태도가 되고, 침묵의 이유가 된다.
“친구여, 우리 그냥 마음을 비우고 살면서 계속 글을 씁시다.”
이 문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오래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살겠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쓸데없는 욕망과 과잉된 비교, 인정받고 싶다는 조급함을 내려놓겠다는 뜻에 가깝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오늘 내가 본 것, 오늘 내가 느낀 것, 오늘 내가 지키고 싶은 마음.
글은 결국 그 마음을 기록하는 일이다. 결과를 증명하기보다 과정을 남기고, 성취를 자랑하기보다 흔들림을 고백하는 일. 그래서 글은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정직할수록 힘이 생긴다. 잘 쓴 문장보다, 오래 살아남는 문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쓰면서 배웠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그렇게 써서 뭐가 남느냐고.
나는 이제 이렇게 답한다.
쓰지 않았다면 남지 않았을 것들이 남는다고.
말로는 설명되지 않던 감정, 흘러갔을 하루, 그냥 지나쳤을 관계의 온기. 글은 그것들을 붙잡아 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는 나는 그 글을 통해 과거의 나와 조용히 마주한다. 그때 알게 된다. 내가 헛되이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적어도, 마음을 비우려 애쓰며 하루를 살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대단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아마 앞으로도 나는 계속 쓸 것이다. 잘 쓰지 못하는 날에도,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는 날에도. 그 자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생에 대단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쓰고 또 쓰는 하루가 모여,
나는 내 삶을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