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둥글어지는 시간

오래 남는 것은, 결과보다 지나온 과정이다

by 서담

한때 나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유난히 거칠었다.

조급했고, 쉽게 상처받았으며, 작은 평가 하나에도 마음이 요동쳤다.


지금 돌아보면 그 마음은 모나기보다 날이 서 있었고, 단단하기보다 불안에 가까웠다. 무엇이든 빨리 증명해야 했고, 결과로 말하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꼈다.


그런 마음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시간과 세월이, 그것도 아주 조금씩, 나도 모르게 깎아냈다.


날카로웠던 감정은 마찰을 겪으며 둔해졌고, 인정에 대한 집착은 반복된 좌절과 이해 속에서 서서히 모양을 바꿨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덜 흥분하고, 덜 비교하며, 덜 서두른다. 마음이 둥글어졌다는 표현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사람을 더 편안하게 만들고, 본심에 가까워지게 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젊을 때는 나를 증명하는 일이 곧 살아남는 일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된다.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들이 있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납득되는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오랜 세월은 사람의 마음을 둥글게 만든다. 그것은 타협이나 체념이 아니라, 불필요한 긴장을 내려놓는 능력에 가깝다. 결과와 평가에 집착하며 살다 보면, 정작 곁에 놓여 있는 보통의 행복을 보지 못하게 된다. 늘 더 나은 결과를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지금 손에 쥔 작은 만족과 평온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단순한 구도로 세상을 해석하는 데 익숙하다. 성과가 있어야 의미가 있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어야 박수를 받는다. 그런 기준 속에서 살다 보면, 과정은 늘 미완의 상태로 밀려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과정이 더 길다. 결과는 찰나이고, 과정은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긴 시간을 ‘아직’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몰아붙인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결과에만 집착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냈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짜증을 냈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를 소모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불안했던 이유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과정 자체를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의식적으로 태도를 바꾸려 했다. 잘 되지 않아도, 서툴러도, 과정 안에 머무는 시간을 조금 더 즐겨보자고.


결과를 빨리 확인하려 애쓰기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느껴보자고. 그렇게 살다 보니, 삶의 밀도가 달라졌다. 실패라고 여겼던 순간들 속에서도 나름의 기쁨과 배움이 남았다.


결과는 아무리 훌륭해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고, 곧 다음 결과로 덮인다. 하지만 행복했던 과정은 다르다. 애썼던 시간, 웃으며 견뎌낸 순간, 함께 나눈 감정은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그것은 나를 지탱하는 내면의 자산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훌륭한 사람’이 되기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는다. 남들 눈에 좋아 보이는 인생보다,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려 한다. 속도가 느려도 방향이 맞다면 괜찮고, 결과가 조금 부족해도 과정이 성실했다면 충분하다고 여긴다.


삶은 결국 어떤 결과를 남겼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걸어왔느냐에 의해 기억된다. 날카로웠던 마음이 둥글어지기까지 걸린 시간, 그 시간 덕분에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것들이 있다. 주위에 놓인 작은 행복들, 함께하는 사람들의 온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다.


오늘도 나는 완벽한 결과를 내려놓고,

괜찮은 과정을 선택한다.

조금 느려도, 조금 부족해도, 이 길 위에서

웃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


훌륭함보다 행복을, 성취보다 평온을 택하는 일.

그 선택이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더 사람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믿어도 될 것 같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5화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