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인가 보다.
바람만 슬쩍 불어도 낙엽이 후드득 떨어져 집 앞 마당에 쌓이는 중이다. 분명히 작년 겨울을 지내며 앙상했던 그곳들에 다시 파랗게 잎을 올리느라 그 고생을 했으면서 얼마나 지났다고 노랗게 물들이고 온몸을 다 흔들어 떨어뜨리는 중이다. 그러다 결국엔 하나 남기지 않고 다시 앙상해지겠지. 그러고는 다시 햇빛이고 빗물이고 부지런히 빨아들여 그 파란 잎을 다시 틔워내겠지. 매년 내 눈에 읽히는 이 변화는 비효율적이고 생산적이지 않았다. 허나 자연에는 모두 그러하는 이유가 있으니 왜 이 일을 반복하는지 알고 싶었다.
매해 잎을 떨어뜨리고 틔우는 과정은 그저 단순 반복이 아니라고 했다. 알고보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무는 매해 뿌리를 더 깊고 더 넓게 뻗어서 물과 영양소를 효율적으로 챙길 수 있도록 진화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매해 새로 나오는 잎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계속해서 적응하며 틔우는 중이었다. 빛이 잘 드는 환경에서는 잎이 넓게 자라지만, 건조한 환경에서는 수분을 덜 소모하고자 잎이 작아지거나 두꺼워진다는 것이었다. 같은 자리에 박혀 있는 나무라 하더라도 작년에 겪은 주변 환경과 올해의 그것은 다르고, 내년은 또 달라지는데 매해 그렇게 적응하여 틔우는 중이라고 했다.
세상은 멈춰 있지 않고 흐른다고 한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세상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나의 환경 또한, 한 순간도 같은 순간이 없고 계속해서 변한다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차분히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잊힌다. 나를 둘러싼 환경도 변하지만 지금의 나도 어제의 나와 다른 나다. 그러니 뭐 하나도 멈춰 있지 않고 움직이는 중이겠다. 작년과는 달라진 뿌리와 잎으로, 봄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작년과는 다른 봄을 맞이하는 나무와 다르지 않다.
그렇게 오늘의 나를 가만히 본다.
난생처음 볼 겨울을 맞는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는 완전하게 다른 사람이다. 나는 작년의 나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중’이고 작년과는 다른 것들과 더 깊게 관계를 맺고 있는 '중'이다. 어제와 오늘만 보아도 나의 뿌리는 다른 깊이를 다져나가는 ’중‘이라는 것이 감각되고 내년의 내가 마주할 환경을 그려 보며 내년에 틔울 나의 잎을 골라보는 '중'이다.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지금도 나를 포함한 나의 주변의 모든 게 변화하고 있을 테니 '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싶다.
모든 것은 계속해서 달라진다는 것을 잊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 안에서 예민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예민함이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는 힘을 이끌 것이다.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는 그 힘은 내가 원하는 것에 나를 적중시킬 수 있는 힘으로 이어질 것이니 나는 그것을 가지고 싶다. 다행히도 나에게는 하루도 같지 않은 자연을 담은 정원이 집 앞 마당에 있다.
매일매일 가만히 보아야겠다.