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지 않기 위한 기록
글을 쓰는 목적이 행복이라면, 무엇이 달라질까.
더 잘 쓰려는 조급함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내가 나로 살아 있기 위해 글을 쓴다면, 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되고, 성취가 아니라 숨이 된다.
나는 점점 그런 글쓰기를 꿈꾸게 되었다.
누구를 위한 삶보다, 나를 위한 글쓰기.
누군가의 기대에 맞춘 문장이 아니라, 내 하루의 결을 그대로 담아내는 문장.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기보다, 글을 쓰며 살아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자주 고개를 든다.
인생에는 분명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피할 수 없고, 미룰 수 없고,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어깨에 얹힌 일들. 동시에 ‘하고 싶은 일’도 있다. 당장 쓸모없어 보이고, 성과로 환산되지 않으며, 남들 보기에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일들.
우리는 종종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배워왔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해야만 하는 일을 견디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이 우리를 버티게 한다.
글쓰기는 나에게 그런 일이었다.
써야만 할 때의 글은 늘 무거웠다. 잘 써야 한다는 압박,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 괜히 한 문장을 지웠다 다시 쓰는 반복. 그러나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은 달랐다.
과정이 즐거웠고, 문장이 완성되지 않아도 마음은 이미 한 번 정리되어 있었다. 글이 끝날 즈음에는,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가까워져 있었다.
하루 30분이면 충분하다.
매일 완성된 글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오늘의 나에게 솔직한 문장 하나를 남길 수 있다면, 그날은 헛되지 않다. 글을 쓰는 시간은 세상과 거리를 두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나와 더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말로는 다 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문장 속에서 자리를 찾고,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비로소 모양을 갖춘다.
나는 글을 통해 나를 설득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이해하려 한다.
왜 오늘은 유난히 마음이 무거운지, 왜 어떤 말에 오래 머물렀는지, 왜 사소한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지. 글은 해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그러나 그 질문 덕분에 나는 나를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글을 쓰며 배운 가장 큰 변화는, 나 자신을 함부로 몰아붙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책을 내기 위해, 남기기 위해, 증명하기 위해 쓰는 글도 의미 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글쓰기가 나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한 일이길 바란다. 글이 내 삶을 대신 설명해 주기보다, 내 삶이 글이 되기를 바란다.
글과 삶이 따로 노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낸 하루가 자연스럽게 문장이 되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대신, ‘이렇게 살고 있다’고 조용히 보여주고 싶다. 설득하지 않아도, 가르치지 않아도, 그냥 내 삶의 리듬으로 써 내려간 문장들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글은 결국 삶의 부산물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잘 살아낸 하루가 쌓여, 어느 날 한 편의 글이 되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위해서.
누구의 인생이 아닌, 나의 인생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은,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내 삶을 성실히 바라보며 살고 싶다.”
그 다짐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다시 펜을 든다.
그리고 조용히, 나를 위한 문장을 하나 더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