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간섭 없이 자유롭게 지내는 휴일시간은 그 즐거움을 더한다. 마음껏 책장에서 나의 눈과 손길을 한없이 기다리는 책들의 모습에 한 번씩 쓰다듬어 마음을 전한다. 여러 번 손길이 다았지만 다시 꺼내 만나본 책 한 권. 한참의 세월이 지났지만 훌쩍 그때의 그 마음으로 다가가 본다.
「유배지에서 보내 편지」이 책은 누구나 잘 아는 조선 정조 때 실학자의 대표적인 인물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께서 유배지에서 당신의 아들들과 형,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들의 일부를 번역해 놓은 것이다.
책을 통해 당시 시기와 질투로 일관하던 부패관료들의 음해와 모함으로 벼슬을 박탈당하고 중죄인이 되어 강진에서 보낸 오랜 유배생활의 기록이기도 하다. 창살 없는 감옥 생활 중 극단적인 어려움과 참혹한 고통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준 다산 삶의 전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나는 유난히 1․2부에서의 두 아들에게 보내는 삶을 살아가는 이치와 방향을 제시하는 편지에서 자꾸만 시선이 머문다. 18년의 유배 생활 속에는 무엇보다 자신이 뜻하지 않은 음해와 집안몰락의 위기로 찾아오는 폐족이 갖는 설움, 그 속에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자식들을 향한 참다운 교육의지를 엿볼 수 있다. 세상을 살아나가는 뜨거운 의지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의 의미와 진정으로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200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은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강진에서 유배 중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머무를 때면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다. 나의 머리와 가슴에 적지 않은 충격과 슬픔, 괴로움, 억울함이 나도 모르게 차오른다.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곳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끝자락의 고행과 뜨거운 마음을 느낀다.
가족관계가 무너지고 사제 간의 존경과 믿음이 상실되고 파괴되는 오늘날의 모습 다산선생의 서간문은 다시금 우리들의 모습을 숙연하게 뒤돌아보게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형제들 간의 가져야 할 우애, 제자들의 가르침까지 한 번쯤 되새기고 생각해 볼만하다.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선비정신의 표상, 그는 자식들에게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부디 자포자기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 부지런히 책을 읽는데 힘쓰거라. 보통 집안사람들보다 백배 열심히 노력해야만 겨우 사람 축에 낄 수 있지 않겠느냐!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 근본이다”라고 말이다.
그 중요성과 참뜻이 편지글 내내 힘 있게 전해지고 있다. 그는 또 말한다. “지식인이 책을 펴내 세상에 전하려고 하는 것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 책의 진가를 바라서이다. 세상에는 엉성한 사람은 많아도 정통한 사람은 적기 때문에... 높고 오묘한 학문의 참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날로 수가 적어져서...”
먼 미래였지만 오랜 시일이 지난 지금의 현실에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뼈아픈 사실을 결코 간과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