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되찾은 시간에 대하여
술을 끊은 지 1년이 되었다.
말로 하면 짧지만, 내 삶의 습관 하나를 바꾸기엔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이었다. 술을 끊은 이유는 하나가 아니었다. 한 번씩 찾아오던 극심한 허리 통증, 열심히 운동해도 좀처럼 줄지 않던 체중, 중년이라는 단어가 몸에 와닿기 시작한 현실적인 신호들. 몸은 이미 여러 차례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그 신호를 번번이 미루어두었다.
사실 더 어려웠던 건 저녁 식탁이었다.
아내와 함께하는 하루의 마무리, 반주 한 잔이 더해지면 그날의 피로가 조금은 씻기는 듯했다. 더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잔을 내려놓는다는 건 단순히 술을 끊는 일이 아니라, 하루의 리듬 하나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다. 정말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돌아보니, 술은 단지 기호가 아니었다.
사회성을 잃지 않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때로는 지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에 과음을 했던 날들. 속이 뒤틀리고 구토를 하면서도 “괜찮다”라고 말하던 젊은 날의 허세. 어쩌면 나는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어떤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건 아닐까. 그 이미지가 무너지면 나도 함께 작아질 것만 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내가 말했다.
“예전만큼 임팩트 있거나 재미있진 않은데, 술을 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야.”
그 말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화려함 대신 안정감, 즉흥적인 흥 대신 오래가는 평온함. 25년 전 담배를 끊었을 때도 비슷했다. 처음엔 허전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빈자리는 자유로 채워졌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분명했다.
사실 술을 끊고 어떻게 살아갈까, 은근히 걱정했었다.
사회적 자리가 어색해지지는 않을지, 관계가 끊어지지는 않을지. 그러나 놀랍게도 술을 꼭 필요로 하던 자리들은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정말 소중한 사람들은 술이 없어도 그대로 남았다. 인생 친구들과는 굳이 잔을 부딪치지 않아도 웃을 수 있었고, 진짜 대화는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아내와의 저녁 식사는 여전히 즐겁다.
다만 술잔 대신 물 잔을 든다. 맑은 물이 담긴 잔을 가볍게 부딪칠 때, 그 소리는 더 단단하고 또렷하다. 취기가 아닌 맑은 정신으로 나누는 대화는 생각보다 깊다. 웃음은 조금 덜 요란할지 몰라도, 그 여운은 길다.
무엇보다 몸이 달라졌다.
30년 넘게 군살로 남아 있던 체중이 운동과 함께 조금씩 빠져나갔다. 허리의 통증은 눈에 띄게 줄었고, 아침은 가벼워졌다. 건강검진을 통해 각종 수치들이 개선되고, 수면의 질이 높아지며, 체지방 감소에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잠이 깊어졌고, 새벽에 깨는 일이 줄었다. 활기는 생각보다 단순한 데서 왔다. 술을 덜어낸 자리에서 생긴 에너지였다.
그러나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시간’이었다.
취기로 흐릿해지던 밤 대신, 맑은 정신으로 사색하는 시간이 생겼다. 책을 읽고, 메모를 하고,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 예전에는 찾기 힘들었던 고요가 지금은 자연스럽다. 술을 끊은 것은 어떤 즐거움을 포기한 일이 아니라, 나만의 시간을 되찾은 일이었다.
행복은 종종 더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배웠다. 때로는 빼는 데에도 행복이 있다는 것을. 술을 끊었을 뿐인데, 삶의 여유와 만족감은 오히려 높아졌다. 즉각적인 흥분 대신 오래가는 평온함, 과시 대신 자존, 소란 대신 사색.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사실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었는지도 모른다.
1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다.
그러나 내 삶의 방향을 바꾸기엔 충분했다. 술잔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나 자신이 또렷이 보였다. 이제는 누군가와 부딪히기 위해 잔을 들지 않는다. 대신 내 삶을 지키기 위해 물 잔을 든다.
끊어낸 것이 아니라, 되찾은 시간.
그 1년은 그렇게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