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 위에 서 있는 나

계획하지 않았지만, 멈추지 않았던 시간에 대하여

by 서담

돌이켜보면 나는 계획하며 인생을 살지는 않았다.

어떤 목표를 세워두고, 그에 맞춰 치밀하게 단계를 밟아온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나는 살아가다 보니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을 했고, 가야만 할 것 같은 길을 걸었다.


그 선택들이 옳았는지 확신할 새도 없이, 시간은 나를 다음 장면으로 밀어 보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 그렇게 지나온 길들이 쌓여 어느 순간 지금의 내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왜 이 길을 가고 있을까?’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아무리 이유를 붙여보아도 선명한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고, 성취나 보상으로도 정리되지 않는 순간들. 그럴 때면 괜히 나 자신이 흐릿해진다. 마치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의미 없는 반복 속에 서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런 질문 자체가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길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모든 선택에는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어쩌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씌운 부담일지도 모른다.


어떤 길은 설명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고, 어떤 선택은 생각보다 앞서 발이 움직인다. 그때마다 ‘그냥 그럴 때가 왔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삶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가 아닐까.


나는 계획보다 흐름을 더 많이 믿으며 여기까지 왔다.

무언가를 선택했다기보다는, 흘러가는 방향을 거스르지 않았고,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새 나의 일이 되었고, 잠시 스쳐 간 줄 알았던 길이 자주 걷는 길이 되었다. 지금 서 있는 이 자리 역시, 치열한 계산의 결과라기보다는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닿은 지점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지금의 내가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대단하지 않아도, 눈부시지 않아도, 남들 앞에 내세울 만한 명확한 성취가 없어도 괜찮은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저렇게, 그래도 지금의 내가 되었고, 그 나름의 무게를 지니고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하고. 인생이란 결국 명확한 이유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이 가르쳐 주었다.


어떤 선택은 의미를 알기까지 오래 걸리고, 어떤 길은 지나고 나서야 이름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그 흐름 속에서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의문이 들 때도 있었고, 확신이 흐려질 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걸음을 이어왔다. 그것이 내 방식이었고, 나에게 허락된 속도였다.


앞으로도 나는 대단한 계획을 세우지 않을 것 같다.

대신 그때그때의 나를 믿어보려 한다. 지금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으며, 멈춰야 할 때와 걸어야 할 때를 스스로 느끼며 살고 싶다. 멈추지 않고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나름 괜찮은 지금의 내가 되었다. 완성된 모습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 자신을 부정하지는 않는 자리.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오늘의 삶을 충분히 살아내고 있다고 믿어본다. 인생은 계획의 결과가 아니라, 흐름을 놓치지 않은 사람에게 남는 무엇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오늘도 흐름 위에 서 있다.

확신은 없지만, 멈추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정도면, 지금의 나는 충분히 괜찮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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