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이유 위에 서는 일
사색의 깊이가 인생의 결을 결정한다는 말을 요즘 들어 자주 떠올린다.
얼마나 많은 조언을 들었는지가 아니라, 그 조언을 얼마나 오래 붙잡고 곱씹었는지가 삶의 방향을 바꾼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말을 듣고, 생각보다 적게 사유하며 살아간다. 바쁘다는 이유로, 현실적이라는 명분으로, 깊이 생각하는 일을 뒤로 미뤄둔 채 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계획하며 인생을 살아오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다짐하고 계산해서 지금의 자리에 온 것도 아니다. 살아가다 보니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을 했고, 가야만 할 것 같은 길을 걸었다.
만나야 할 것 같은 사람을 만났고,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의 내가 되어 있었다. 선택했다기보다 흐름을 탔고, 결정했다기보다 그때의 상황에 몸을 실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문득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왜 이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도 명확한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괜히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이유 없는 선택은 무책임한 것 같고, 명확하지 않은 방향은 불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알게 된다. 모든 선택이 처음부터 또렷한 이유를 가지고 시작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타인이 준 이유 위에 세운 삶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린다. 남이 정해준 기준, 남이 말해준 성공, 남이 추천한 길은 처음엔 안전해 보이지만, 작은 균열에도 방향을 잃기 쉽다.
그 이유가 내 안에서 충분히 숙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스스로 발견한 이유 위에 세운 삶은 단단하다. 느리더라도, 돌아가더라도, 중심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진짜 시작은 말이 아니라 사색에 있다.
깊이 생각하는 시간,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태도,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는 인내. 그 과정에서 비로소 ‘나만의 이유’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이유는 화려하지도, 명쾌하지도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내 삶을 설명해 줄 수 있고, 힘든 순간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중심이 되어준다.
삶이 막막할 때일수록 외부의 정보보다 내 안의 해법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누군가의 정답을 빌려오기보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질문을 던지는 일. 왜 불편한지, 무엇이 힘든지, 어디서 마음이 자주 멈추는지. 그 사소한 감정들을 외면하지 않고 천천히 바라보다 보면, 선택의 방향은 조금씩 또렷해진다.
어쩌면 인생이란, 거창한 목표를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그럴 때가 와서’ 한 걸음 내딛고, 그 흐름을 놓치지 않으며 걸어가는 과정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걷고 있는지를 잊지 않는 일이다. 이유를 잃지 않는 한, 길은 조금 달라져도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대단한 계획 없이 나아가 보려 한다. 그때그때 나의 최선을 믿고, 쉽게 결론 내리지 않으며, 깊이 사유하는 쪽을 선택하면서. 멈추지 않고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삶의 속도보다 방향이, 방향보다 중심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마침내 원하던 답을 찾았을 때, 삶은 흔들림 없는 중심 위에 서 있을 것이다. 그 중심은 남의 말이 아니라, 오래 생각한 나만의 사색에서 비롯된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