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5일-8일
아름다움.
모든 것이 과하지 않았고 절제되어 있었다.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의 어려움을 이미 알면서도 덜어내어 얻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기에 낸 용기의 결과로 보였다.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곳에서 사용하는 대포에도 문양을 새겨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은 경외스러웠고, 모리 가문의 문양은 지금 시대에 보아도 세련됨을 갖추고 있었기에 감탄했다. 아름다움을 우선하는 그들의 정신은 길을 걸으며 만난 어느 일반 시민의 집과 정원에서도 예외 없이 드러났다. 아름다움의 생활화!
프런티어.
이야기로 남은 위인들은 하나같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살지 않았다. 사무라이들만 받을 수 있었던 교육 기준을 벗어나 쇼카손주쿠에서 누구나에게 교육을 했던 요시다 쇼인도, 사무라이들만 칼을 찰 수 있었던 시절에 누구나에게 칼을 쥐어주며 기병대를 일으켰던 타카스기 신사쿠도 그랬다.
프런티어 정신이 있는 자는 역사를 썼고 역사에 남았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살다 간 사람들은 흔적조차 없었다.
호기심.
서양의 흑선을 보고 올라타 이것은 무엇이고 저것은 무엇이냐고 순수하게 물었던 그들에겐 두려움을 넘어선 호기심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서양의 기술을 접하고도 호기심 보다 안위를 앞세웠던 우리는 뒤쳐졌고 종속됐다. 지키려 했던 우리는 잃었고 지키지 않으려던 그들은 얻었다.
용기.
정말 이기려면 눈을 감아버리고 미워할 일이 아니라 패배를 인정하고 배우는 일이 먼저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였다.
서양에 크게 패배하고도 그들이 가진 문명을 배우려 했던 용기가 결국 그들의 힘으로 이어졌음을 역사가 증명했다. 비록 한국인이었지만 일본의 도자기 산업을 일으킨 이삼평을 신으로 받들고 기릴 줄 아는 그 마음에서도 용기를 보았다.
수준.
그 압도적인 격차가 갑자기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와 의식의 통제를 벗어났고, 나는 울컥했다. 이내 눈물이 차오르고 있음을 감각하고 흠칫 놀랐다.
부러움의 감정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나를 누르는 압도감이었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가 시간의 축적으로 켜켜이 쌓여, 모든 생활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들의 높은 수준에 나는 압도되었다. 우리는 그 수준을 어떻게 갖출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막막함이 앞섰고 그 축적의 시간 동안 그들이 흘린 피땀눈물이 일순간 내게 몰려오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나는 압도되었고, 나는 울컥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니.
머리는 맑아졌고 눈의 초점이 맞아져 나는 또렷해졌다. 그러자 삶 자체를 시詩처럼 살아냈기에 후대의 누군가가 세워준, 내 이름의 동상이 보였다. 나는 이야기로 남아 죽어서도 죽지 않았다. 내가 요시다 쇼인이고 내가 다카스기 신사쿠다. 내가 사이고 다카모리고 내가 사카모토 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